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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02. 2022

2월 2일 송다은의 하루

연휴의 마지막 날

다은은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일찍 일어나서 커피 향을 음미하며 책을 읽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추리 소설의 마지막 챕터였다. 이미 수십 번도 본 소설이지만 다은은 항상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본 다은은 책을 덮어놓고 잠시 눈을 감고 책의 내용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다은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다시 노트에 옮겨 적었다. 제대로 정돈되지 않고 줄 조차 지켜지지 않은 수많은 단어와 도형, 그리고 그림이 그려진 다은의 아이디어 노트였다. 다은은 자신의 노트를 읽으며 지금 머릿속에 든 것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다은은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국문과에 들어가면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품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다은은 이상은 접어두고 현실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금방 깨달았다. 문예창작동아리에 들어 잠시 마지막 희망을 가져보기는 했지만 결국 2학년 이후에는 졸업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평범한 대학생 중의 하나가 되었다. 

생각보다 길었던 취준생의 삶이 끝나고 직장인이 되었지만 다은의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소설가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겪는 사회생활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다은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회사의 업무에 어떻게든 익숙해져야 했고 회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했다. 퇴근 시간을 지키기는 어려웠고 새벽에 집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어서 집에 들어가 잡만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6년이 지났다. 그 사이 다은은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다. 다행히 이번 직장은 출퇴근 시간이 잘 지켜지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다은의 집에서 꽤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회사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자 다은은 오랫동안 품었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다은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발전시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찾아다녔다. 다은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저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면 자신은 평생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쌓이기도 했다. 

다은은 글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전업 작가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다은이 찾아본 수많은 사례처럼 다은은 회사를 다니면서 밤과 주말에 글을 쓰면서 조금씩 작가의 꿈을 키워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소설 공모전에 대해서도 알아봤고 웹소설과 시나리오 공모전도 관심 있게 찾아봤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다은은 자신이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을 먼저 준비하기로 했다.

바로 추리 소설이었다. 다은은 어린 시절부터 추리 소설과 추리 만화를 좋아했다. 한국에서 그리 인기가 좋은 장르는 아니지만 다은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고 당장 시작한다면 가장 자신 있는 장르였기 때문에 다은은 추리 소설을 쓰기로 했다. 이를 위해 다은은 주말에는 도서관을 들려서 자료 조사를 하고 주중에는 소설을 위한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시간이 날 때는 추리 스릴러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어떤 포인트를 강조하고 어떤 포인트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공부했다. 

다음으로 다은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추리 소설들을 보며 이 소설들이 어떻게 트릭을 구현하고 어떻게 단서를 찾아내며 그리고 이를 위한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를 어떤 식으로 보여주는지를 연구했다. 번역투의 글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면 다은은 직접 원서를 찾아서 하나하나 해석하며 어떻게 해야 살아있는 문장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지났다. 다은은 서두르지는 않았다. 1년 간은 실제 글을 쓴다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레퍼런스를 찾는 과정에 집중했다. 회사에서의 프로젝트도 중요한 것이 생겼기 때문에 온전히 소설에 신경을 쓸 수 없는 것도 서두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정확히 말하면 다은은 최근 3개월 동안 소설에 제대로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다은은 오랜만에 연휴가 찾아온 것을 크게 반겼다. 이제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은은 연휴 동안 다시 좋아하는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의 '챕터 1'의 초안을 작성하는 것을 이번 설 연휴의 목표로 삼았다. 

연휴라 늦잠을 잘 수 있었지만 다은은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글을 먼저 읽고 아이디어를 다시 정리하고 오후 시간부터 밤늦게까지 온전히 글을 쓴다라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 연휴 동안 계속해서 이 루틴을 지켰다.  그리고 이제 연휴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다은은 연휴가 끝나가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목표했던 '챕터 1'은 거의 다 썼지만 다은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보다 글을 너무 못 쓰는 것 같았고 다시 읽어보니 글 내용에 모순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은은 그냥 퇴사하고 온전히 글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연휴가 끝나면 다시 시간이 없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다은은 지난 연휴 동안 글을 쓰는 그 순간이 행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지금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맨날 하기도 싫은 일을 하면서 그저 25일에 나오는 월급…, 딱 월급 때문에 매달 버티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 간 자신을 완전히 잃은 기분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은 그렇지 않았다. 어린 시절, 대학 시절 꿈꾸던 모습에 조금 다가간 기분이었다. 다은이 정말 꿈꾸던 그 모습 말이다.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다은이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설정한 알림이었다. 다은은 냉장고에 준비한 샐러드를 간단히 먹으며 자신의 글을 다시 천천히 읽었다. 고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지금 당장 고치고 싶었지만 다은은 자잘한 오타는 다음에 수정하기로 하고 설정 상 발생하는 모순을 먼저 고치기로 했다. 다은은 다시 시계를 봤다. 이제 연휴가 끝나기까지, 내일이 찾아오기까지 몇 시간 안 남았다. 다은은 현실로 다시 가기 전, 자신의 꿈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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