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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Oct 23. 2021

너무 간절해서 망설이는 사람

당신의 간절함을, 삶을 응원합니다.

제주 기록, 2021년 5월 31일 월요일


일주일 전, 드디어 2~3개월 전부터 시작했던 오프라인 글쓰기 클래스에 관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4주 간의 커리큘럼과 온라인, 오프라인용 홍보자료를 각각 만들고 클래스를 하기에 적합한 장소까지 모두 일일이 직접 가보고 체크를 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열심히 홍보를 하는 일이었다. 일단 접근이 가장 쉬운 인터넷 지역 카페와 당근 마켓에 접속했다. 생각보다 제주 인터넷 카페에 글을 쓰려면 조건이 까다로웠다. 내가 쉽게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인 당근 마켓 '과외 / 클래스'라는 카테고리에 우선 글쓰기 클래스에 대한 홍보글을 올렸다.


홍보글을 올리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당근 마켓 채팅을 통해 짧은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 하고 싶은데요....."

나는 바로 원하시는 시간과 장소 등을 협의하기 위해 답장을 보냈다. 2~3시간이 지나도 그분에게는 답장이 오지 않았고, 채팅창에 들어가 보니 이미 그분은 내 문자를 읽으신 상태였다. 바쁠 수도 있고, 또 뭔가 고민이 되는 상황일 수 있으니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조금 이른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렇게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릴 때면 왠지 내가 기다리던 연락일 것만 같아 벨소리만 듣고도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음..! 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사무적인 말투로 바꾼 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어제 클래스 문의드렸던 사람인데요..." 


괜히 내 심장이 반응한 게 아니었다. 가장 기다렸던 전화였기에 반가움이 마구 목소리에 묻어나려고 했지만 애써 침착하고 차분한 척 대화를 이어나갔다. 전화를 주신 분은 현재 제주시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지금 내가 지내는 곳은 서귀포시이고, 오프라인 클래스라서 일단 내가 활동하는 지역 또한 서귀포시이다. 하지만 지금 절박한 사람은 나이기에 모집 공고에 '제주시나 다른 지역도 협의 후에 클래스 가능합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았었다. 나는 시간만 맞으면 편도로 1시간이 걸리는 제주시라도 매주 가서 클래스를 할 생각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먼저 그분께서는 "제가 서귀포로 갈게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게 이번 4주 차 클래스가 끝나고 나서 심화반 같은 다른 코스가 있냐고 물어보셨다. 실제로 심화반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었던 중이라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렇다면 이번 초급반 이후에 바로 심화반 클래스까지 함께 하고 싶다고 의욕에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이유가 어찌 됐건 나의 클래스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게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서귀포까지 와서 4주를 이어서 듣고 싶으시다는 의견에 일단 나는 너무 감사했고 힘이 났다.

 

10분 남짓한 전화 통화가 끝나기 전, 나는 글쓰기 클래스 신청서를 링크로 보내 드릴 테니 간단하게 작성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신청서에는 성함과 연락처를 기입하는 란이 있고, 클래스에 대한 상세 정보 (일정, 장소, 수업료 등)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다. 그분은 끝까지 적극적이고 의욕에 가득 차있는 목소리로 "네! 네! 작가님!"이라고 대답하시면서 전화를 마쳤다. 바로 나는 그분에게 카톡으로 신청서 링크와 함께 '신청서 제출 후 수업료 입금하시고 카톡 한 통 보내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 예상보다 빠르게 첫 번째 클래스 수강생이 등록된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신청서는 제출을 해주셨는데 수업료 입금이 확인되지 않았다. 소수로 진행되는 클래스라서 입금순으로 수강 등록이 확정된다. 전화를 마칠 때만 해도 곧바로 수강 신청을 완료해주실 것 같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예전에 대학생 때 과외를 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렇게 전화로 당장 할 것처럼 말하고 안 했던 학생들도 많았고, 실제로 입금을 깜빡해서 안 했던 경우도 있었다. 일단 나는 하루만 더 기다려보고 연락이 없으면 확인 차 연락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신기하게도 그다음 날 아침, 그분에게 장문의 카톡을 받았다. 내용은 즉슨 클래스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환불 규정을 보고 입금을 망설이게 됐다고 하셨다. 그리고 덧붙여 지금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적어주셨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계시고, 현재는 다니던 직장을 쉬고 있으면서 집에 수익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내 클래스를 신청하려고 했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아무래도 클래스가 시작되고 나서는 환불이 불가하다는 환불 규정을 보고 조금 더 신중해진다고 생각이 많아진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그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업을 원하시는지 알기 위해서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래야 나도 그분과 함께 클래스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이 설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나는 그분과 전화 통화를 30분 넘게 나눴다. 


길게 대화를 나눠보니 그분은 이미 SNS에 관련된 강의를 몇 번 들으셨었고, 이 분야에 대해 상당한 관심이 있으셨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기적으로 들었던 강의들이 그분께는 만족스럽지 못하셨고 그러면서 오히려 이런 SNS와 관련된 수업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게 연락을 주신 이유는 지금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고,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으신데 그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가 집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전화로 문의를 주실 때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바로 등록을 하겠다고, 게다가 심화반까지 듣고 싶다고 하시고는 연락이 한동안 오지 않아서 확 김에 말씀하신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쭉 듣고 나니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너무.. 너무.. 간절하시구나..'


얼굴도 실제로 본 적도 없지만 그분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진정성과 간절함은 누구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해가 갔다.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씀하셨다가 연락이 없으셨는지, 왜 그렇게 망설이고 계시는지. 사람이 원래 간절하고, 너무 하고 싶으면 그냥 앞뒤 안 보고 막 달려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빨리 시작하고, 늦게 시작하고의 문제는 간절함의 차이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무거운 책임감과 간절함이 있으면 생각은 더욱 많아지고 그 무게 또한 무거워진다. 그리고 행동은 더뎌진다. 


아직 나는 책임질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분의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고 싶다는 한 여자의 진심과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한 엄마의 진심이. 그리고 나는 그분과 전화를 끊기 전 나의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씀드렸다.

 

"오늘 전화해주셔서 감사하고요. 꼭 제 클래스 수강 안 하셔도 되니까 혹시 블로그 하시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저한테 부담 없이 물어봐 주세요. 카톡 남겨주시면 빠르게 답장은 못해도 제가 아는 한 도와드릴게요. 뭘 바라고 하는 건 절대 아니고요. 제가 그나마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조금 더 오래 한 일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이거라서요..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블로그나 다른 SNS 하실 때 모르는 거나 궁금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알게 되고 이야기 나눈 것도 인연이잖아요."


그분께서는 내게 말씀만으로도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반복하시고, 클래스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고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당장 클래스 수강생을 한 명 놓진 것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고, 그 마음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어떤 사람의 간절함의 또 다른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짧지만 진한 경험이었다.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그분에게는 아직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한~번도 그분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만은 그렇게 조급하지도, 답답하지도 않다. 그분과 나는 이렇게 서로의 진심을 알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인연인 것 같기 때문에.

나와 실제로 만나지 않더라도 그분이 그 간절함으로 꾸준히 자신의 일을 만들어나가고, 또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시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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