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안정, 그 사이를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중입니다.
제주 기록, 2021년 1월 15일 금요일
다음 주가 되면 제가 제주도에 내려온 지 두 달을 꽉 채워요. 원래는 '일단 한 달만 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내려왔는데 벌써 두 달을 채우고 있고, 또 지금부터 다음 달 제주살이 계획을 짜고 있어요. 한 달, 한 달 이렇게 지내다가 일 년을 채우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사실 제주의 '봄'은 꼭 보고 싶고, 느끼고 싶어요. 그러다가 또 제주의 여름, 가을을 느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제주에 온 후 저의 일상은 제주에 오기 전의 일상과 비슷해요. 본가에서 지낼 때는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과 제주에서는 오랜만에 다시 혼자 산다는 것 빼고는 거의 똑같아요.
일단 하루의 시작은 오전 8시 30분에 4년째 듣고 있는 아이폰 알람 소리로 눈을 떠요.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에 놓아뒀던 미지근한 생수를 벌컥벌컥 마셔요. 그다음 하는 일은 커튼을 열고 창밖을 보는 일이에요.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눈 뜨자마자 바다를 봐야 하거든요. 지금 지내는 곳이 완전한 바다 뷰는 아니지만 그래도 경기도 내륙 사람인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넋 놓고 바라볼만한 뷰예요.
날씨가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날씨가 흐린 날은 흐린 대로 제주 바다는 아직까지 저한테는 늘 새로워요. 바다를 보면서 멍- 때리다가 휴대폰을 봐요.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저에게 도착한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먼저 체크를 해요. 그중에 가장 반가운 소식은 브런치에서 새로운 구독자님들이 생겼다는 알림과 제 글에 따뜻한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에요. 그리고 카톡을 확인하고 답장을 해요. 그렇게 다시 침대에서 빈둥거리면서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만끽해요.
그거 알죠? sns에서 볼만한 것들을 다 봐서 이제는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질 때. 그때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해요. 아, 본가 있을 때랑 바뀐 게 하나 있다면 운동 시간이네요. 제주에 내려오고 나서는 아침 공복에 운동하는 걸 좋아해요. 요즘 새롭게 빠진 홈트레이닝 유튜브가 있는데요, 그분 따라서 20분만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면 땀이 막 나고 몸이 뜨거워져요. 일종의 애피타이저 같은 운동이에요. 그 후에는 근력 위주로 20-30분 정도 더 운동을 하고 마지막으로는 짧게 스트레칭을 하고 마무리해요.
저는 오전 시간 중에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해요. 운동하고 땀 빼고 샤워하고 딱 나왔을 때. 그때 딱 거울 보면 가끔이지만 스스로 대견해서인지 피부도 좋아 보이고, 날씬해 보이고 뭐.. 한 마디로 살짝 예뻐 보이기도 해요. 그때부터는 영어 유튜브를 틀어놓은 채로 머리도 말리고, 화장도 하고, 외출할 준비를 해요. 작업실이 없으니 매일 카페 가서 글을 쓰거든요. (제주도형 거리두기는 카페도 오후 9시까지 이용 가능해요.) 매일 메고 다니는 검은색 백팩에 노트북, 공책, 아점 먹고 챙겨 먹을 영양제 두 알, 생수 한 통, 보조 배터리를 차곡차곡 넣어요. 자 이제 그러면 드디어 외출 준비 끝이에요.
요즘은 대부분 카페에서 아점을 함께 해결해요. 가끔 밥이나 뜨끈한 국물이 당기는 날이면 국밥이나 해장국을 먹기도 하는데요, 이상하게 요즘 입맛이 없네요. 카페에서 샌드위치랑 커피로 아점을 먹고 바로 글을 써요. 카페에 앉아있는 내내 계속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원래 모든 일을 하기 전에는 '멍-'을 때려야 한다는 거요. 카페 창밖으로 달리는 자동차들도 보고, 고개 돌려서 어딘가 건조해 보이는 야자수 나무들도 보고, 옆자리에 앉은 귀여운 아기들이 하는 말도 듣고 그래요.
