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정진우의 하루

소리

by 우주 작가

2033년 11월 8일 화요일.

정진우의 기록을 각색.


회사에 입사한지도 어느덧 일주일 째다. 어제는 드디어 계약서를 쓰고 제법 일다운 일도 주어졌다.

내가 속한 운영팀은 회사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는 부서에 가까웠다. 자료를 분석한다기보다는 정리를 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회사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늘리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임상 실험이 필요했다.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 정부의 통제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그에 대한 데이터를 단순히 정리해서 정부에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 분석은 연구원들이 하기 때문에 우리가 연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연구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이 중요했다.

윤서는 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원래는 박사과정까지 밟으려고 했지만 공부가 싫어 회사로 온 사람이었다. 아영 역시 생명공학 전공이었다. 건우는 화학과 출신이라 원래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 비해 팀장과 은호는 결이 많이 달랐다. 팀장은 기계과를 나왔고 은호는 사회과학을 전공했다. 원래 하던 일도 지금의 일과는 전혀 달랐는데 본사에서 지금의 부서로 발령을 내린 것이었다. 팀장은 우리 부서로 오고 나서 공부도 많이 하고 윤서와 이야기를 하며 회사의 연구에 대해 탐구하려는 자세를 가졌지만 은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부서와 가장 어울리지 않고 가장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물리학과 출신이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연구에 대해 잘 알지는 못 해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자료에 대한 풍부한 이해는 윤서와 아영의 몫이었다. 둘 다 시니컬하고 남들과 잘 지내는 타입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잘 적응하려면 두 사람하고 친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안녕하세요. 윤서 님!”


“네…”


몇 번 보지는 않았지만 윤서 님은 항상 이런 식으로 나를 대했다.


“안녕하세요. 아영 님!”


“아, 네 그래요, 안녕하세요. 신입 씨… 아니…그 저… 이름이 뭐였죠?”


아영 님은 어제만 해도 내 이름을 3번 이상 물어봤다. 여전히 그녀는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 뭐요? 어제 내가 하란 거 다 했어요?”


이건 은호….


“오 진우 님. 오늘도 화이팅해요! 오늘 점심 돈가스라는데 돈가스 좋아해요?”


이건 건우.


“진우 님. 안녕하십니까. 다들 안녕하죠? 은호 님. 어제 그 이야기하던 거 말이에요. 잠시 더 이야기 가능해요?”


이건 팀장님의 반응이었다. 재현 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았으나 팀원들이 모두 팀장님이라고 불렀기에 나오 팀장님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해졌다. 따지고 보니 나는 아직 팀원들이랑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고작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더 바라는 내가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카페야. 이력서 쓰려고.’


이건 여자 친구의 메시지. 나는 꽤나 다정하게 보냈는데 여자 친구는 요새 계속 이런 식이었다. 회사 사람들보다 그녀와 내 사이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에휴…. 일이나 하자.’


나는 컴퓨터를 바라보며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찾아온 점심시간….


“아영 님. 같이 식사하실래요?”


다른 팀과는 다르게 우리 팀은 점심도 따로 먹었다. 팀장님은 식사를 잘 안 하셨고 은호는 점심시간에 운동하러 간다며 회사 헬스장을 이용했다. 윤서는 점심에 밥을 먹는 것보다 모자란 잠을 자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통 건우랑 밥을 먹고는 했는데 건우가 갑자기 속이 안 좋다며 밥을 못 먹겠다고 했다. 결국 남은 사람은 아영…. 아영은 어제 점심을 먹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네. 식사하시죠. 신입 씨…아 죄송해요. 그 성함이…”


그녀는 네 번째 내 이름을 물어봤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부류 같았다. 나는 그녀와 구내식당으로 갔다. 건우의 말대로 오늘은 돈가스가 나왔다. 돈가스 말고도 다른 메뉴가 있었는데 다들 돈가스만 찾고 있었다. 아영은 샐러드 코너에서 점심 식사를 받고 있었다. 돈가스 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나 역시 아영을 따라 샐러드를 골랐다.


“여기 구내식당 맛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자리에 앉으며 아영에게 말을 걸었다.


“신입 씨…아 죄송해요… 진수 님? 은 이 회사가 처음 아니에요?”


아영은 또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진우입니다. 네 그렇죠.”


도대체 내 이름을 몇 번을 말해줘야 하는가….


“아 미안해요. 제가 휴가에서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정신이 좀 없나 봐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 그런데 저희 하는 일이 있잖아요. 계속 보다 보니 신기한 게 많은 것 같아요.”


“음… 어떤 게요?”


“아 보통 이런 연구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는 게 좀 놀라워서요.”


“우리나라도 좋은 연구자들 많아요. 여기 저희 선배들도 있고…. 다들 좋은 사람들이죠.”


“저도 건우 님한테 따로 들었어요. 아영 님은 원래 생명공학 전공하셨다면서요?”


“다 옛날이야기죠. “


“그래도 연구 자료들 보니깐 저는 이해 안 가는 게 많은데 아영 님은 이해되는 것이 많지 않으세요?”


