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저를 부러워하지 말아요.

삶이라는 무겁고도 버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by 기록하는 슬기

제주 기록, 2020년 11월 27일


제주도에 도착한 당일, 인스타그램에 제주도에 왔다는 소식과 함께 앞으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볼 것이라는 간략한 계획에 대해 포스팅을 했다. 워낙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기도 했고, 근 1~2년 동안 최측근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연락을 안 하고 살기 때문에 내 주변 지인들이 보기에 내 근황은 늘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게다가 이번에는 뜬금없이 제주도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러 명의 지인들이 DM과 카톡을 통해 연락을 많이 해왔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물어봤던 질문은 "한 달만 살고 바로 올라오는 거지?"였고, 연락의 시작과 끝에 공통적으로 여러 번 하는 말이 있었다.

"아.. 진짜 좋겠다.. 부럽다.."



사실 지인들이 내게 말하는 "좋겠다.. 부럽다.."라는 말은 이번만 들어본 건 아니다. 20대 중반 이후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나이에 맞게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모습과 조금 다르게 살다 보니 그때부터 자주 들어오던 말이기도 하다. 28살, 그때 막 결혼을 했던 내 친구들은 가정을 꾸리고 그에 따르는 행복감과 무거운 책임감을 이제 막 어깨 위에 올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나는 38L짜리 20kg에 육박하는 내 몸뚱이보다 큰 배낭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한국이란 땅을 훌쩍 떠났었다.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해에 친구들은 아이를 낳았고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을 때 나는 여행자에서 외국인 노동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러 호주로 떠났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시기에 맞게 거치는 과정들이 있다. 20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모두가 알람에 맞춰 살아가듯 시간을 재 놓고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반발심이 컸었다. 그래서 더 거꾸로 가고 싶었다. '다들 지금 취업 준비하네? 지금 다들 오래 만난 연인들이랑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네? 그러면 지금 난 취업도 안 할래. 결혼도 안 할래.' 이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하는 게 멋진 줄 알았다.


그렇게 철없던 20대 때 장기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회사라는 곳을 생각보다 오래 다니게 되면서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회적 알람에 맞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평범'이라는 그 하나의 단어를 얻기 위해,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길고 깊은 인내와 고통을 녹여야 했는지를.

그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내가 조금 다른 결정을 내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대단해.. 멋지다!"라고 해줄 때,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진짜 네가 더 대단하고 멋져."




P20161213_174539304_E47EC377-681B-4246-87F8-F145222A8BE0.JPG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매일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 계속된다는 것을. <사진 : 2016. 12. 삼성역 사거리>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마음과 표현이 진심이듯 그들도 또한 그럴 것이다. 내가 보기엔 조금 더 특이해 보이는 결심과 행동이 조금 더 돋보일 뿐, 매일 회사에 나가고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 가정을 지키고 살아가는 그 삶보다 더 대단할 것도 더 부러울 것도 없다. 물론 거꾸로 생각해도 같다. 지금 당장 내가 책임져야 할 가정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더 쉽다던가 그 무게가 그들보다 더 가벼운 건 절대로 아니다. 그저 우리는 자신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 그리고 지금까지의 선택과 노력이 만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내가 지금 가지고 있지 않는 것, 지금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30대가 되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나도 스스로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걱정 아닌 걱정을 가끔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미리 그 큰 일들을 마치고 살아가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인생과 다른 누군가의 인생과 바꾸라고 한다면, 나는 고민할 시간도 필요 없이 바꾸지 않겠다고 말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인생은 내 인생이기에, 너무도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소중함에 대해 잊곤 한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은 더욱 빛나 보이고 커 보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내 인생도 멀리서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남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P20201126_022409220_18553E93-318B-4567-BDC1-3F7096EF3596.JPG 누군가는 당신의 반짝거림을 이미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 : 2020. 11. 제주 서귀포, 새연교>




어제저녁, 뒤늦게 내 sns를 봤다며 제주도에 갑자기 왜 간 거냐며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통화 중 계속해서 힘없는 목소리로 "아.. 부럽다.."라는 말을 되뇌었고, 한참 동안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너는 진짜 자유로워서 좋겠다. 부럽다.."라는 말을 하는 친구에게 나는 제주에 오기 전부터 겪은 기분 나빴던 일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관련 집주인의 갑질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후 방을 구하기까지의 과정, 제주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과 그에 따른 일상을 시간대별로 세세하게 이야기해줬다. 친구는 내 이야기가 끝나고 이 한 마디를 했다. "아.. 거기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맞다. 내 삶도, 그 누구의 삶도 어느 하나 쉬운 삶은 없다. 우리는 그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뿐 우리 모두의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삶이라는 무겁고 거대한 배낭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을 무작정 부러워할 것도, 내 삶이 누군가의 삶과 비교했을 때 초라하다고 생각할 것도 없다. 내 어깨 위에 오래전부터 꽤나 무겁고 버거운 배낭이 올려져 있었듯이 그들의 어깨 위에도 똑같은 배낭이 올려져 있었고, 각자의 방식대로 우리는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니까.



이런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삶이 고된 만큼 내 선택이 어려웠던 만큼 누군가의 삶과 선택 또한 같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내 삶이 가장 소중하듯 누군가의 삶 또한 그 사람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과 가치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일,

그리고 나의 삶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진심을 다해 응원하듯 우리 모두의 삶을 때로는 안쓰럽게, 따뜻하게 바라보며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주는 일이 아닐까.






"

당신이 누군가의 삶 속 반짝이는 한 부분을 멀리서 바라보며 부러워하듯

누군가는 당신보다 먼저 당신 삶의 반짝이는 한 부분을 알아차렸고, 또 부러워하고 있을 거예요.


단순히 우리가 느끼는 이 감정을 부러움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는 서로의 반짝거림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주고 또 예뻐해 줄 수 있는,

그런 눈과 그런 마음이 모두에게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