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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4. 2022

12월 14일 오규진의 하루

끝없는 외부 미팅

용인에 사는 규진은 이른 아침부터 일산으로 가야 했다. 규진의 거래처 중 하나가 미팅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소에는 강남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야 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에도 애매한 거리였기 때문에 그는 오랜만에 차를 타고 일산까지 갔다. 차가 막혀 네비에 찍힌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규진은 아침부터 지친 상태로 거래처에 도착했다. 

미팅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거래처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굉장히 간단했다. 규진은 화상 미팅 대신 대면 미팅을 요청한 거래처가 원망스러웠다. 

오전 미팅을 끝내고 나니 오전 11시였다. 규진은 오후에도 외부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서 간단히 밥을 때우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팅 내용을 보고했다. 간략하게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규진은 근처 식당으로 갔다. 

식당 한 구석에서 밥을 먹고 있던 규진의 눈앞에 익숙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방금 미팅을 같이 한 거래처 직원이었다. 규진과 거래처 직원은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거래처 직원은 일부러 규진과 먼 곳으로 이동했다. 규진은 빨리 먹고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빠르게 밥을 먹은 규진은 다시 거래처 직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다시 차를 탄 규진은 차를 타고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했다. 그는 차를 타고 가다가 드라이브 스루 카페에 들러 커피를 픽업했다. 규진의 차에는 예전에 마시다가 미처 치우지 못 한 커피들도 있었다. 차 안은 이로 인해 묘한 냄새가 났지만 규진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규진은 이전의 흔적을 대충 구석에 치워놓고 오늘 받은 커피를 자동차 컵 홀더에 넣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규진의 다음 목적지는 홍대였다. 홍대를 차를 타고 다니기에는 애매한 곳이었다. 특히 규진이 가야 하는 곳은 굉장히 좁은 골목길에 위치했기에 주차를 할 곳을 찾느라 규진은 근처를 몇 바퀴 돌아야 했다. 겨우 주차할 곳을 찾은 규진은 차를 대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이번에 만나야 하는 업체가 카페로 규진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규진이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한 남자가 규진을 불렀다. 업체 직원이었다. 직원은 규진에게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었고 규진은 마시겠다고 했다. 그는 이미 커피를 마셔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카페에 들어선 이상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업체 직원이 사겠다고 했기 때문에 가장 싼 음료를 골라야 했다. 카페에서 가장 싼 메뉴는 1,500원짜리 커피였다. 

오후 미팅은 오전 미팅보다는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이 업체는 오전에 만난 업체보다 회사의 매출 측면에서 그리 도움이 되는 곳은 아니었다. 즉 규진의 업무 성과에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규진은 최대한 빨리 회의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앓는 소리를 하는 상대방의 말을 끊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미팅은 1시간 30분 넘게 이어졌다. 

미팅을 마친 규진은 회사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 팀장의 전화가 왔다. 다른 업체 미팅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업체는 홍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즉 규진이 직접 다녀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규진은 한숨을 쉬고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했다. 

3번째 미팅 업체는 생산적이면서 규진의 성과에 도움이 되는 곳이었다. 규진은 피곤했지만 오늘의 3번째 커피를 마시면서 열심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아주 순조롭게 이어졌다. 미팅은 의미 있는 결론으로 끝났다. 

모든 미팅을 마치고 규진은 마침내 회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시계는 어느새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규진은 빠르게 회사로 가고 싶었지만 규진이 가는 길에는 서울의 모든 차들이 몰려있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미팅하고 커피를 마시고 계속 차에 있던 탓에 규진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는 창문을 내리고 잠시 바깥바람을 맞았다. 한강 근처에 있어 차가운 강바람이 그의 볼을 스쳤지만 지금 그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굼벵이처럼 가는 차를 타고 겨울바람을 느끼던 규진의 코에 불청객의 냄새가 들어왔다. 바로 담배 냄새였다. 규진이 옆을 쳐다보니 옆에 있는 차의 조수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바로 규진의 차로 들어오고 있던 것이었다. 규진은 짜증을 내면서 얼른 창문을 닫았다. 규진은 당장 욕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정체 구간이라 정의로운 응징이 아니라 쓸데없는 싸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겨우 참고 다시 운전대에 집중했다. 

갑자기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차가 깜빡이를 켜고 규진의 차 앞으로 끼어들었다. 규진이 자세히 보니 운전석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차는 다 피운 담배를 밖으로 던졌다. 규진은 속으로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블랙박스가 잘 촬영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신고할 생각이었다. 규진은 그런 소소한 복수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 있었던 피로를 잠시 잊으려고 했다. 

오랫동안 도로에 있던 규진은 마침내 오후 6시 40분이 되었을 때 회사에 도착했다. 규진이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이미 많은 직원들이 퇴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규진은 한숨을 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팀장 역시 퇴근을 하고 있었다. 팀장은 별일 없냐고 규진에게 물었다. 규진이 보고 할 게 있다고 했지만 팀장은 내일 보고하라고 하며 바로 사무실을 나갔다. 규진은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컴퓨터를 켰다. 이대로 퇴근하고 싶었지만 미팅 때문에 하지 못 한 업무들이 너무 많았다. 규진이 계산해보니 오후 10시는 되어야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규진은 크게 한숨을 쉬며 밀린 업무를 했다. 


‘망할 미팅만 아니었어도…..’


규진은 조용한 사무실에서 시끄럽게 타자를 쳤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소심하게 표현하며 오늘의 진짜 업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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