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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3. 2022

12월 13일 조예서의 하루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 

항상 특별한 계획이 없이 사는 날이 더 많지만 오늘처럼 많이 돌아다니고 다양한 것을 했지만 대부분은 의미는 없이 행동하게 되는 날도 있다. 나는 그런 날을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라고 부른다.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떤 말을 할 때 굉장히 길지만 사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때 흔히 ‘어쩌고 저쩌고’라고 부르는 것처럼 하루의 일상도 ‘어쩌고 저쩌고’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라고 부를 때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최소한 하루 동안 이벤트라 부를 수 있는 것이 2가지 있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난다, 회사에 간다, 퇴근을 한다, 밥을 먹는다 같은 것은 이벤트로 치지 않는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이 아닌 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경우에만 한정한다. 예를 들어 내가 주말에 ‘쇼핑몰에 간다’라고 하는 것은 한 가지의 특별한 이벤트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이벤트 숫자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예를 들어 ‘쇼핑몰에서 영화를 본다’와 ‘쇼핑몰에서 옷을 산다’는 전혀 다른 이벤트이다. 물론 하루 동안 2가지 이상의 장소로 가서 각기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에도 2개 이상의 이벤트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조건은 ‘전혀 의미 없는 일이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어려운 조건이다. 예를 들어 쇼핑몰에서 친구를 만난다고 한다면 의미가 있는 행동에 가까울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나는 내 일기장에 ‘오늘은 00몰에서 친구인 승혜를 만나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라고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는 ‘전혀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다. ‘쇼핑몰을 정처 없이 걸었다’가 ‘전혀 의미 없는 행동’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행동일 때는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어떤 행동을 해도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아주 가끔 있기는 하다.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나도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긴 하다.

마지막 조건은 하루가 지나도 어제 일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 조건하고 비슷하기는 한데 내가 절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무의미하고 특별하지 않은 하루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는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는데 무의미한 행동이었고 기억에 남지도 않은 것들을 했을 때에 해당한다. 하지만 삶에서 무의미한 행동일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 따라서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정확히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였다. 오늘은 연차를 강제로 쓰라는 회사의 뜻깊은 배려 덕분에 예기치 않게 쉬는 날이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지하철을 타고 아무 역이나 내리기는 행동을 하기로 했다. 집에만 있기는 싫은데 막상 할 것은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생각나지 않아 무작정 지하철을 타기로 한 것이었다. 정말 무의미한 행동에 가까웠다.

계획대로 지하철을 탔다. 나는 최대한 멀리 가기로 하고 자리에 앉아 잠을 잤다. 1시간 가까이 지났을 때 눈을 뜨니 익숙지 않은 역 이름이 보였다. 여기다! 나는 그곳에서 바로 내렸다. 평소 같은면 내가 내리지 않았을 곳이었다. 역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도 거의 내리지 않는 곳을 보니 내가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역에서 내려 주위를 살펴보니 평범한 주택 지역이었다. 재미없는 아파트만 잔뜩 보이는 곳이었다. 무의미하게 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호떡을 파는 곳이 보였다. 나는 사장님에게 호떡을 1개 달라고 하고 가지고 있던 현금을 내밀었다. 호떡은 비주얼에서 느껴지는 그대로의 맛이었다. 뜨겁고 달면서 밀가루 맛으로 범벅되어있었다. 

호떡을 다 먹고 근처에 사람 없어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카페라테 하나를 시키고 핸드폰을 보면서 별생각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1시간 넘게 핸드폰 배터리만 방전시키며 시간을 보냈다. 커피의 맛고 인테리어도 주변 풍경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카페에서 일어나 근처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를 봤다. 저 멀리 맛집으로 추정되는 느낌의 가게가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어울리지 않는 가게였다. 나는 근처에 아주 흔하디 흔한 프랜차이즈 김밥 가게에 들어가서 라면과 김밥을 시켜 먹었다. 한국 어디갈가나 똑같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로 가는 사이 남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시간을 낼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나는 오늘은 피곤하니 주말에 보자고 그에게 말했다. 남자 친구도 미련 없이 나와의 데이트를 포기하고 우리는 주말을 기약했다. 남자 친구를 오늘 만났다면 그래도 조금 더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일을 다 마치니 녹초가 되었다. 이젠 저질 체력이 되어서 이렇게만 움직여도 쉽게 체력이 소모되었다. 그래도 운동은 해야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태블릿으로 운동 관련 영상을 틀고 가볍게 몸을 풀어주었다. 운동을 오래 하지 못하고 나는 지쳐서 바닥에 누웠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어느새 밤 10시가 되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니 몸이 더 노곤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면서 오늘 올라온 영상들을 보며 웃었다. 그러다 보니 잠이 다시 쏟아졌다. 핸드폰을 무선 충전기에 올리고 불을 껐다.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려고 하니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오늘 한 모든 행동의 대부분은 정말 의미가 없었다. 오늘은 ‘어쩌고 저쩌고의 하루’였다. 그렇게 ‘어쩌고 저쩌고’한 하루는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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