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복귀
2033년 11월 7일 월요일.
민아영의 기록을 각색.
휴가를 다녀오고 오랜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친구들과 여행이 있어서 몇 달 전부터 휴가를 써야 한다고 말했지만 상사라는 인간은 내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있다가 내가 막상 휴가를 낸다고 하니 “지금처럼 바쁠 때 왜 휴가를 가는 거죠?” 이 소리나 했다. 정작 팀장님은 가만히 있는데 왜 그 꼰대가 나서서 내가 휴가를 내는 것이 참견을 했는지 모르겠다.
“에이, 은호 님. 왜 그래요. 아영 님. 잘 다녀와요. 요새 거기 좀 이런저런 사건이 많던데 조심히 다녀와요.”
은호의 꼰대질을 보다 못한 팀장님이 나섰다. 둘이 10살 차이 난다는데 팀장님이 더 젊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하튼 팀장님 덕분에 나는 친구들과 무사히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받은 것들을 여행을 통해 모두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복귀를 해야 하는 날은 다가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집에 와있었다. 여행 짐을 들고 집에 들어가는데 마음이 헛헛했다.
우리 집은 회사에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기숙사 생활이 싫어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집을 하나 얻어 산지도 어느새 2년이 되었다. 그 사이 함께 살기로 한 동료들이 퇴사를 하며 집에는 나만 홀로 남았다. 3명이서 나눠서 내던 월세를 혼자 내야 했기에 부담이 컸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기숙사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함께 살 다른 동료들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집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처음에는 여자 혼자 사는 것이 무서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혼자 사는 것이 편했다. 다른 사람과 살 때는 매일 집에 들어오면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곤 했다. 매번 같은 이야기…. 때로는 그것이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지겨워졌다. 내 감정 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이 들어오는 게 싫었다. 그냥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혼자 사는 지금은? 너무나도 편안했다. 누구의 눈치도, 누구의 마음도 헤아릴 필요가 없었다.
아침 출근길, 회사로 가는 단 하나의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나와 같이 기숙사를 탈출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지금 당장 기숙사의 어디인가를 말하면 바로 그 주제로 한참 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나를 비롯해서 누구도 그곳에서의 기억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곳은 끔찍한 곳이니깐.
처음 입사했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될 줄은 몰랐다. 평생 어린아이로, 평생 떨어지는 나뭇잎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사춘기 소녀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취업을 해야 하는 때가 왔고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긴 어둠이 평생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지금 회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내가 지원했을 때는 아주 작은 스타트업에 가까운 곳이었다. 대표님은 굉장히 젊었고 회사 사람들도 나이가 어렸다. 연구소 인력이 채워지면서 회사의 규모는 더욱 커졌고 대기업에 인수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올라가면서 꼰대들도 많아졌다. 은호라는 꼰대는 본사에서 이곳으로 이동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본사에서도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똑같이 본사에서 온 팀장님은 달랐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리더십도 있고 무엇보다 일도 잘했다. 그나마 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것도 팀장님 덕분인 것 같다.
몇몇 좋은 사람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회사 생활은 재밌지 않았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비슷한 업무를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지금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알 수 없었고 티도 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갔다.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던 고등학교 시절과 별반 차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번에는 탈출할 수 없었다. 돈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가능한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내 회사 입구가 보인다. 지옥으로 가는 길…. 나는 회사 입구를 그렇게 불렀다. 오랜만에 봤는데도 지겨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다니던 이틀 전이 벌써부터 그리웠다.
무의미한 인사를 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아마도 신입인 것 같았다. 쯧쯧 너는 어쩌다가 여기로 오게 되었니?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십니까?”
신입은 긴장한 것 같았다. 목소리에는 떨림이 아직 있었다.
“저는 민아영이라고 해요.”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선배님. 저는 정진우라고 합니다. 지난주부터 근무하고 있습니다!”
군기가 든 목소리였다. 여기는 군대가 아닌데…. 남자들은 왜 이러나 모르겠다.
“아.. 네. 반가워요.”
나는 그를 스쳐 보내고 내 자리로 갔다. 이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야… 아영 님. 피부가 더 좋아졌네. 휴가 가서 재밌었나 봐? 나도 휴가나 다녀올까? 그래서 잘 다녀왔어요?”
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꼰대스러운 대사는 어디서 가르치는 곳이 있나? 왜 다들 저런 톤으로 말하는 걸까?
“안녕하세요. 은호 님. 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가식적인 말이다. 은호 덕분이라면 난 휴가에 못 갔을 거다.
“하하.. 아영 님 없어서 회사가 좀 조용하더라고. 여기 신입도 오셨고. 오늘 팀장님이 회식하자고 하는데? 시간 괜찮죠?”
정말 목소리 하나하나가 듣기 싫다.
“어? 오늘 회식 아닌데…. 아영 님 오면 서로 시간 확인하고 회식하자. 이게 팀장님 말씀이었는데요?”
윤서였다. 윤서는 굉장히 시니컬한 사람이었다. 은호는 그런 윤서를 좀 어려워했다. 오늘도 그녀는 은호에게 한방 먹이고 있었다.
“앗.. 에헴…. 아니, 오늘이 제일 좋지 않겠냐는 거죠. 제가 팀장님 오시면 다시 물어볼게요.”
은호는 민망해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윤서에게 고맙다는 표현으로 목례를 했다. 그녀는 손을 나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됐어요”라는 그녀의 표현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어? 아영 님 휴가 잘 다녀왔어요?”
팀장님이었다. 그의 향이 사무실로 퍼졌다. 그의 향수는 기분이 좋은 냄새가 났다.
“네. 팀장님. 잘 다녀왔습니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팀장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자, 그럼 오늘 다들 일찍 왔네요. 아? 건우 님은 어디 갔어요?”
팀장님은 자리에 앉아 우리 자리 쪽을 살펴보며 말했다.
“아! 아까 화장실에 가신다고 했습니다.”
신입이 말했다.
“또 똥 싸러 간 거야?”
이번엔 은호였다. 은호는 항상 저런 식으로 말했다. 굳이 저렇게 말해야 하나?
“에헴… 아무튼 오늘 다들 오셨으니 오전에 회의 좀 할게요. 앞으로 30분 후에 회의실에서 봅시다.”
이렇게 다시 회사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유일한 이유가 되는 팀장님, 내가 회사를 려 치우고 싶은 다양한 이유 중 하나가 되는 은호, 조금 시니컬한 윤서, 장난기 많고 재미있는 건우, 그리고 군기가 든 신입 씨. 다음 휴가 가기 전까지 나는 좋든 싫든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벌써부터 모든 것이 지겹구나…. 나는 힘겹게 컴퓨터 모니터를 다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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