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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15. 2022

12월 15일 정현승과 유승은의 하루

그들의 마지막 순간

남자의 이야기


남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염없이 핸드폰만 본다. 남자는 여자 친구가 보낸 예전 메시지를 보며 추억에 잠긴다. 남자는 후회되는 감정이 들기도 하고 시원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핸드폰을 보던 남자는 한숨을 쉬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남자는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면서 양치를 한다. 샤워를 마치고 남자는 스킨과 로션을 바른다. 간단하게 머리를 손질하고 방에서 머리를 말린다. 핸드폰이 울린다. 남자는 핸드폰을 든다. 회사에서 온 메시지다. 남자는 빨리 출근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서둘러 준비한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남자는 회사로 출발한다. 남자의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5분 거리다.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이동한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때마침 남자가 타야 할 열차가 도착한다. 남자는 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열차를 탄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마침 자리가 난다. 남자는 자리에 앉는다. 패딩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낸다. 남자는 여자 친구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새로운 메시지는 없다. 남자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잠시 눈을 붙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내려야 하는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회사로 간다. 지하철역에서 남자의 회사까지는 10분. 남자는 시간을 확인한다. 남자는 더 빠른 걸음으로 이동한다.

오늘 회사는 평소와 같다. 항상 하던 업무, 항상 만나는 사람, 혼나지도 칭찬받지도 않는 하루. 남자는 회사 생활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마치 자신의 연애와 같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여자 친구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여자 친구의 메시지가 보인다.


[오늘 어디서 볼 거야?]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항상 데이트하던 장소를 고른다. 남자는 특별한 곳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곧이어 여자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그래]


남자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업무에 집중한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오후 같았지만 퇴근 직전 사고가 터진다. 회의를 다녀온 상사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돌아온다. 그는 남자에게 화를 낸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별 탈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던 하루는 남자의 기분을 완전히 망치면서 끝이 난다. 

남자는 할 일이 남아있지만 정시에 퇴근을 한다. 남자는 여자 친구를 만나야 한다. 남자는 가방을 챙기고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그는 출근할 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간다. 약속 장소까지는 한 정거장. 평소 같은면 걸을 수 있는 거리지만 그러기엔 너무 추운 날씨다. 남자는 패딩을 끝까지 잠그고 지하철역으로 간다. 지하철역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남자는 그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만원 지하철을 뚫고 남자는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여자 친구의 얼굴이 보인다. 둘은 반갑게 인사한다. 하지만 둘 다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킨다. 남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자주 가던 밥집으로 간다. 둘은 밥을 먹으면서 한마디도 안 한다. 여자 친구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과묵하게 밥을 먹는 남자 앞에서 별 말을 할 수는 없다. 

밥을 먹고 남자와 여자는 평소와 같이 카페로 간다. 카페에 앉아 남자는 그동안 여자 친구와 사귀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한다. 여자 친구는 남자의 말에 호응하며 자신의 기억을 말한다. 둘의 분위기는 아까보다 좋아진다. 서로 웃는 소리가 카페 카운터까지 들릴 정도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자 남자는 여자 친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여자 친구는 그런 남자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쉰다. 이제 둘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그 순간이 찾아온다. 

한참을 망설이던 남자는 여자 친구를 향해서 입을 연다. 남자가 뭐라 뭐라 말하고 여자 친구는 잠시 고개를 숙인다. 시끄럽던 카페의 공기는 그들 앞에서 잠시 멈추고 고요함으로 바뀐다.



여자의 이야기



여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그녀는 깨끗하게 씻고 평소보다 더 예쁘게 화장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여자는 평소처럼 남자 친구에게 메시지를 먼저 보낼지 고민을 한다. 하지만 여자는 오늘은 그럴 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자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오늘의 외출을 위한 준비에 더 집중한다. 

준비를 마친 여자는 회사로 출발한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약 1시간 40분. 왕복으로 거의 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여자는 이사를 가고 싶어 한다. 여자는 핸드폰으로 이사 갈 집을 검색한다. 여자는 회사 근처를 먼저 검색한다. 지금 있는 곳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여자는 점점 회사에서 먼 곳을 검색한다. 그나마 괜찮은 거리에 있는 곳을 하나 찾는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너무 별로다. 여자는 한숨을 쉰다. 여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다. 집 찾는 것은 그만두고 음악이라도 들을 생각이다. 

