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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0. 2022

12월 10일 강대엽의 이야기

마지막 꿈

대엽은 지난 몇 달간 계속 악몽에 시달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악몽인 적은 없었다. 행복한 꿈을 꾸다가 갑자기 악몽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었고 평범한 꿈이었는데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는 꿈도 있었다. 어떤 식으로 꿈을 꾸든 결말은 공포 혹은 절망으로 끝났다. 대엽의 배게는 항상 땀에 젖어있었고 꿈에서 깬 대엽은 악몽이 계속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꿈자리가 너무 사나워 대엽은 굉장히 예민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대엽에게는 어떠한 불행도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대엽의 하루는 행복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잘 되었고 연봉도 올랐다. 대엽뿐만이 아니었다. 대엽의 아내 역시 직장에서 좋은 일이 생겼고 대엽의 아들도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대엽의 부모님과 처가에도 기쁜 일이 가득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악몽을 꿨다. 대엽은 최근 자신의 주변에 찾아온 행운이 꿈에서 액땜을 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했다. 마치 그의 꿈이 그에게 원래 다가왔어야 하는 모든 불행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도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대엽은 너무 괴로웠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고 꿈에서 깬 현실에서도 악몽에서 봤던 무언가가 계속 떠올랐다. 잠도 제대로 잔 것이 아니라서 일상에서도 계속 잠이 쏟아졌다. 대엽의 업무 생산성도 떨어졌는데 그런 것을 감안하면 지금 회사에서 대엽이 계속해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대엽은 오늘도 악몽을 꿨다. 하지만 그 꿈은 평소 하고는 다른 것이었다. 꿈속에서 대엽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엽과 친구들은 마치 10대의 모습 같았다. 꿈속에서 대엽은 자신이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나이인데도 술을 먹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꿈을 조절할 수는 없었다.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느새 친구들의 모습은 군대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그들 중에는 대엽이 정말 싫어하던 선임도 있었다. 선임은 술을 마시다가 대엽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시비를 걸었다. 


“야, 강대엽! 너 씨발 내가 시킨 거 했냐?”


선임의 말을 듣자마자 대엽은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엽은 선임에게 “시정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선임이 대엽을 다시 불렀다.


“야 너 씨발 나 무시하냐?”


대엽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무실에 중대장이 들어왔다.


“너네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술을 마시고 있어?”


중대장의 말에 대엽과 다른 사람들은 순간 얼어붙었다. 대엽은 이제 정말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따라와!”


중대장은 대엽을 지목하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대엽은 그를 따라갔다. 대엽은 다른 사람들은 안 따라오나 뒤를 돌아봤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엽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중대장 뒤를 따라갔다. 

중대장은 대엽을 눈이 내리는 설산으로 데려갔다. 한국이라 하기엔 너무나 눈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대엽은 이곳이 히말라야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엽은 히말라야를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꿈속의 풍경은 익숙한 곳이었다. 

다음 장면에서 대엽은 조난을 당한 상태였다.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엽은 조난을 당해 몸이 힘든 상태였다. 대엽은 어떻게든 이곳을 탈출하려고 했지만 그곳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윽고 거대한 소리와 함께 눈사태가 일어났다. 거대한 눈이 대엽을 덮쳤고 대엽은 눈을 감았다. 차가운 눈이 그의 몸을 감쌌다. 

눈을 떠보니 이번에 대엽은 바다에 빠져있었다. 차가운 눈은 어느새 차디찬 물이 되어있었고 대엽은 가라앉고 있었다. 이곳 역시 익숙한 곳이었다. 대엽이 해외여행을 갔을 때 스노클링을 한 곳이었다. 현실에서는 전혀 깊지 않은 곳이었지만 꿈속에서의 바다는 심해와 같았다. 대엽은 끊임없이 가라앉았고 그곳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정신을 잃은 대엽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이 역시 대엽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위기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엽은 퍼스트 클래스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승무원은 누워있는 대엽에게 불편한 것은 없는지를 물었다. 어안이 벙벙한 대엽은 괜찮다고만 대답했다. 

비행은 순조롭게 끝났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으로 들어간 대엽의 눈앞에는 어떤 공장이 펼쳐져있었다. 그 공장은 대엽이 현재 일하는 곳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대엽은 능숙하게 공장을 누비며 마치 현실처럼 일을 했다. 

일을 마친 대엽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아까 만났던 대엽의 선임이었다.


“시킨 일은 다 했냐?”


“네! 다 했습니다!”


“그럼 가자!”


