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최가은의 하루

안내데스크

by 우주 작가

2033년 11월 2일 수요일.

최가은의 기록을 각색.



“안녕하십니까~”


회사 1층 안내데스크의 하루는 오늘도 변함이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친한 척하는 사람들. 외부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요새 부쩍 많이 보이는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 나는 그들이 회사에 출입할 때마다 가벼운 목례와 영혼 없는 인사로 맞이했다. 조금은 바쁘지만 출근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한적해져서 괜찮았다.


“어제 그 영화 보셨어요?”


조금 여유로워지면 옆에 앉은 동료와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정말로 그들의 삶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어색해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대화였다.


“굿모닝~ 고생들 많으세요. 자 여기 커피요. 가은 님은 좋아하시는 라테. 유진 님은 아메리카노에 헤이즐럿 시럽 추가한 것….인데… 얼래? 유진 님 오늘 안 나오시나요?”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다 보면 사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방금 찾아온 선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180대 중반의 키에 훤칠한 외모인 선준은 회사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굉장히 냉철할 것 같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덤벙거리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은 내 옆에 앉아 있는 유진이었다. 회사에서는 선준을 짝사랑하는 여직원들이 몇 명 있었는데 선준이 유진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유진에게 안 좋은 소문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유진이 조금 불쌍했다.


“유진 님은 오늘 병가 냈어요.”


나는 선준을 향해 말했다.


“병가요? 아이고, 걱정되네…. 많이 아픈 건 아니죠?”


선준은 진심으로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아… 그럼 이 커피는…아 유정 님. 아이고 내가 유정 님 것을 깜빡했네.”


선준은 유정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선준 님. 그럼 그 커피 제가 마셔도 돼요?”


유정은 태연하게 말했다.


“아아.. 네네. 죄송해요. 다음에는 유정 님 것도 가져올게요.”


선준은 유정에게 커피를 주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아 유진 님 번호 모르세요? 한번 연락해 보세요. 선준 님. 남자가 너무 머뭇거리면 그것도 매력이 없어요.”


유정은 웃으며 선준에게 말했다.


“하하…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유정 님. 감사해요! 가은 님도 유정 님도 오늘 화이팅 하세요!”


선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출입 게이트로 이동했다. 너무 급하게 가려다 기둥을 못 보고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지만 선준은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사라졌다.


“유진 님이나 선준 님이나 다들 부럽네요. 청춘인가. 그래도 선준 님은 내 존재도 잊고 좀 그렇긴 하네요.”


아까까지 친절했던 유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흠… 보통 이 시간엔 유정 님이 안 계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유정을 달래듯이 말했다.


“그런가? 그러고 보니 가은 님도 저런 남자 하나 있지 않았어요?”


유정의 말에 갑자기 나한테 관심을 보이던 남자가 기억났다.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지….


“아 그렇죠. 예전에 있었죠.”


“그 사람은 선준 님보다는 더 적극적이었잖아? 요샌 안 보이네?”


“그러네요. 저도 잊고 있었어요.”


“둘이 데이트도 하지 않았어?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요?”


“아.. 아니에요. 커피 마시자고 해서 한 번 밖에서 본 것뿐이에요. 그냥 제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래요? 그러게. 요새 정말 안 보이네? 다른 데로 갔나? 뭐 다른 이야기는 없었어요?”


“글쎄요. 그런 이야기를 할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라서요. 그냥 퇴사한 것 아닐까요?”


“퇴사자인가? 그 사람도 꽤나 훤칠했는데 아깝게 되었네…어? 안녕하십니까?”


유정이 말을 하고 있는데 데스크 앞에 또 한 남자가 나타났다. 회사 내 연구소의 소장인 주혁진이었다.


“안녕하세요. 그 오늘 제 손님이 올 거예요. 김진호라는 사람인데 그분 오시면 연구소로 출입증 발급해 주세요.”


주혁진 소장은 백발에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친절한 어른 같았지만 어딘가 음흉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이기도 했다. 담배를 많이 핀 탓에 목소리는 탁했고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아 그의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가장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소장을 빨리 보냈다. 담배 특유의 역한 냄새도 나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담배 냄새가 맞나? 조금 다른 냄새가 나는 것도 같은데….


소장은 우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출입증을 꺼내 사무실로 들어갔다.


“소장님 말이야. 나만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소장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유정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소장을 꺼려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표현을 했다. 소장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예전에 나에게 관심을 보이던 민혁을 잠시 떠올렸다. 나랑 커피를 마셨던 사람. 그 이후로 사라진 사람. 아마 퇴사를 했을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은 연구소 직원이었다. 즉, 저 소장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 밑에서 일했으니 그도 힘들었을 것 같다. 그가 퇴사를 했다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보고 싶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실례합니다. 주혁진 소장님과 미팅이 있어서 왔는데요.”


마른 체형에 검은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안내데스크로 찾아왔다. 요새는 이런 스타일의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소장이 말한 손님이 이 사람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인피니트 바이오입니다. 소장님 손님이시군요. 소장님께 이야기 전달받았습니다. 자 그럼 신분증 한 번 주실 수 있을까요?”


남자는 조용히 신분증을 내밀었다. 이름은 이동현. 2005년생. 나이는 분위기에 비해 꽤나 젊었다. 나는 남자의 정보를 빨리 컴퓨터에 입력했다.


“네 확인되셨습니다. 여기 연구소 출입증입니다. 성우 님. 주혁진 소장님 손님이세요. 안내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보안요원 성우에게 동현의 안내를 부탁했다. 덩치가 큰 성우 옆에 동현이 서니 마치 어른과 아이가 같이 서있는 것 같았다. 성우는 동현을 데리고 연구소 방향으로 갔다. 동현은 어떤 사람일까? 아니, 요새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은 대체 왜 이렇게 많이 회사를 찾아오는 것일까?


안내데스크의 하루는 오늘도 평범하게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서 어디론가의 식당으로 향했고 돌아올 때는 다들 커피를 들고 왔다. 퇴근 시간이 되면 수많은 무리가 저마다의 안식처로 향했다. 이곳은 거의 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이제 내가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무리에 섞여 회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기숙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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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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