여자가 좋아하는 노래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을 때쯤, 여자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지하철만 3번 갈아타면서 만나게 되는 곳이다. 여자는 이미 지친 상태다. 여자는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며 회사로 간다.

사무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팀장이 여자를 부른다. 여자는 무슨 일인가 싶어 팀장에게 간다. 팀장은 여자가 최근에 맡은 프로젝트가 아주 잘 마무리되었다며 여자를 칭찬한다. 팀장은 이번 일로 여자에게 인센티브가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한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여자가 하는 일은 모두 잘 되고 있다. 여자는 그래서 며칠 째 기분이 좋은 상태다. 단 하나, 남자 친구에 대한 것만 빼고. 4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는 최근 소원해지고 있다. 남자 친구는 여자를 만나는 것을 멀리하고 있고 두 사람은 열흘 넘게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둘이 싸운 것은 아니다. 그저 각자의 일상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자 친구와 다시 잘해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해봤지만 모든 것은 소용이 없다. 결국 여자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하지만 오늘은 둘이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약속 장소도 정하지 않은 오늘. 여자는 답답해서 결국 남자 친구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 어디서 볼 거야?]


여자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에 집중한다. 10분 후 남자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평소에 보던 그곳에서 보자는 내용이다. 여자는 무심하게 다시 남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래]



여자는 알고 있다. 오늘이 어쩌면 그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자는 남자 친구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여자는 오늘 일에만 집중한다. 

퇴근 시간이 되자 팀장이 회식을 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한다. 여자를 비롯해 다른 팀원들도 모두 싫은 눈치다. 여자는 용기 내 팀장에게 남자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말한다. 팀장은 아쉬운 티를 내며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한다. 다른 팀원들은 조용히 여자의 용기에 감사를 표한다. 

여자는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 약속 장소에 정시에 도착한다. 여자는 남자 친구를 기다린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후에 남자 친구가 도착한다. 여자는 평소보다 더 밝은 톤으로 남자 친구에게 인사한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그보다 훨씬 정돈된 톤으로 여자와 인사한다. 여자는 남자 친구가 실망스럽다. 둘은 평소에 가던 식당으로 간다. 여자는 오늘 회사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남자 친구에게 말하고 싶지만 남자 친구는 밥그릇 와 먹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여자는 포기하고 자신의 앞에 놓인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둘은 카페로 간다. 여자와 남자 친구가 처음 데이트했던 그 카페. 가게 이름은 바뀌었지만 곳곳에는 예전의 인테리어가 조금은 남아있다. 남자 친구는 여자에게 갑자기 예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오랜만에 둘은 웃는다. 여자는 분위기가 어쩌면 다시 좋아질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해본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자 남자 친구는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여자는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여자는 남자 친구의 다음 말을 짐작하고 있다. 여자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본다. 이 남자와 헤어지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슬프지 않다. 여자는 남자 친구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런 느낌이 든다. 여자는 작게 한숨을 쉰다. 작게 한숨을 쉰다. 이제 둘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그 순간이 찾아온다. 

한참을 망설이던 남자 친구는 여자를 향해서 입을 연다. 남자 친구가 뭐라 뭐라 말하고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여자는 생각한다. 방금까지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직접 그 이야기를 들이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한다. 시끄럽던 카페의 공기는 그들 앞에서 잠시 멈추고 고요함으로 바뀐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20분 동안 남자와 여자는 말이 없다. 여자가 먼저 일어선다. 남자는 잡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에게 잘 있으라고 한다. 남자는 아무 말도 못 한다. 남자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대로 여자를 잡고 싶다. 하지만 여자는 바로 카페를 나가버린다. 남자는 여자가 매정하다고 생각한다. 카페 문을 나선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과 멀어지는 길을 선택한 남자가 밉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고개를 숙인다. 수없이 상상만 하던 그 순간이 결국 남자의 선택으로 현실이 된다. 남자는 얼굴을 감싼다. 여자는 조용히 마음을 추스르며 걷는다. 


그렇게 12월 15일


정현승과 유승은은 이별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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