대엽은 말없이 선임을 따라갔다. 여전히 그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엽이 데려간 곳은 산 속이었다. 이 산도 익숙한 곳이었다. 그리나 이곳은 대엽이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곳이었다. 지난 몇 달간 대엽이 꾸는 꿈의 끝에 나타나는 공포스러운 산이었다. 산은 평소와 같이 어두웠고 안개가 자욱했다. 이곳에서는 귀신, 괴물, 외계인, 다른 무엇인가가 항상 등장했다. 이곳에만 오면 대엽은 긴장을 하면서도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꿈이 끝나간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임은 말없이 앞으로 계속 걸었다. 대엽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선임이 사람이 아닐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진부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긴 하지만 이렇게 앞에 따라갈 때 열에 일곱은 다른 존재였다. 하지만 대엽은 굳이 선임의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았다. 어떤 전개 방식인지는 알아도 무서운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엽의 선임은 대엽을 숲의 끝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는 나무를 들추면서 뒤를 돌아 대엽을 쳐다봤다. 그의 모습은 여전히 사람이었다.


“여기로 들어가.”


대엽은 선임이 가리킨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엽의 눈앞에는 아주 밝은 하늘과 절벽이 보였다. 방금까지 안개가 자욱하던 곳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 보였다. 대엽은 뒤를 돌아 선임이 나오는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엽은 다시 뒤를 돌아 앞으로 갔다. 절벽의 끝이 보였다. 그리고 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엽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두 가지 중 선택하세요. 날아갈래요? 떨어질래요?”


대엽의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 물었다. 대엽이 뒤를 돌아보니 한 여인이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 


“어떤 걸 선택해야 하죠?”


대엽이 여인에게 물었다. 


“떨어지면 다시 모든 것이 반복될 것이고, 날아가면 이제 다 끝나게 될 거예요. 대신….”


“대신?”


“아무튼 어떤 것을 선택하실래요? 날아간다면 이 날개를 드리죠.”


대엽은 잠시 생각했다. 여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떨어지는 결말을 선택하면 이 악몽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엽은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날아갈게요. 날아가면 이 악몽이 끝난다는 것이죠?”


대엽이 묻자 여인은 등에 붙일 수 있는 날개를 그에게 건넸다. 대엽은 여인에게 더 묻는 것을 포기하고 등에 날개를 붙였다. 그러자 대엽의 몸이 가벼워지며 발에 땅에서 띄워졌다. 대엽은 갑자기 신났다. 조금 익숙해지자 그는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었다. 대엽은 힘차게 더 날아올랐고 하늘에는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엽은 본능적으로 그곳에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엽은 출구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

.

.


대엽이 눈을 뜨자 그는 침대였다. 대엽은 옆을 바라봤다. 아내가 자고 있었다. 대엽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6분. 대엽은 자신의 볼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현실이었다. 

대엽은 오랜만에 악몽을 꾸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잠에서 깼다. 대엽은 기분이 좋아졌다. 여인이 준 날개 덕분에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았다. 대엽의 몸도 가벼웠다. 그는 바로 방에서 나와 양치를 하고 평소보다 일찍 출근 준비를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대엽은 집을 나와 회사로 갔다. 아침의 공기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대엽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의 전화였다.


“여보. 승훈이가 몸이 너무 아프다고 해서 병원 가고 있어.”


아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왜? 어떤데?”


“몰라. 갑자기 열이 나고 배도 아프다고 하는데 일단. 나 오전 반차 쓰고 좀 확인할게. 전화할 테니 이따 받아.”


전화를 끊은 대엽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대엽 님. 일찍 왔네요. 마침 잘 되었다. 나 좀 볼래요?”


대엽의 상사가 갑자기 그를 불렀다. 대엽은 무슨 일인가 해서 상사에게 갔다. 상사는 대엽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일을 왜 이렇게 처리했냐며 소리를 질렀다. 대엽이 처리한 일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평소에 칭찬받던 매뉴얼대로 한 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업무 처리 방식이었지만 대엽은 갑자기 혼났다. 대엽은 어이가 없었다. 

아침부터 털린 대엽은 마음을 진정할 수 없어 옥상으로 갔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담배를 다 피운 대엽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옥상에서 한 층 내려가는 계단을 이용했다. 그런데 대엽은 순간 발을 헛디뎠고 결국 그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대엽은 순간 정신을 잃었다. 


대엽은 다시 꿈을 꿨다. 대엽의 앞에는 아까 꿈에서 본 여인이 있었다. 대엽은 그녀를 보자마자 자신에게 왜 불행이 닥쳤는지를 따졌다. 그러자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꿈에서의 고통이 사라졌으니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화가 난 대엽이 여인의 어깨를 잡으며 흔드는 순간, 대엽은 다시 눈을 떴다. 대엽은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순간 기절하기는 했지만 가벼운 찰과상 정도였다. 대엽의 눈앞에는 아내가 있었다.


“승훈이는? 승훈이는 어쩌고 여기 왔어?”


“승훈이는 괜찮아. 약간 심한 감기이긴 한데 금방 나을 거래.”


대엽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대엽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대엽의 아내는 ‘아.. 아버님이요?’라는 말과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대엽을 쳐다봤다. 대엽은 아내의 얼굴을 보며 ‘제발, 이상한 말은 하지 말아 줘.’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대엽의 악몽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러나 대엽의 이번엔 현실에서 악몽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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