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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3. 2022

12월 12일 배재욱의 하루

큰소리

“그래서 지난주에 여러분들이 한 게 뭡니까? 제가 여러분들이 하고 싶다는 거 하지 말라고 했나요? 그런데 결과가 이게 뭐예요?”


재욱은 아침부터 팀원들을 모아놓고 혼내고 있었다. 팀원들이 지난주에 계획한 것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팀원들은 말없이 재욱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재욱의 행동이 익숙했다. 오늘은 재욱이 분명 화낼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 재욱은 팀원들이 일을 잘 하든 못 하든 주기적으로 팀원들을 혼냈다. 그렇기 때문에 팀원들은 재욱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고 그저 자기들 앞에 짜증을 내는 사람이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아 님. 지난주에 그게 뭐예요?”


팀원 전체를 혼내는 시간을 마친 재욱은 이번에는 팀원 한 명 한 명을 거론하며 혼내기 시작했다. 성아를 혼내는 이유는 성아가 지난주에 한 행동 때문이었다. 회사의 사업부에서는 매달 1일 자유롭게 회사에 하고 싶은 말이나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글을 공개된 채팅방에 올릴 수 있었다. 사업부 전체가 보는 채팅방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의미 없는 칭찬글을 올렸지만 지난주의 성아는 달랐다. 그녀는 다가오는 새해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서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긍정적인 내용이었기에 본부장은 그 글을 보고 아이디어가 좋다며 언제 다들 모여서 이야기해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성아의 행동은 팀장인 재욱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었다. 재욱은 공개된 자리에서 성아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 


“본부장님이 좋아하셔서 성아 님도 기고만장하는 거예요? 저를 무시하고요?”


재욱은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저 다들 열심히 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별다른 뜻은 없었어요.”


성아가 재욱을 진정시키려는 뉘앙스로 말했다.


“별다른 뜻이 없는데 거기에 그런 걸 올려요? 이건 저에 대한 도전이에요.”


“….”


“성아 님. 그래서 지난주에 계획한 것도 실행하지 못하는 분이 그렇게 큰 건은 어떻게 해낼 건데요? 본부장님도 관심 보이시는 건데 게으른 성아 님이 또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한다면? 그러면 본부장님은 성아 님이 일을 못 하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지금은 제가 다 커버 쳐주고 있는 거예요. 그걸 모르겠어요?”


성아는 재욱이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아니, 팀장님. 그렇다고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어떡해요? 제가 게으르다고요?”


“그럼. 이게 안 게으른 거야? 지난주에 한다고 한 걸 안 하는데? 게으른 게 아니면 일부러 그런 거예요? 그건 더 심각한데?”


“팀장님.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고요. 안 하려고 한 것도 아니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래 하던 일도 있고 팀장님이 시키신 일도 있어서 일을 바로 못 했을 뿐이에요.”


“내가 시켜서 한 일 때문에? 성아 님. 이거 안 되겠네. 회사 생활 왜 하는 거예요? 자기가 맡은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팀장이 시키는 일도 원래 해야 하는 거예요. 여기에 본인이 하고 싶고 계획 세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그걸 못 했다고 하는 거잖아요? 아니 그래. 성아 님 지난주에 몇 시에 퇴근했죠? 퇴근 기록 좀 볼까요?”


“제가 야근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누가 야근하래요? 모자라면 하는 건 성아 님 자유죠. 그런데 지금은 그 일을 안 했으니 그럼 시간이 없다 건가? 그럼 언제 퇴근했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어려운 거 있어요?”


“아니, 그래도….”


“뭐 더 할 이야기가 있어? 지금 이 이야기밖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까? 누가 잘못했는지? 아무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성아 님. 정신 차려. 더 열심히 해야 해.”


성아는 고개를 숙였다. 분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울컥하기도 했지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재욱에게 지는 것 같았다.


“자, 그다음은 진수 님 이야기해볼까요?”


재욱은 진수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하기 시작했다. 



.

.

.



“에이, 젠장. 요새 애들은 왜 그런지 몰라요.”


재욱은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쉬고 있는 승진에게 말을 걸었다. 승진은 재욱과 같은 팀장 직함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재욱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왜요, 또 팀원들이 말썽 부려요?”


“입만 아프다. 해달라는 거 다 해줘도 왜 그리 불만인지 모르겠어요. 나 있을 때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뒤에 가만 지들끼리 나 까고 있고. 뭐가 불만이냐 물으면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고생 많으십니다. 저도 비슷해요. 저희 마음을 애들이 알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위에서 쪼는 거 커버해주는지 모를 거야. 누군 좋은 말 하는 거 싫어하나? 다 지들 잘되고 회사 잘 되라고 그러는 거지. 에이 짜증 나요. 이따 점심 같이 먹을래요?”


“아… 전 오늘은 속이 안 좋아서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에이, 본부장님이 또 부르시네. 그 성아 님 때문인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고생한다. 먼저 일어나요.”


“네. 고생 많으십니다. 들어가세요.”


승진은 재욱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저 양반 또 애들한테 지랄했나 보구먼.”


재욱은 본부장을 만나러 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승진 님은 또 놀고 있네. 회사에서 일하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재욱과 승진은 속으로는 서로 싫어하면서 겉으로는 공생관계를 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 재욱의 편이 돼줄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재욱은 오늘도 자신이 정말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부장한테도 큰 소리를 칠 정도의 배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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