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허유민의 하루

인터뷰

by 우주 작가

2033년 11월 9일 수요일.

허유민의 기록을 각색.


성공한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대표를 만났다. 이제 겨우 회사를 차린 대표에게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어느 정도 투자를 받고 주위에서 ‘대표님’, ‘대표님’ 소리를 듣는 이에게는 거만함이 있었다. 오직 자신만이 옳고 자신만이 회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대표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거만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정점에서 실패를 맛보고 내려온 대표들은 겸손한 척하지만 몸에 베인 특유의 거만한 행동을 보이곤 했다. 그보다 더 높은 지위, 세상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의 대표들은 자신을 철저하게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그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날 때도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대표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성공에 대한 열망. 그 열망만큼은 절대 숨길 수 없었다. 그들은 만족을 몰랐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나와의 인터뷰 시간은 1시간 남짓.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 관찰했다. 나 역시 성공이라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궁금했다.

오늘은 IB의 대표인 김지한을 만나는 날이었다. 김지한은 무표정 리더로 우리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렇다고 아예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거래처 사람들에게 ‘형님’, ‘형님’하며 친한 척하기도 하고 아주 미세하게나마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는 차가운 모습을 유지했다. 아주 미세한 미소를 주목하는 것이 그의 감정을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김지한을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김지한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그는 냉철하고 논리적인 리더였다. 투자설명회에서 그는 투자자들이 자신이 아닌 발표 자료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다. 한번 그의 발표 자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 김지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까먹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의 발표 자료에만 집중했고 그 내용에 현혹되었다. 발표가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 김지한의 모습이 보였다. 김지한은 이때도 무표정으로 있었다. 나는 그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회사에서 김지한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인터뷰어는 당연히 나였다. 세상에서 가장 잘난 김지한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나였다. 나는 김지한을 만나기 전, 그가 인터뷰한 내용을 모두 확인했다. 그리고 IB의 연구자료까지 섭렵했다. 지금 당장 IB의 면접을 봐도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했다.

그러나 조사를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정확히 무엇이 이상한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기자의 감이라고 할까? 그의 회사는 뭔가 수상했다. 내 나름대로 회사와 김지한에 대해서 정리했다. 인터뷰를 하며 그의 허점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김지한을 만나는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회사 건물에 도착한 나는 안내데스크에 내 신원을 밝히고 레벨 C라는 구역으로 갔다. 꽤나 무섭게 생긴 보안 요원이 동행했다. 레벨 C는 연구소가 있는 곳이었다. 연구소는 촬영이 되지 않았고 연구소 안 쪽에 있는 사무실에서 김지한을 만나기로 했다.


“와, 여기 시설 끝내준다….”


나와 함께 인터뷰를 촬영할 최수영 선배는 베테랑 카메라맨이었다. 나는 1년 전부터 선배와 일을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선배는 입이 좀 가벼운 타입이었다. 이런 보안 시설을 보고 나서 선배는 분명 밖에 말하고 다닐 것이 뻔했다. 보안요원에게 ‘이 사람을 조심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이번 인터뷰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나만의 비밀로 하고 잠자코 보안요원 뒤를 따라갔다.


“여기입니다.”


너무 과묵해서 말을 하는 법도 잊었을 것 같던 보안요원이 웃으면서 어떤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보안요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자세히 보니 꽤나 순한 얼굴이었다.

방 안에는 보안요원보다 더 날카롭게 우리의 인터뷰에 더 이상은 응할 것 같지 않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바로 김지한이었다. 김지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저 사람은 진짜 웃고 있는 게 아니야.’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진실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서 오세요. 허유민 기자님. 옆에는 카메라 감독님이신가요?”


지한은 우리를 친절하게 대했지만 어딘가 권위적인 면도 있었다.


“아. 하하하. 예. 저는 최수영이라고 합니다. 우리 대표님 정말 잘 생겼네요. 카메라에 아주 잘 담기겠어요.”


