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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Oct 23. 2021

가장 기다렸던 사람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가장 든든한, 가장 믿음직한 가장 유효기간이 긴 응원.

제주 기록, 2021년 7월 26일 월요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을 은근히 부러워했었다.

"나 엄마랑 어제 대판 싸웠어."

엄마랑 싸우는 것을 왜 부러워하는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당연히 엄마와의 다툼, 그 자체는 부럽지 않다. 나는 엄마와 대판 싸울 수 있는 정도로 친밀감 있는 관계가 부러웠다.  


30년 넘는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엄마랑 싸우지 않았다고 하면 믿을까? 그런데 내가 그렇다. 뭐 굳이 따지자면 성인이 되고 나서 몇 번의 말다툼(?) 정도는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말다툼보다도 그 길이와 강도는 모두 약하다. 엄마와 나는 애초에 다툼이 일어날 수가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성격은 직설적이고 강하게 표현하는 스타일이고, 나는 간접적으로 돌리고 돌려서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우리의 말다툼을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의 공격, 그에 따른 나의 수비 정도가 되겠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엄마한테 나의 생각에 대해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말하기 두려웠다. 말이 많아지면 분명 그 끝은 나 혼자 상처 받고, 입을 다물고 그 대화가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초, 중 고등학교 내내 내가 뭘 하고 싶다던가, 뭘 좋아한다던가, 무슨 계획이 있다던가 그런 나의 속 이야기를 엄마한테 하지 않았다. 사이가 나쁜 건 절대 다니지만 내가 엄마를, 엄마가 나를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얼마 전까지도 나의 블로그, 브런치 구독자님들보다도 우리 엄마는 나에 대해서 더 잘 모르셨다. 특히 최근 2~3년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고, 그래서 어떤 일을 그동안 해왔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더욱 모르신다. 그도 당연한 것이 내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근황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까지 근 2년 동안 꼬박 본가에 얹혀살았고, 매일 대화를 나눴고, 매일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봤는데 어떻게 엄마가 딸이 하는 일을 모를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엄마랑 나는 가능하다. 대학교 입시 때부터 회사 입사, 퇴사, 세계 여행, 호주 워홀 등 줄곧 이어진 20대 때의 크고 작은 선택들 모두 혼자 결정을 내리고 나서 통보하는 형식이었다. 엄마랑 아빠도 어렸을 때부터 모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자립심을 강조하신 분들이었기에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당연히 걱정은 하셨지만 대부분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셨고 믿어주셨다. 


그래서 최근 2년간 집에 지내는 동안 매일 도서관을 나갈 때도 엄마는 "무슨 공부하는 거야?"라는 한 마디를 안 하셨다. 나도 "엄마 나 요즘 글 쓰고 있어."라는 그 한 마디를 안 했다. 엄마가 현재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목표가 있는지 알게 된 건 불과 3개월 전이다. 그러니까 제주도에 내려온 후, 1년 동안 지낼 방을 구한 후부터였다.  


엄마는 궁금하셨던 것 같다. 분명 얘가 맨날 도서관만 왔다 갔다만 했고,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그마저도 못 가서 매일 집에만 있었는데, 어떻게 제주도에서 방값을 내고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셨던 것 같다. 그동안은 집에 붙어살면서 기본적인 생활비는 거의 쓰지 않았고 밖에서 쓰는 돈은 모아둔 돈으로 버틴 것도 뻔히 알고 계시니까. 이러한 엄마의 의문점을 풀어준 건 내가 아닌 내 블로그였다. 


엄마, 아빠가 제주도에 얻은 내 방을 보러 오셨을 때 나는 엄마 휴대폰으로 잠시 내 블로그에 들어갔었다. 그때 우연히 엄마와 아빠는 내 블로그를 알게 됐다. 엄마랑 아빠는 내 블로그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셨다. 조금 민망했지만 들어가도 괜찮다고 했다. 내가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해오고 있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건 대충 알고 계셨지만, 내 블로그에서 글을 보게 되면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신 것이다. 


엄마, 아빠가 다시 본가로 돌아간 후부터 엄마는 내게 부쩍 전화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뭐 필요한 것이 없냐면서, 보내줄 수 있으면 보내주겠다고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냐면 엄마랑 나는 내가 1년 7개월 넘게 외국에 있을 때도 전화를 하면 한 달에 최대 3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주, 그것도 다정한 말투로 내게 전화를 건다는 게 어색했다. 그렇게 어색한 전화는 금세 자연스러운 전화가 됐고, 7월 말인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 사이 생각보다 엄마와 나는 조금 많이 가까워졌다.    