“저도 잘 몰라요. 제가 연구한 것도 아니고…. 그냥 용어와 구조만 대강 이해 갈 뿐…. 그리고 그런 것은 별로 도움 안 되는 것 알잖아요? 여기 은호 님 같은 사람도 우리 일 하는데….”


아영은 은호 이야기를 할 때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면서 조용히 말했다. 은호를 싫어하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 혹시 아영 님. 우리 연구 자료 있잖아요. 그거 얼마 전에 파쇄하는데 퇴사자 이름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뭐라고요?”


아영이 다정하게 나에게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퇴사자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심하게 정색하며 내 말을 끊었다.


“어… 저 그게…”


“인사팀 자료가 잘못 흘러갔나 봐요. 신경 쓰지 마요.”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심하게 신경 쓰였다. 그녀는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회사 직원이 죽은 적도 있나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진우 님.”


이제야 그녀가 내 이름을 제대로 기억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매서웠다.


“제가 충고할게요. 헛소리 할 거면 저나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지 마세요.”


이 말을 하며 그녀는 나에게 입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그녀의 입을 보니 그녀가 무슨 단어를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 닥치고 있어.’


그녀의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샐러드가 참 맛있네요.”


나는 겨우 다음 대화 주제를 찾아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구내식당이 꽤나 훌륭…..”


[삐이이잉 삐이이잉 삐이이잉. 화재 경보입니다. 전 직원분들은 비상문을 이용하여 밖으로 나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내가 입사 첫날에 어렴풋이 들었던 그 소리 같았다. 나는 단순히 화재경보기가 잘못 작동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앞의 아영은 내 손을 붙잡고 말하고 있었다.


“빨리 나가야 해요!!”


주위를 둘러보니 밥을 먹고 있던 직원들도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러고만 있을 시간은 아닌 것 같았다. 아영은 내 손을 붙잡고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끌려가다가 손을 놓고 내 속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화재 경보가 울려서 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뒤에 쫓아오듯이 우리는 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왜 뛰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비상구에는 직원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아수라장은 아니었다. 직원들은 질서 정연하게 한 줄로 이동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지금 상황이 익숙해 보였다. 소방 훈련을 매달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것인가?

아영과 앞의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1층에 도착했다. 안내데스크에 있는 직원과 가드들도 모두 회사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1시간 넘게 밖에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침착했고 몇몇 사람들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회사 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진우 님은 다친데 없어요?”


뒤에서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네. 괜찮습니다. 아영 님이 잘 이끌어주셨어요.”


“아영 님. 고생했어요.”


“아.. 아닙니다. 팀장님. 진우 님이 이번 일이 처음이라 잘 모르실 것 같아서요.”


처음? 이런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인가? 역시 소방 훈련 같은 것인가?


“진우 님. 많이 놀랐죠? 그냥 소방 훈련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별 거 아니야. 별 거….”


팀장님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밖에서 대기했다. 고요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다다다닥’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건물 안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어렴풋이 들려서 잘 모르겠지만 총소리 같기도 했다. 그런데 총일리가… 무슨 기계음 같은 것이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어떤 남자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의사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 연구원으로 보였다. 하얀색 가운 밑에는 피 같은 것이 보였다. 저건 또 뭐지?

그 남자는 검은 양복을 입은 가드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가드는 남자의 말을 한참 동안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드는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곧 회사 공지가 올라올 것입니다. 직원 분들은 공지를 꼭 확인해 주세요.”


직원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에 가드의 목소리는 전체에게 다 닿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회사에서 지급한 단말기를 확인했다. 내가 정식으로 출근한 첫날 한수에게 받은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개인 기기 대신 회사 단말기로 소통을 한다고 했다. 단말기에는 가드가 말한 데로 공지가 올라왔다는 알림이 떠있었다. 나는 공지를 확인했다.



[공지]

직원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오늘 회사 내 설비 고장으로 인해 회사 건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재택용 노트북을 지급받으신 분들은 재택근무를 실시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재택이 불가능한 업무를 하시거나 아직 재택용 기기를 지급받지 못하신 분들은 댁에서 대기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한 공지였다. 회사에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에이씨. 또야? 요새 너무 잦은 거 아니야?”


은호가 불평을 했다. 또라니? 잠깐…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출근을 못 한 날이 생각났다. 그럼 그날도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자자, 그럼 다들 집으로 돌아가세요. 진우 님은 놀랐을 텐데 진우 님은 재택용 기기가 없으니 기숙사 들어가서 쉬도록 하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팀장님은 익숙한 듯 우리들에게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라는 거지? 내일 말고 지금 이야기해줘


“저.. 저기 팀장님…”


나는 팀장님에게 물어보려고 그를 불렀다.


“내일… 내일 이야기합시다. 진우 님.”


팀장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는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영, 은호, 건우 등 모든 사람이 그러하였다.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회사 일을 하는 게 맞는가 싶었고 이렇게 월급을 받는 게 맞는 일인가 싶었다. 대체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다 무엇일까? 의문만 깊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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