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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Feb 24. 2022

2월 24일 이보민의 하루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보민은 오늘 하루 종일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의 협력업체에서 항의 전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민은 하루 종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보민에게는 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회사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보민의 속을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직원이 원망스러웠다. 그 직원 때문에 생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보민이 새로운 회사로 온 것은 올해 초였다. 이전 회사에서도 계속해서 성과를 내오던 보민은 업계에서 꽤나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원했던 보민은 지금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고 팀장급으로 우선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성과를 내게 되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는 회사 대표와 어느 정도 끝내 놓은 상태였다. 

보민은 회사에 오자마자 팀에 대해 파악했고 어떻게 매출을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밤낮으로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고민이 끝나자 팀원들의 업무 역량에 따라 일을 나누고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다 나기 시작했다. 신사업 부서라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보민이 오고 나서 빠르게 조직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고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업무를 해나는 모습을 본 회사의 대표는 보민을 채용한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현진이라는 직원 때문이었다. 현진은 여러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는데 그중에 꽤 중요한 협력 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었다. 현진이 겉으로 보기에는 일을 문제없이 하고 워낙 자신감이 있는 성격을 보이고 있었기에 보민은 일을 믿고 맡기고 있었다. 보민에게는 새로운 매출을 낼 수 있는 다른 루트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보민이 그 직원을 너무 믿고 맡긴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어느 날, 대표가 보민을 불렀다. 대표는 보민에게 협력업체에서 크게 컴플레인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 담당자인 현진이 협력업체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보민은 당황했다. 대표는 사태에 대해서 설명했다. 현진이 협력업체에 회사에서 취급하는 물건 리스트를 보냈는데 그중에 현재 회사에서 취급하지 않는 물건이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협력업체에서는 그 물건을 취급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물건에 대한 계획을 다 수립한 상태에서 회사에 물건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그 물건은 현재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이밖에도 협력업체가 화날 수밖에 없는 몇 개 사연이 더 있었으나 이 문제가 결정적이었다. 협력업체 측에서는 당장 계약을 끊겠다고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표는 원래 알던 업체였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쉽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보민은 대표에게 자신이 팀원을 관리하는 문제에 소홀했다고 말하며 사과했다. 대표는 아직 보민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현진이 협력업체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보민이 오기 전 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다만, 대표는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게 보민이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민은 대표에게 사과했다. 대표는 보민에게 일단 협력업체에서 요청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는지를 알아봐 주고 협력업체에게 다시 한번 잘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보민은 거듭해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대표실을 나온 보민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보민은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 화가 나기도 했다. 잠시 생각하던 보민은 지금 생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로 돌아간 보민은 우선 현진을 따로 불러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보민은 현진과 이야기하며 사태를 파악하려고 했다. 하나하나 파악하면서 보민은 현진이 만든 문제가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믿고 맡긴 것에 대한 결과가 이랬다는 것에 화가 나는 보민이었지만 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차근차근 현진과 대화를 이어갔다. 보민은 현진과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현진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내가 팀원을 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까.’ 보민은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현진에 대해서 해결하는 것보다는 당장 협력업체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보민은 일단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 보민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협력업체가 원하는 물건을 찾아도 단가를 맞출 수가 없었다. 애초에 현진이 보낸 리스트는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통화를 마친 보민은 창문 밖을 한참 바라봤다. 생각을 계속하던 보민은 협력업체에 전화를 걸어 사과의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건 항의뿐이었다. 보민은 미칠 것 같았다.

잠시 후, 대표가 보민을 다시 호출했다. 대표는 보민에게 지금 당장 협력업체 쪽으로 미팅을 갈 테니 보민도 같이 따라오라고 했다. 그렇게 보민은 대표가 직접 운전하는 차에 같이 타게 되었다. 보민은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대표에게 말했지만 대표는 자신이 길을 잘 아니 직접 운전하겠다고 말했다. 보민은 정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1시간 30분 정도 이동해서 간 협력업체의 미팅 분위기는 전화만큼 험악하지는 않았다. 서로 간에 잘 아는 사이라 대표는 상대방의 화를 계속 누그러뜨리려고 했고 협력업체의 대표는 웃으면서도 아쉬운 소리를 계속했다. 보민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사과만 했다.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고 계약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는 식으로 마무리되자 보민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대표는 보민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말했고 보민은 팀 관리를 제대로 하겠다며 대표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 지나있었다. 보민이 사무실로 들어올 때, 현진은 퇴근을 하고 있었다. 보민은 현진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만 현진은 선약이 있어 죄송하다며 먼저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민은 뭐라 하려다가 참고 내일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현진을 보냈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보민의 메일에는 밀린 업무가 한가득이었다. 퇴근 시간이지만 보민은 오늘도 야근을 하게 되었다. 보민은 밀린 업무를 처리하면서 속으로는 현진이 이 일 말고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보민은 오늘 자신이 ‘죄송하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생각해봤다. 어림 잡아도 100번은 한 것 같은 하루였다. 보민은 어이가 없어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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