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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1. 2022

12월 11일 이상인의 하루

20대의 끝

스무 살이 되면 대학생이 될 줄 알았지만 내 인생의 스무 살은 재수생이라는 신분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20대의 끝을 한국에서 맞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회사의 일 때문에 미국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시작과 끝, 그 어떠한 것도 내가 의도한 데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20대는 도대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20살에 재수를 하고 21살에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 22살에 학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군대를 가야 했기에 제대로 고백하지도 못하고 그녀 곁을 떠나야 했다. 아니, 애초에 고백을 한 적도 없으니 떠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내 이름은 아마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군대는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버틸만했다. 전역을 하고 나서도 연락하고 지내는 인연도 만나게 되었다. 25살. 늦은 나이에 복학해 학교를 졸업하기 위한 수많은 미션을 만났다. 학점 관리도 해야 했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나름 견문을 넓히고 싶었지만 26살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 크게 다치시는 바람에 나는 취업을 미룰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27살. 마침내 졸업을 하게 된 나는 운이 좋게도 괜찮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회사가 마치 나의 전부라도 된 듯이 살았다. 하지만 돈을 모을 수는 없었다. 대부분은 저금을 하고 부모님께 돈을 보내드렸다.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었다. 어차피 돈을 쓸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일했고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보고자 야근까지 했다. 실제로 일이 많은 회사이기도 해서 집에 일찍 가는 것은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9살. 정말 오랜만에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대학교 시절 아주 짧게 연애를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연애를 하지 못해 연애 세포가 모두 죽은 다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니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저금하는 액수를 줄여 그녀와 데이트하고 회사에서 일찍 나와서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했다. 그러나 29살 찾아온 사랑은 29살이 지나가기 전에 나를 떠났다. 29살의 겨울, 그렇게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그리고 마침 회사에서 미국 출장을 가라고 했고 나는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났다. 한 달이 넘는 장기 출장이 두렵기도 했지만 어차피 한국에서 할 것도 없었다. 원래는 친구들과 12월 31일 술이라도 마시면서 20살의 끝을 맞이하려고 했지만. 

오늘은 휴일이었다. 미국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주말. 아는 사람도 없고 같이 출장을 온 사람은 미국에 있는 친척을 만난다며 어디론가로 가버렸기 때문에 나는 혼자 도시를 돌아다녔다. 취직을 하고 몇 번 해외 출장을 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쉬는 날에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 되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출장을 왔지만 오늘은 여행객이 되어서 낯선 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도시 곳곳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 캐럴,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약간 다른 그들만의 크리스마스 맞이 문화까지. 이럴 때 미국에 와서 다행이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모습들이 제법 어울리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이러다 보니 나도 온전히 여행객의 기분으로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도시에서 유명한 햄버거 집에 들러 창밖을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미국에 와서 먹는 게 항상 햄버거인 것 같았다. 다른 음식도 먹기는 했지만 가장 무난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라 햄버거를 주로 선택하고 있었다. 매장 안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들과 연인들이 많이 보였다. 낯선 이방인의 신분으로 혼자 햄버거를 먹고 있으니 우울했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계속 돌아다녔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스무 살의 마지막에 보게 되는 이국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담고 싶었다. 아직 스무 살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다. 먼 훗날, 내 20대의 마지막을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게 이곳에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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