하루에 매일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8시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 새로 시작한 메일 구독 서비스는 조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카페에서 다 못 끝내고 집에 가서까지 작업을 하는데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한.. 10시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카페에서는 오후 8시 30분까지 작업을 하고 다시 집으로 가요.
카페에서 일을 모두 다 마친 날 가끔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서 맥주 4캔을 데리고 와요. 집에 오자마자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좋아하는 예능을 틀어놓고 침대 속에서 마시는 맥주 맛. 아시죠? 저는 그때 정말 '행복'해요. 요즘은 낮에 에너지를 다 써서 그런지 맥주 한 캔 만 마셔도 눈이 반쯤 풀리더라고요. 그럼 그때 양치하고 침대 속에 다시 들어가서 못 봤던 유튜브 영상도 보고, 가끔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해요. 그리고 새벽 1시 즈음 휴대폰을 끄고 눈을 감아요. 물론 오랜 시간 뒤척거리지만 그래도 제주에 오고 나서는 불면증도 조금은 덜 해졌어요.
저는 제주에서 이렇게 반복적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어요. 정말 별거 없죠? 아마 누군가는 그럴 거예요. 그럴 거면 왜 그렇게 돈 쓰면서까지 제주에 있냐고요. 아직 글 쓰는 일로 안정적인 수입도 없는데 불안정하게 왜 타지에서 생활을 하냐고요. 그럴 거면 일단 본가에서 지내면서 글을 쓰면 되지 않냐고요. 그런데요, 제가 그렇게 2019년, 2020년 살았어요. 정말 좋죠. 엄마 아빠가 생활비를 내라고 하지도 않거든요. 그냥 눈치껏 엄마 신경 거슬리게만 안 하면 돼요.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예전에 모았던 돈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했던 거예요. 방값이 안 나가니까. 그대로 있어도 밥 먹고 자는 건 해결이 되니까요. 그 상태가 너무 안정적이잖아요.
그런데요. '안정'이라는 거 정말 필요하고 좋은 거지만요. 이야기를 짓는 사람에게 길고 긴 '안정'은 오히려 '위험'하더라고요. 자꾸 세상 밖으로 나가서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약간은 '불안'해야 하는 것 같아요. 불안감이 심하면 당연히 마음도 몸도 힘들죠. 하지만 어느 정도의 불안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요. 불안하면 일단 머릿속으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우주 끝까지 고민을 하고 와요. 그리고 움직여요. 뭐가 됐든 어떻게 됐든 자꾸만 뭘 하려고 해요. '불안'하니까요. 만약 내가 지내는 장소와 환경이 안정적이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아요. 움직이지 않죠. 그곳이 편안하니까요.
사실 지금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첫 달을 빼고 두 번째 달부터는 많이 불안해요. 가장 불안한 건 당연히 경제적 상황이죠. 그런데요 저 지금 이렇게 매일 글을 쓰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새로운 일을 또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불안하니까 자꾸 움직이고, 시도하고, 만들어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제주에서의 불안한 이 삶이 좋은 것 같아요. 제주에 온 후, 제 상태를 보면 고여있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거든요.
이곳 제주에서 얼마나 더 지낼지는 모르겠지만요.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보다 이미 저는 제주라는 곳 자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창밖에 보이는 바다가 지겨워지는 날이 오겠죠? 하지만 일단 지금 저는 제주이기에 볼 수 있는 것들,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모두 두 눈에 담고, 제 품에 꽉 껴안고, 즐기려고요.
세상에 완벽한 '때, 장소, 사람'은 없잖아요. 지금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고, 우리 두 눈에 보이고, 우리 두 손에 닿는 것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더라도 그 불안을 피하지 말아요. 돌이켜보면 우리는 불안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어요. 어차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불안할 거예요. 그러니 우리 이제 그 불안함을 잘 이용 봐요. 눈앞에 정면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불안을 한껏 느끼고 앓고 나면 분명 우리는 '성장'해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