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강한수의 하루

퇴사 처리

by 우주 작가

2033년 11월 4일 금요일.

강한수의 기록을 각색.



벌써 금요일이다. 이번 주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 교육도 시켜야 했고 쓸데없이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팀장 때문에 야근도 일주일 내내 해야 했다. 오늘은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푹 쉴 생각이다.


“미진 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역시나 미진이 가장 먼저 와있었다. 미진은 우리 팀에서 가장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일만 생각하느라 인간미가 떨어진다는 것 빼고는 좋은 분이기는 하다.


“네… 한수 님. 안녕”


미진은 모니터만 쳐다보며 나에게 인사했다.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이네요.”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다.


“네. 그러게요. 아이씨….”


미진이 갑자기 짜증 냈다.


“왜? 왜? 무슨 일이에요?”


“지난달부터 퇴사자가 너무 많아요. 오늘 또 퇴사한다고 메신저로 연락이 왔네?”


“그러게요. 지난달까지 합치면 벌써 20명 아닌가? 그런데 누구예요?”


“박준서? 이 사람 구매팀 사람인데…. 입사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인데….”


미진의 말에 나는 살짝 놀랐다. 박준서? 어디서 이 이름을 많이 들은 것 같지? 아… 맞아.


“박준서 님? 어 그분 이번 주에 입사하신 분 룸메이트예요. 입사하신 분이 하도 준서 님 언제 오냐고 물어봐서 이름이 익숙했네요.”


그래, 정진우, 그 사람이 찾던 룸메이트였다. 며칠 동안 야근만 한다는 그런 사람…. 이 회사에서는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하아…이 분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네요. 영훈 님이 짐 좀 정리해달라고 연락 왔어요.”


미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말인즉슨….


“제가 또 짐을 정리해야 한다는 거죠? 하아… 진짜 한숨 나오네요. 이걸 왜 인사팀이 하고 있는 거야.”


가끔 퇴사자들이 짐도 안 챙기고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나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짐은 인사팀에서 정리해야 했다. 이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투덜거림도 잠시, 팀장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나도 미진처럼 컴퓨터 모니터만 응시했다. 팀장은 사무실이 시끄러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회사에서 일할 때는 이해라는 감정은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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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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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일과까지 마치고 나는 기숙사로 갔다. 박준서가 있었던 숙소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관리실에서 마스터키를 받고 3층으로 갔다. 나는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마스터키로 그냥 열 수도 있었지만 안에 누가 있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역시 안에는 누군가 있었다. 바로 정진우였다.


“안녕하세요. 우리 자주 보네요. 회사 일은 할 만… 한 거죠?”


나는 진우에게 반갑게 인사하려고 했지만 그의 표정을 보고 뒷말을 흐렸다. 진우는 넋이 나간 사람 같이 서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닙니다. 죄송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진우가 나에게 물었다.


“아…. 그게 박준서 님이 퇴사를 해서요. 그래서 짐을… 정리…”


“퇴사요? 박준서 님이 퇴사했나요? 왜요? 왜 퇴사를 한 거죠?”


갑자기 진우가 나를 다그치며 물었다.


“어… 그게… 회사에서 퇴사하는 게 별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퇴사…. 저도 할 수 있고 진우 님도 할 수 있는 그런 퇴사요.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저 오기 전에 있던 분도 퇴사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신규민 님 말이에요. 그분 어디 아프셨나요? 아니면 사고가 있었나요?”


진우는 몹시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글쎄요. 아픈 것은 모르겠어요. 제가 인사팀이긴 하지만 제가 다 아는 것은 아니에요. 누가 아프다고 했나요?”


진우에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네요. 퇴사한 것을 저에게 알리려고 오신 건가요?”


진우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는 차분해졌다.


“짐을 정리하러 왔어요. 좀 웃긴 말이긴 한데…. 준서 님이 퇴사하고 바로 서울로 가버려서요. 짐을 두고 갔다고 하네요.”


“아이고, 그러시군요. 제가 짐 옮기는 것 돕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도울게요. 뭘 정리하면 될까요? 아 옷부터 먼저 할까요?”


진우 덕분에 그래도 빠르게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준서의 이름표가 붙은 물건들까지 모두 모아서 박스에 넣었다.


“고맙습니다. 진우 님. 여기 아마 다음 주 중에 새로 들어오실 거예요. 그때까지는 죄송하지만 혼자 지내고 계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박스에 박준서라는 이름을 쓰면서 진우에게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저기 혹시 퇴사자가 좀 많은 편인가요?”


“아아.. 아니에요. 그냥 요즘 살짝 많아진 정도고 다른 회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더라고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진우의 질문에 대답하며 그의 눈빛을 살폈다. 무언가를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한수 님. 혹시 주말에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건가요?”


나를 계속 쳐다보던 진우가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네. 그냥 평범한 직장인의 주말이죠. 뭐. 근처에 볼거리 몇 개 추천해서 보내드릴까요?”


“아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번 주는 근처에 뭐가 있나 천천히 제가 둘러볼게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주말 잘 보내세요! 아 혹시 이 박스들 옮기는 것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앞에 있는 준서의 짐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같이 옮기시죠. 박스가 좀 큰데 구르마 같은 것은 없을까요?”


진우의 말에 내가 여기 오면서 제일 중요한 것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어디 가서 빌려오기도 뭐하니 나눠서 옮기죠. 이거 어디에 두면 될까요?”


“죄송해요. 그럼 박스 들고 저 따라오세요.”


나는 진우를 화물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3번에 걸쳐서 짐을 계속해서 화물 엘리베이터 쪽으로 옮겼다. 너무 힘들었다. 머리가 나쁘니 몸이 고생하고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진우 님. 이제는 제가 혼자 옮길 수 있어서 정말 먼저 가셔도 됩니다.”


나는 진우에게 인사하고 화물 엘리베이터에 탔다. 목적지는 지하 3층이었다. 주차장이 있는 곳이었다.



“한수 님. 헐… 이거 혼자 옮기신 거예요? 구르마는요?”


지하 3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지아가 나를 보자마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두고 왔어요. 여기는 구르마 있죠?”


“네. 지금도 이렇게 짜잔! 가지고 왔어요. 이제부터는 저희가 처리할 테니 한수 님은 올라가서 쉬세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수고하세요.”


나는 지아에게 인사하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서 내려 건물 밖으로 나갔다. 내가 머무는 기숙사는 이곳이 아니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기숙사는 보안 레벨 B인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무거운 짐을 옮겼더니 팔 곳곳,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오늘은 들어가서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만 누워있을 것이다. 정말 피곤한 금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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