11월 1일 정진우의 하루

수상한 회사

by 우주 작가

2033년 11월 1일 화요일.

정진우의 기록을 각색.


남들보다 빠르게 취업을 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취업은 어려웠다. 우리 세대부터는 취업이 잘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모두가 바라는 자리는 여전히 비좁았고 나는 그 자리에 갈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열심히 산 기억밖에 없는데 세상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취업은 되지 않았고 마음은 불안해져 갔다.

집에서는 너무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라고는 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계속 취업이 되지 않으니 자신감은 하락했다. 내가 만만하게 생각한 곳에서도 취업이 되지 않으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수없이 많은 탈락을 하고 나서 몇 달 동안은 이력서조차 넣지 않고 알바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알바는 생각보다는 쉽게 구해졌기 때문에 나는 이대로 알바만 하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병까지 얻으신 아버지는 일은커녕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그럴 돈이 없었다. 어머니가 일을 하시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동생의 학비도 문제였다. 누구 한 명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했다. 내가 버는 알바비는 내가 혼자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한 가정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택도 없었다. 사회초년생의 월급으로 지금 상황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나서야 했다.

다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눈은 더욱 높아졌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연봉을 주는 곳을 찾아야 했다. 눈높이를 낮추면 연봉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이력서를 넣으면 넣을수록, 면접을 보면 볼수록 희망이 보였기에 나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청용을 만났다. 청용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다. 청용은 내가 당시에 지원한 회사를 먼저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의 조언이 필요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청용은 나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다.


“인피니트 바이오라고 알아?”


식사 자리에서 만난 청용은 대뜸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바이오? 글쎄? 잘 모르는데.”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청용을 바라봤다.


“너는 우리 회사 지원한다면서 우리 계열사도 모르는 거야?”


“어? 그랬어? 아니 나는 니네 본사 쪽으로 지원을 했으니…. 그런데 바이오는 왜?”


내 말이 끝나자마자 청용은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청용의 명함이었다. 명함에는 인피니트 바이오라는 회사명이 적혀있었다.


“인피니트 바이오? 너 본사 쪽 다니는 거 아니었어?”


내가 알기로 청용은 본사 전략실에 다니고 있었다. 그가 바이오 회사를 다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옮겼어. 여기가 우리 회사가 2년 전에 인수한 곳이야. 좀 특이한 곳이긴 한데…. 그래도 꽤나 유망한 곳이야.”


나는 조금 실망했다. 나는 바이오에 지원할 생각이 없었고 청용이가 바이오를 다닌다는 것은 지금 내가 얻을 게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물었다.


“어… 하하… 그렇구나. 축하해. 그래도 혹시 본사 쪽 면접 팁이라도 이런 것 알려줄 수 있어?”


“미안한데. 거긴 좀 빡세.”


청용은 조금의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을…. 그렇게 하냐….”


청용의 냉정한 말에 섭섭하면서도 화가 났다. 나는 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바이오 이야기를 한 거야. 여기는 내가 힘을 좀 써볼 수 있어. 나도 신입인데 이 말하는 게 좀 웃기지만….”


청용의 제안은 뜻밖이었다.


“거길 지원하라고? 나는 잘 모르는데인데?”


“그래서 말한 거야. 여기 사람 많이 뽑는 곳이거든. 처음에는 허드렛일을 좀 하겠지만 그래도 성장의 기회도 많고 괜찮은 곳이야. 연봉도 본사랑 비슷해. 신입 연봉으로 치면 국내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야. 어때 지원할래? 아마 어렵지 않을 거야. 네가 면접 때 잘만 대답하면 입사도 금방이야. 일단 내가 추천서 써줄게.”


청용의 말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이 고맙긴 했지만 무언가 찝찝했다. 그동안 취업이 어려웠는데 이렇게 쉽게? 그것도 연봉도 많이 주는데?

그날, 나는 청용에게서 바이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듣기에도 충분히 괜찮은 곳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청용의 말에 빠져들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지만 술자리가 끝나갈 때는 바이오에 꼭 입사하고 싶어졌다.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이력서와 자소서를 썼다. 청용을 통해서 지원한다면 된다고 해서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청용의 메일로 내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그 주 금요일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굉장히 무난했다. 어려움도 없었고 내가 대답 못 할 것도 없었다. 바이오에 대한 전문 지식을 물어볼 것을 대비해 용어를 외웠지만 그조차도 묻지 않았다. 면접관은 그저 성실히 일할 수 있는 사람만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면접을 보고 일주일 후,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원부터 합격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수월했던 서류와 면접 전형과는 달리 채용검진 과정은 꽤나 복잡했다. 검사는 무려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기본적인 신체검사는 물론이고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 검사, 수면 패턴까지 내 신체에 대한 모든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채용 검진에 대한 합격 소식을 듣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채용 검진을 하고 한 달 동안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탈락을 했다고 생각했다. 검진 과정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다. 내 몸에 이상이 있을까 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마침내 합격 통보가 왔다. 최종 합격이었다. 검진 이후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이번 합격 소식은 굉장히 기뻤다.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우리는 오랜만에 고기를 먹었다.

