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정진우의 하루

취준 커플

by 우주 작가

2033년 11월 5일 토요일.

정진우의 기록을 각색.



입사하고 첫 주말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여자 친구를 보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갔다.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여자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 일주일도 안 지났지만 말이다. 그래도 입사 후 첫 만남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더 반가웠다.

여자 친구와는 평소에 자주 보던 카페에서 만났다.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싶었다. 여자 친구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노트북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 역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력서를 쓰느라 바쁘다는 그녀를 내가 억지로 불러낸 것이었다.


“오빠 잘 지냈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만나는 사이 치고는 제법 어색한 인사였다.


“어 소은아. 너도 별일 없었지?”


나도 마치 헤어졌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그녀에게 인사하고 말았다.


“오늘은 간단하게 커피만 마시자. 미안해. 나도 여기저기 이력서 넣느라 바빠.”


그녀는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바로 펼치며 말했다.


“괜찮아. 커피는 어떤 걸로 할래? 평소처럼 뜨거운 아메리카노?”


“아니, 난 내 거 시키고 왔어. 오빠 마시고 싶은 거 시켜.”


그녀는 노트북 화면만 바로 본채 나에게 말했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정말 그녀와 멀어진 것 같았다. 사실 입사하기 전부터 우리는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했었다. 서로 취업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녀 역시 나처럼 취업에 대한 압박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회사는 어때? 다닐 만 해?”


그래도 그녀가 내 안부를 먼저 물어줬다.


“어… 아직은 모르겠어. 입사한 첫날은 기숙사에 계속 있었고 둘째 날도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출근하지 말라고 했고 목요일, 금요일은 파일만 지우다 왔어. 이런 일 하려고 들어간 게 아닌데 말이야.”


“신입인데 뭘 하겠어. 다들 복사하고 커피 타는 것부터 일 시작한다잖아. 오빠는 좋았네 뭐. 이틀 출근 안 하고, 일도 무난하고.”


“아니, 그래도 뭐 일다운 일이라도 할 줄 알았지.”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조금 울컥했다.


“나도 그런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 어? 내 거 나왔다. 오빠는 안 시켜?”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진동벨을 들고일어나며 말했다.


“어? 아아 내가 내려가서 내 거 시키고 네 것도 가져올게. 앉아있어.”


나도 자리에 일어나 그녀를 앉히고 그녀의 진동벨을 뺏었다. 카운터에 간 나는 그녀가 시킨 커피를 받고 내가 마실 음료를 시켰다. 내 것이 나오는 동안 잠시 카운터에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음료가 나오자 그녀의 커피와 함께 자리로 가져왔다.


“자, 여기.”


“어. 고마워. 그래서 회사 사람들이랑은 좀 친해졌어?”


그녀는 자신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물었다.


“아니. 뭐 그럴 수가 없어. 근무도 얼마 안 했고. 아 기숙사에 룸메이트가 원래 있어야 하는데 퇴사를 했더라?”


“퇴사? 거기 좋은 회사 같던데? 거길 퇴사해? 자리 났으면 나도 넣을까?”


“네가 우리 회사 오면 정말 좋지. 그런데 여기 퇴사자가 조금 많더라고. 내가 쓰는 방에 전에 있던 사람도 퇴사했고, 물어보니 지난 한 달 동안 꽤 많이 나갔더라.”


“그래? 요즘 같은 때 어딜 간다고 다들 퇴사를 할까… 거기 유전 공학 연구하는 데잖아? 나도 오빠가 지원한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대단하던데. 거기 박사님 인터뷰 자료도 봤어.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연구를 한다던데. 투자도 많이 들어오고, 연봉도 꽤 높다며?”


“나도 지원할 때는 그런 대단한 회사인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니 그냥 보통 회사더라고. 게다가 나는 일반 사무직이라서 그런 대단한 연구 같은 건 볼 기회도 없고. 회사가 정말 단순 업무가 많더라. 인사팀이라는 사람은 퇴사자 짐을 치우고 있지를 않나. 하는 일도 이상하더라고. 다들 퇴사하는 이유가 있겠지. 직장 안 다니는 사람들은 모를 그런 게 있겠더라…. 아….”


“그거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순간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미안해. 내가 괜한 헛소리를.”


“오빠, 겨우 이틀 다녔는데 이제 나랑 구분하고 있는 거야?”


“아… 아니. 진짜 미안해, 소은아”


“하아… 오빠 나도 요새 힘든 거 알지? 괜히 바쁜 사람 불러내서 이런 소리 할 거면, 그냥 나 갈게.”


그녀는 눈을 한참 비비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 진짜 미안해. 소은아. 진짜 진짜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


나는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사정했다.


“에휴…. 너무 예민하게 굴었네. 나도 사과할게. 여하튼 그런 말은 하지 마. 오빠나 나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은 처지였잖아.”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화가 금방 풀린 것 같았다.


“정말 미안해. 절대 그런 말 다시는 안 할게.”


“그래서 오빠 회사 지원해? 지원해도 괜찮아?”


“어어 지원하면 나도 좋지. 내가 친구한테 한번 추천해달라고 해볼까?”


“그래 주면 정말 고맙지.”


“알았어. 내가 친구랑. 아 그리고 친한 건 아니지만 자주 보고 있는 인사팀 직원도 있어. 그 사람한테 한 번 물어볼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신입이 벌써부터 그러면 미움 살라.”


“응. 알았어. 너무 걱정 마…아…!”


갑자기 무언가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왜? 무슨 일 있어?”


“거기 계약서를 아직 안 썼네. 그런 말도 없고.”


“입사를 했는데 계약서를 안 써? 기숙사 생활까지 하는데? 월요일에 가서 물어봐”


“그래, 그래야겠다.”


계약서를 안 쓰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한 둘은 아니었다.


“아…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말았다.


“뭐 또 있어?”


“아.. 아니야. 별거 아니야. 그냥 기숙사 창문 열어두고 온 거 같아서.”


그녀에게 퇴사자의 이름에 사망 처리라 되어있는 이야기를 말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나도 이해 안 되는 일을 그녀에게 설명할 자신도 없었고 그런 말을 밖에서 하는 것도 이상했다.


“조심 좀 해. 내일 돌아가?”


“어. 오늘은 집에서 좀 자려고.”


“그래.”


그녀는 내 이야기에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 한참을 무언가 클릭하고 타이핑하는 그녀를 보니 내가 방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미안. 내가 좀 방해되는 거 같네. 나 먼저 일어날게. 여기서 일 좀 보다가 갈 거지?”


“응…. 한동안은 계속 이럴 것 같아. 서울 또 올라오지?”


“어.. 그래야지. 매주 올라오려고 하는데?”


“뭘 또 매주 올라와. 나는 매주 시간 내기는 어렵고. 다음에 볼 때 내가 연락할게. 미안해.”


“괜찮아. 그럼 수고해. 나 먼저 갈게.”


“응.”


그녀는 가볍게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녀와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카페 밖으로 나와 차가운 공기를 들이켰다.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오후 2시. 집에는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했는데…. 시간이 꼬여버렸다. 한숨을 쉬었다. 카페 창문 너머로 그녀의 모습을 다시 봤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내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지금 이 모든 것이 기회일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앞으로 갔다. 오늘은 서울 이곳 저것 돌아다니며 시간이나 때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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