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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0. 2022

12월 9일 장지혁의 하루

직장인의 빙하기 

“스타트업의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처음 이 말을 언론에서 들었을 때, 지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스타트업이 어렵지 않은 적이 있나?”


지혁은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회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지혁의 회사는 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 중 하나였고 매출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가지고 있는 캐시카우가 든든해서 망하기는 어려웠다. 

지난달, 회사는 전체 직원들에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회사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사업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직원들은 걱정 말고 회사를 다니라는 메일을 보냈다. 이 메일을 본 지혁은  안심하고 있었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하지만 메일을 받은 이후에 회사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얼마 전 메일 왔잖아요? 그거 자세히 읽어보면 은근 탈출 신호 준거라는 말도 있어요. 회사 어려운 건 사실이고 누구누구 해고한다는 소리도 있어요”


지혁의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지혁에게 넌지시 말했다.


“에이, 설마요. 요새 상황이 다들 어려우니 직원들이 행여나 동요될까 봐 회사에서 안심하라고 한 거겠죠.”


지혁은 동료의 말을 웃어넘겼다. 


“흠…. 그러면 좋겠는데 말이죠.”


지혁에게 이 말을 한 동료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 회사를 그만뒀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흘렀다. 



“지혁 님. 알죠? 우리 사업부 곧 정리한다고 하네.”


지난 월요일, 지혁은 자신의 팀장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팀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네? 그.. 그럼 저희는요?”


지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회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일단 너무 당황하지 말고요. 다른 부서에서 지혁 님이랑 면담할 수 있어요. 다른 부서로 가야 할 수 있으니….”


“그럼 팀장님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지혁의 팀장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이후 지혁은 다른 팀 사람들과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지혁이 기존에 하던 업무랑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곳이었다. 지혁은 그들과 면담을 하긴 했지만 그 부서에 가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지혁은 같은 팀 동료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몇 명은 회사에 남아서 일단 버텨보기로 했고 몇몇은 면담을 하자마자 퇴사를 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혁은 그들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결국 지혁은 다른 팀에서 잠시 버티기로 했다. 지금 당장 회사를 나간다고 해서 새로운 곳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이직을 생각한다고 해도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지혁은 자신의 팀장과 새로운 팀장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다음 주에 부서를 이동하기로 했다. 지혁은 이렇게라도 버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오늘 지혁이 출근하자마자 회사의 부대표로 있는 승진이 그를 회의실로 불렀다. 지혁이 회사를 다니면서 부대표와 직접 이야기를 나눈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부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용건을 바로 이야기했다.


“그래요. 지혁 님. 오늘 보자고 한 것은…. 음…. 미안한데요. 요새 회사가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지혁 님 팀을 없앤 것도 돈이 되는 부서만 남기자는 것이었어요. 그래도 거기 다니시던 분들을 최대한 계속 데리고 가려고 했었어요. 지혁 님도 아시겠지만 그래서 다른 팀장님들에게 부탁해서 면담을 해달라고 한 거고요. 그런데 이랬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계산으로는 인력을 줄이지 않으면 도저히 못 버틴다는 결론이 내려졌어요. 그래서….”


지혁은 부대표의 입에서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 그는 심장이 철렁했다. 


“그냥 인력을 줄이려고 해요. 미안합니다. 지혁 님. 오신지 1년은 넘으셨으니 퇴직금은 지급해드릴 수 있고요.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오늘까지만 나와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인사팀에서 절차 밟을 거고요.”


“저 부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오늘까지라고 하는 건….”


지혁은 억울했다.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혁 님이 일 잘하는 건 저도 지켜봐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신사업부에서 하던 일은 이제 저희는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어요. 그렇다고 지혁 님이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되는 부서로 가는 것보다는 그냥 이 경력 살려서 다른 곳 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제가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지혁 님이 다음 주에 가려는 곳 팀장님 하고도 이야기를 오래 해봤는데요. 거기도 오히려 인력을 줄여야 할 판이라 저희가 지혁 님까지 챙길 여력이 도저히 없네요. 정말 죄송해요. 그냥 저를 원망하세요.”


“아… 아니…. 그래도….”


“휴우…. 미안해요. 충분히 시간을 드려야 하는데. 일단 인사팀장님이랑 이야기 나눠보세요. 먼저 나가보세요. 또 다른 분들한테도 이 소식을 말씀드려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부대표는 죄송하다고는 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혁은 그의 그런 표정을 보고 더 절망했다. 지혁은 회의실을 나가 사무실에 앉은 다른 동료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굳은 표정이었다. 지혁은 저항할 수조차 없는 현실에 그거 기가 막혔다. 

지혁은 바로 인사팀과 이야기하여 퇴사 절차를 밟았다. 인사팀은 지금 사태에 대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지혁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제 컴퓨터 포맷도 다 되었으니, 짐 챙겨서 나가시면 됩니다. 오늘은 퇴근 기록 안 남겨주셔도 됩니다.”


인사팀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지혁은 회사를 나왔다. 친하게 지냈던 몇 명의 동료들이 마중 나와주었다. 그들 중 몇 명은 곧 회사를 그만둘 사람들이었다. 지혁 회에도 오늘 같이 그만두면 동료들도 있었다. 지혁은 그래도 혼자 쓸쓸히 나가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바로 들어가실 거예요? 술이나 먹을까요?”


지혁은 동반 퇴사하는 동료들한테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모두 동의했고 지혁은 그들과 함께 근처 식당으로 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지혁은 오늘같이 회사에서 쫓겨날 줄은 몰랐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회사에서 추방되었고 지혁의 앞길은 막막해졌다. 스타트업의 겨울이라고 했지만 그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는 빙하기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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