오늘로부터 딱 일주일 전이었다.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요즘은 내 휴대폰의 벨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건 엄마뿐이 없다. 엄마의 전화를 받을 겸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서 카페 야외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바로 "지금 카페지? 전화해도 괜찮아?"라는 고정 멘트로 시작한다. 나는 급하지 않다면서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여느 때와 같이 '오늘은 밥을 뭘 해서 먹었는지, 제주도 날씨는 많이 덥지 않은지' 가장 일상적인 질문을 하셨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대화가 끝나갈 때쯤 엄마는 갑자기 내 이름을 차분하게 불렀다. (이럴 때 가장 무섭다.) 


"슬기야. 엄마가 너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지금 너 글 쓰는 거 너무 힘들지 않아? 엄마 생각인데 너무 힘들면 아예 다른 걸 해보는 건 어때? 네가 공부하고 싶은 거나 다른 분야 관심 있는 건 없어? 내가 보기엔 너는 공부 다시 해도 잘할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엄마가 꺼낸 묵직한 대화 주제에 나는 일단 말을 아꼈다.

"음.... 글쎄... 아직 다른 걸 해봐야겠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근데 갑자기 왜..?"  


엄마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른 것보다도 네가 글 쓰면서 생활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 돈도 돈이지만 글 쓰는 일이 그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이야. 오빠한테 들으니까 지금은 다른 업체에 필요한 글도 쓴다며. 그게 그 사람들 입맛을 맞춰줘야 하는 일이잖아. 글 쓰는 일도 힘든데, 그 사람들까지 신경 써야 하고.. 너 글도 따로 써야 하고. 그렇다고 네가 지금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루 종일 카페에서 글만 쓰는데 벌리는 돈은 얼마 없잖아. 엄마가 보니까 너무 힘든 일 같아. 그래서 한번 생각을 전환해 보는 건 어떤가 해서 물어보는 거야." 


엄마가 이야기하는 내내 나는 너무 다 맞는 말이라서 진심을 꾹꾹 눌러서 "맞아.. 맞아.. 그렇지.."라는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 내가 호주에서 돌아오고 나서 갑자기 팔, 다리 못 쓰게 되고 많이 아팠었잖아. 그러면서 호주 다시 가는 거 다 어그러지고 바리스타고 카페고 뭐고 다 못하게 됐잖아. 그때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힘드니까 내가 글을 쓰고 있더라고. (...)"로 시작된 내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슬기 드림 프로젝트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중간에 어느 생략도, 과장도 없이 담백하게 끝마쳤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엄마는 딱 한 마디를 하셨다.

"이런 얘기 너한테 처음 듣네." 

맞다. 그나마도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 것도 블로그를 통해서, 그리고 내 자세한 근황은 본가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 오빠를 통해서 전해 들었던 엄마였다. 내 입으로, 내 목소리로,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꼭 글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속마음을 엄마한테 말한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들어보니까 내가 너한테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네. 너는 지금 네가 하는 일을 해야겠다. 지금 이 시점에서 관두면 후회가 너무 크겠어. 나는 네가 너무 지쳐있고, 힘들어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힘들어도 네가 나름 그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있으면 된 거야. 그런 일은 네가 하고 싶을 때까지는 해봐야지. 

그래.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 봐야지. 해봐. 슬기야.


엄마 목소리로 듣는 응원은 처음이었다. 속으로는 나를 항상 믿어주고, 지지해줬던 거는 다 알고 있었다. 겉으로 표현을 강하게 하더라도 늘 나에게 져줬던 엄마였으니까. 속는 걸 알면서도 늘 속아주던 엄마였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내가 내 이야기를 목소리로 전했고, 처음으로 엄마도 엄마의 마음을 목소리로 전했다. 


겉으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시니컬한 척을 하며 "난 엄마랑 별로 안 친해~", "난 엄마나 아빠 응원 없이 잘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나도 엄마의 딸로서, 그 누구의 응원보다도 엄마의 진심 어린 응원을 기다렸던 것 같다. 엄마가 마지막에 내게 해 준 "해봐. 슬기야."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 먹먹함을 느끼기 전에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찬 걸 보니.  


그 전화를 끊고 다시 작업하던 테이블에 돌아와 앉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속이 든든했다. 

30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하나도 없지만 괜스레 자신감이 차올랐다. 


왠지 나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나는 지금부터는 더 잘 풀릴 것 같았다. 

그리고 제주라는 곳에서의 외로운 이방인 생활도, 글 쓰며 살아가는 넉넉하지 않은 삶도 모두 다 괜찮다고 느껴졌다. 

이 정도면 훌륭한 삶이라고, 이 정도면 정말 잘해오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조금 전에 엄마에게 들은 그 말을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해줬다.

"그런데 힘들어도 네가 나름 그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있으면 된 거야. 

그런 일은 네가 하고 싶을 때까지는 해봐야지.

그래.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 봐야지. 

해봐. 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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