다음 날, 회사에서 메일이 왔다. 입사일과 처우에 대한 내용이었다. 입사일은 굉장히 빨랐다. 메일을 받은 시점은 10월 25일이었는데 바로 일주일 후에 입사를 해야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기숙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입사 후 1년 동안은 강제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회사는 서울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내가 출근을 해야 하는 사무실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 있는 도시였고 나는 당장 일주일 후부터 그곳에서 적어도 1년은 살아야 했다. 입사 지원 과정에서 전혀 듣지 못했던 내용이었기에 나는 청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청용은 바쁜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별로 없었다. 당장 집을 떠나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회사 입사를 취소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내가 절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에게 사실을 전하고 이사 준비를 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여자 친구였다. 여자 친구와는 1년째 연애를 하고 있는데 사실 내 처지 때문에 제대로 만난 날 자체가 거의 없었다. 취업하면 여자 친구와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적어도 1년은 더 자주 보지 못 할 확률이 많았다. 나는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내 합격 소식과 앞으로 1년 동안 있을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도 오빠 잘됐다. 나는 괜찮으니까 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내가 가끔 오빠가 있는 곳 가면 되는 거고, 오빠도 서울 가끔 올라오고.”


여자 친구는 굉장히 침착하게 반응했다. 한동안 나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는데 그녀는 그것이 슬프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내가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고맙다고만 했다. 그리고 입사 전까지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11월 1일이 되었다.



“자 왔구나. 그래, 진우야 고생해라. 종종 연락하고.”


아버지의 차를 타고 회사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다행히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이제 일상생활이 가능하셨다. 그래도 아직 운전은 무리라고 생각해 나는 굳이 같이 가시겠다는 아버지를 말렸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나는 트렁크의 짐을 내렸다. 아버지는 짐을 내리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셨다. 나도 아버지의 얼굴을 잠깐 쳐다봤다. 많이 야위고 늙으셨다.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꾹 참고 아버지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감사해요. 아버지. 저 꼭 연락드릴게요.”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는 안아주셨다. 꾹 참던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건강해라.”


아버지는 내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나도 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버지는 다시 차를 타고 시동을 거셨다. 한참 동안 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차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주시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기숙사로 걸어갔다.


“정진우 님이죠?”


기숙사 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잘 차려진 정장에 비싼 안경을 낀 잘생긴 남자가 서있었다.


“강한수라고 합니다.”


한수라는 남자는 나에게 명함을 내밀며 인사했다. 한수의 명함에는 ‘인피니트 바이오 인사팀’이라 적혀있었다.


“안녕하세요. 정진우라고 합니다.”


나는 그에게 인사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은 입사자가 한 명이라 바로 방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한수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요? 입사자가 계속 있는 건가요?”


“한동안은요? 저희 검진이 조금 복잡해서 입사 일정이 조금씩 달라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수가 검진 이야기를 하니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래. 이 회사의 검진 방식이면 입사 일정이 각각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짐 풀고 바로 회사로 가는 건가요?”


“네? 아니요. 오늘은 그냥 짐 풀고 쉬고 계세요. 오늘은 입사 날이지만 쉬는 날이기도 해요. 오늘은 푹 쉬세요. 내일부터 바빠질 것이니까요. 내일은 제가 회사 소개하고 이런저런 것 알려드릴 거고요. 오후에는 부서로 이동하셔서 본격적으로 일하시게 될 거게요. 부서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어떤 팀은 바로 업무 주시는데도 있고, 어떤 데는 한 달 넘게 대기만 하시는 곳도 있어요. 진우 님이 들어가시게 되는 부서는… 어디 보자…. 아! 그럼 이건 내일부터 그냥 일하시겠네요. 고생하시겠어요. 오늘 정말 푹 쉬세요!”


한수는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입사 첫날인데 쉴 수 있다는 것은 좋았지만 당장 내일부터 바쁘게 일한다고 하니 긴장이 되었다. 내일부터 하게 되는 일은 무엇일까? 서류도 내고 면접도 봤지만 우리 부서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까지 나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 여기입니다. 여기가 진우 님이 1년 동안 쓰실 곳이에요. 기숙사는 2인실이에요.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들 좋은 분이니깐 걱정 마세요. 진우 님이랑 같이 사용하시는 분은…. 어디 보자…. 준서 님! 박준서 님이네요. 오 이분 정말 좋은 분이죠.”


내가 사용하게 될 곳은 꽤나 깔끔한 곳이었다. 룸메이트가 있다는 것이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방 곳곳에 박준서라는 이름이 많이 보였다. 흠…이 물건은 준서라는 사람이 것이라고 이렇게 표기해둔 것인가? 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침대 구석에 ‘신규민’이라는 이름표가 보였다. 전에 살던 사람인가?


“신규민? 이 분은 원래 이곳에 계시던 분인가요?”


“어?”


한수는 빠른 속도로 나에게 접근하더니 이름표를 뺏어갔다. 한수는 아까까지는 볼 수 없었던 냉정한 표정을 보였다. 냉정을 넘어서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하… 여기도 회사니 까요. 퇴사자가 있을 수 있죠.”


한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름표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기숙사 사용 규칙이랑 진우 님 이름표예요. 조금 유치한 것 같지만 그래도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이름표를 사용하실 일도 있을 거예요. 아무튼 저는 다시 회사로 가봐야 해서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쉬고 계세요. 룸메이트는 퇴근하시면 오 실 테니 오늘은 두 분이서 술도 드시면서 친해져 보세요. 그럼 갈게요!”


한수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졌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그건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내 침대이자 과거 심규민이라는 사람이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침대에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피곤했다. 나는 눈을 감았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깜깜했다. 다른 방에는 사람들이 퇴근했는지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내가 있는 방에는 여전히 나만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밤 11시였다. 내 룸메인 준서라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숙사도 있는 곳이니 야근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일찍 잠에서 깼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다시 잠에 들기로 했다. 중간에 준서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가 방에 오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날까 고민하다가 그냥 자기로 했다. 실수로 울린 거겠지. 별거 아닌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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