선배는 호탕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허유민 기자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아주 평범하게 지한에게 인사했다.


“자, 자리에 앉으세요. 차나 한잔 할까요? 아니면 커피?”


“아 저는 일을 할 때는 물만 마십니다. 여기 물이 있을까요?”


선배가 카메라를 세팅하며 말했다.


“네. 그럼 기자님도 물 괜찮으시죠? 여기 있습니다.”


지한은 내게 묻지도 않고 물병을 나에게 줬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하고 물병을 낚아챘다.


“그럼 바로 인터뷰를 해도 괜찮을까요? 대표님이 왜 이 회사를 차리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물을 마시고 나는 바로 그에게 질문했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을 때 그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이거 바로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이 회사를 차린 이유…. 뭐 그런 건 다른 기사 보면 나오지 않나요?”


“음… 그래도 인터뷰는 응하셔야….”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기자님이 긴장하신 것 같아서 조금 긴장을 풀어드리려고 그랬습니다. 좋아요. 제가 회사를 차린 이유. 말씀드리죠.”


지한은 어느새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의 말과 행동에 화가 났지만 나는 꾹 참고 인터뷰를 이어갔다. 지한의 대답은 모든 것이 평이했다. 그의 말처럼 다른 곳을 찾으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회사 홈페이지를 가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지한의 어린 시절, 지한이 회사를 설립한 이유, 회사의 비전, 목표, 회사가 연구하는 것, 모든 것들은 이미 알려진 것들이었다. 이대로라면 인터뷰를 한 보람이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질문이 필요했다.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이런… 회심의 질문을 한다는 게 너무 두서없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바보같이 지금 무슨 질문을 한 거야.


“생명을 연장한다는 건…. 오래 산다는 뜻이겠죠?”


지한은 내 질문에 또 전형적인 답변을 했다. 이번 인터뷰는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아휴 멍청이.


“오래 산다는 건 무슨 뜻이죠?”


기왕 망한 인터뷰 그냥 생각나는 데로 하기로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같이 답변에 대한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해보자. 지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저러지?


“오랜만에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네요. 반대로 기자님에게 묻고 싶어요. 기자님은 영생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자신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오히려 역으로 기자한테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내 바보 같은 질문이 지한에게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글쎄요? 말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인데요. 어떻게 영생을 하는 것인지 물어보신 것이라면 저는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죽지 않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정말 철학자들의 토론 같이 되어버렸네.


“그걸 연구하는 게 IB 아닌가요? 이번엔 오히려 제가 대표님께 묻고 싶어요. IB에서 연구하는 것은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것인가요?”


“아니요.”


아니라고? 다른 언론 보도나 김지한이 여태까지 말한 것은 다 그런 내용이었는데?


“아… 아니라고요? 하지만 대표님이 연구하시는 것은 신체 부위를 재생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작년에 00 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영생을 꿈꾸는 게 대표님의 비전이라고 하셨는데요?”


지한은 아까보다 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지한… 당신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건 일부일 뿐이에요. 인간의 수명이 120살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우리 연구로 인해서 사람의 수명이 200살이 되었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럼 사람들은 좋아할까요? 기자님은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


“저요? 저는…글쎄요. 저는 한 70살까지만 살고 싶네요.”


“왜 그렇죠?”


“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들고 친구들도 없어지고 저 혼자 오래 살아서 뭐해요. 그리고 이 세상이 오래 살만큼 좋은 세상도 아닌걸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아 선배는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카메라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선배에게 물었다.


“나? 어… 저도 뭐 한 100살까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좀 그렇네요.”


선배가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


“감독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그야… 허기자 말과 비슷할 거예요. 늙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잖아요. 아무리 내가 수술을 받아도 내가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죠.”


“그래요.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젊음이 없는 영생은 진짜 영생이라 볼 수 없죠.”


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저희도 생각했어요. 우리 연구가 단순히 노인이 오래 사는 것을 위한 연구라면? 그런 연구는 많죠. 투자는 받았지만 우리는 계속 고민했어요. 진짜 영생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영생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때요? 기자님? 우리가 해답을 찾았을까요?”


