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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Oct 23. 2021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

다들 한 번쯤 겪는다는 제주살이 슬럼프가 내게도 왔나 보다.

제주 기록, 2021월 7월 5일 월요일


나는 지금 확실히 권태기다. 여기서 권태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가 느끼는 권태의 대상이 어떤 건지를 모르겠다. 처음에는 습관처럼 지금 내가 있는 장소가 그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만한 게 벌써 내가 제주도를 내려온 지도 8개월, 그리고 8개월 내내 한 지역인 서귀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친구들의 차를 타고 서귀포 외곽이나 다른 지역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이제 내게 서귀포는 그저 너무도 익숙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 배경이 되어버렸다.


사실 서귀포에서 지낸 지 3개월이 넘은 시기 즈음 고민이 많이 됐었다.

'떠날까? 더 있을까?'   

그 당시 내가 선택한 건 후자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 중에 '이렇게 서귀포를 떠나기 싫어.'라는 단순한 생각도 있었지만 그때 내가 제주에 남는 것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제는 한 곳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었다. 정착이라는 진지한 단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그만 내가 지내는 '장소'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10년 남짓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떠돌이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은 하나였다. 떠돌이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있는 곳을 떠나면, 지내는 장소를 바꾸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다. 물론 장소가 바뀌면 환경 자체가 바뀌다 보니 처음에는 그게 맞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번 도시, 국가를 내 마음대로 옮기는 생활을 해보고 나서 여실히 깨달았다. 내가 계속해서 지내는 지역을 바꾸더라도 결국 그곳은 익숙해진다는 것, 그리고 결국엔 '떠남' 그 자체가 익숙해지기에 떠나고 나서 느끼는 '낯섦과 설렘' 또한 무뎌진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 연도에 제주도에 오래 살아보기로 결심했을 때 '이제는 장소를 핑계 대지 말고 한 번 익숙한 장소와 익숙한 환경에서 나만의 일상을 만들어고 싶다'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나는 또 습관처럼 이유 모를 권태감의 원인을 제주라는 장소로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떠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아니,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떠나고 싶은 곳이 있는 걸까? 


현실적으로 떠날 수 있는 곳은 부모님이 계신 경기도 본가였고,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떠나고 싶은 곳은 당장 없었다. 어딘가로 새롭게 떠난다고 해도 쉽사리 지금 나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떠올린 이 권태감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글 쓰는 일'에 대해 지친 건 아닐까 싶었다. 


이제야 글 쓰는 일에만 몰입한 지 2년을 꽉 채웠다. 다음 달이 되면 햇수로 3년 차가 된다. 사실 글을 쓰겠다고, 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할 때부터 '몇 년 안에 나는 자리 잡을 수 있을 거야.'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언제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또 이 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조차 모른다는 것을 알고도 시작한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글 쓰는 일 자체에 대해 조급하지는 않다.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매일 즐거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꽤나 이 일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나는 뭐가 문제인 걸까. 요 몇 주간 무턱대고 제주 권태기라고 생각하고는 무기력감에 시달린 후, 최근이 되어서야 조금씩 차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지금 나는 새로운 장소, 일이 필요하다기보다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냥 사람이라기보다 '나와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 

  

예전에 인터넷 기사로 유명 작가님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인터뷰어가 작가님에게 이렇게 질문했었다. 

"듣기로 작가님께서 무명작가로 집필 생활을 오래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했던 존재가 있나요? 지금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그 작가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제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글을 쓰는 동료 작가들 덕분이었어요. 글을 쓴다는 일은 정말 고독한 일이에요. 특히나 전업작가의 경우 하루에 8~10시간을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아있죠. 그런데 그렇게 쓴 자신의 작품이 대중에게 반응이 없다면 그 마저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하죠. 그래서 동료 작가들과의 소통이 정말 중요해요. 그 소통 자체가 서로에게 엄청난 힘이고 용기가 되거든요." 


이 기사를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작가님의 대답이 너무 진부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뭔가 특별한 팁을 알려줄 것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작가님이 '동료 작가들과의 소통'을 그렇게도 중요하다고 했는지를. 나의 이 권태감은 제주도로부터, 글쓰기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다. 나의 권태감의 원인은 너무 길어진 '외로움'이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사람들과 만남을 최소화하며 살아온 지는 3년이 지났다. 혼자 떠났던 긴 방랑의 시간까지 합하면 4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다. 이렇게 겹겹이 쌓여버린 외로움 위에 제주에서 하루 종일 혼자 일하고, 혼자 사는 일상을 지내다 보니 그 외로움 자체에 권태감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이제 더 이상 내가 즐길 수 있는 수준의 외로움이 아니라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와 행복감을 잊게 만드는 거대한 외로움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 이유를 파악하고 나서부터 나는 최대한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 중이다. 요 근래 집에서만 작업을 했었는데 일부러 일찌감치 카페로 나와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전부터 감사하게도 브런치를 통해 다른 기업과 단체에서 몇몇 제안이 왔었는데, 나와 큰 관련이 없거나 내 이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다 거절했었다. 그런데 요 근래 스타트업 기업 두 팀에게 제안이 왔고, 설명을 자세히 듣고 바로 협업을 하기로 했다. 


일단 자가진단은 이렇다. 나를 요 근래 힘들 게 했던 것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권태감, 그래서 극복하고자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 내 진단이 틀렸을 수도 있고, 맞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나란 사람, 특히 최근 4년 동안 보아온 나란 사람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특히나 이번 제주 생활에 내게 알려준 것 중에 하나는,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 많이 필요할지 언정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하고, 일을 하고, 소통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래도 터널같이 어둡던 시간이 이제야 조금씩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자꾸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고, 스스로 사람을 만나려고 실제로 움직이는 걸 보니 이제 서서히 일어나서 이 길 위를 다시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다. 물론 앞으로도 이 길을 걷다 보면 이러한 권태감, 무기력감들이 나를 또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또 한 번 나는 알게 됐다. 

권태감과 같은 감정 때문에 내가 이렇게도 괴로운 이유는 이 감정들에 지지 않고 이겨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면서 내가 가려고 했던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사람이란 것을 알기에 그래서 괴롭고 힘들었던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믿어본다.

이 감정을 겪는 이 시기는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나는 나를 나 스스로를 한층 더 깊게 믿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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