지한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서늘했다.


“그.. 글쎄요? 답을 찾으셨나요?”


“기자님은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지한이 뒷짐을 지고 나에게 물었다.


“올해로 35살입니다.”


“만약 기자님에게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젊은 시절? 사실 지금도 젊다고는 생각하지만…. 질문의 의도대로 답한다면 20살로 돌아가고 싶어요.”


“왜 그렇죠?”


“아무래도 가장 젊고, 학교 공부에서도 조금 자유롭게, 뭘 해도 재미있던 시절이라서요?”


“만약 기자님이 60살이고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요? 그럼 그때는 몇 살로 돌아가고 싶으실 것 같으세요?”


“제가 60살이라면요? 그러면 지금 나이도 좋겠지요. 하지만 그때도 20살을 선택할 것 같아요. 가장 젊은 시절이라서요.”


“그래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10대나 20대를 아마 고르겠죠. 그래서 우리는 연구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가장 신체적으로 강하고 가장 활발하고, 그러면서도 지적으로 성숙한 시절. 바로 젊음이 진짜 영생이라 생각하고 말이죠.”


“그럼 젊어지는 약이라도 발명하셨다는 건가요?”


“맞아요. 아직 실험 중이지만 우리는 젊어지는 약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인류의 새로운 진화를 이끌어낼 거예요.”


지한은 미친 사람 같았다.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지금 하는 소리는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다. 생각해보면 영생을 연구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지금 하는 소리만큼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저… 대표님. 지금 하신 말들 진심이신가요? 이런 말씀은 어디에서도 하신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지한에게 말했다.


“아…. 그래서 지금 저희가 나눈 대화는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네?”


“아니, 뭐라고?”


선배와 나는 너무 당황했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야. 여태까지 실컷 말해놓고 이걸 내보내지 못한다고?


“생명 연장에 대해서 물으신 다음부터는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인터뷰 자료 내보내시기 전에 저희한테 확인을 받으셔야 합니다.”


지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인터뷰를 해놓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예 말을 못 한다니요?”


“오프 더 레코드. 기자님이 그런 단어도 모르십니까? 저희 기밀 연구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참아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했다. 이럴 거면 인터뷰는 대체 왜 한 거야?


“대신에…. 기자님. 괜찮으시면 주말에 있는 행사에 기자님을 초대해도 될까요? 물론 그 행사에 대한 내용도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만…. 나중에 저희 연구를 세상에 공개할 때, 기자님이 가장 먼저 보도할 수 있게 해 드리죠. 이건 제 명예를 걸고 하는 약속입니다.”


“주말에요? 아니, 그보다 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는 거죠?”


“제가 오랫동안 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야기해보면 압니다. 누가 깊이가 있고 누가 말이 통하는 사람인지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님이라면 믿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지한의 설명은 나를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한의 뜻에 따르는 것이 맞았다. 인터뷰를 하면서 지한과 IB에 대해 깊게 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게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나는 그들에 대한 자세한 기사를 쓰고 싶어졌다.


“알겠습니다. 주말이라면 언제죠?”


“시간과 장소는 제 비서를 통해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죄송하지만 감독님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지한은 차갑게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화가 난 것 같았지만 꾹꾹 참고 있었다.

이후 지한에게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모든 대답은 평범했다. 영상 몇 개를 더 따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다시 가드가 등장했고 우리는 지한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아니, 이곳이 지한의 사무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수상했다.


“어우, 재수 없는 새끼.”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오자 선배는 성질을 부렸다. 선배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분명 지한은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

지한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다른 대표들이 가지고 있는 성공에 대한 욕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꿍꿍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단순히 미친놈일까? 아니면 범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엄청난 천재인 걸까? 아무래도 주말에 있다는 행사에 가서 김지한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깊게 파봐야겠다. 그의 진짜 생각과 모습을 반드시 파해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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