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시작_여행] 내 가슴속에 가장 오래 살아있는 사람
[방랑의 시작_여행]
내 가슴속에 가장 오래 살아있는 사람
"여행의 8할은 사람이지"
많은 여행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 또한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날씨도, 음식도 여행에 있어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그 시간을 보냈느냐 만큼 그 여행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돌이켜보면 내가 여행에 푸욱 빠져들었던 것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다. 무조건 나랑 잘 맞는 성격이라서 좋았다기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감정, 메시지를 내게 전해줬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딱 한 명 고르라고 하면 너무 어렵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랜 시간 살아있는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말할 수 있다.
2014년 겨울, 동남아 배낭여행을 갔을 때였다. 나는 여행에 있어 만큼은 대문자 'P' 성향의 완전한 무계획형 인간이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한 달간의 동남아 일주인데, 도착 첫날 숙소 하루치만 예약하고 가는 사람이다. 태국 방콕에 도착하고 2일 차 아침, 기존에 있던 숙소에 더 머물려고 했더니 예약이 꽉 찼다고 한다.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는 방콕 중심부에 있는 규모가 큰 게스트 하우스였다. 로비에는 이미 각국에서 온 여행자 친구들로 북적였다. 여성 도미토리 룸을 안내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로비에 사람들이 많길래 방에도 투숙객이 많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방 안은 매우 고요했다.
오늘은 도미토리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용기 내볼까 싶었는데, 용기를 내볼 대상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방콕에서 처음 먹는 저녁은 숙소 주변 저렴한 식당에서 이름 모를 태국 볶음 면 하나와 병맥주 하나를 먹는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아까 체크인할 때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로비도 휑했다. 스텝과 눈인사를 가볍게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 침대 옆 자리에 짐이 올려져 있다. 누군가 체크인을 한 것 같았다. 그때, 방 안에 있던 화장실에서 선한 인상의 한 친구가 나타났다.
그 친구의 이름은 포 (Pho), 태국 사람이었다. 들어보니 태국 북부 끝에 작은 마을에 살고 있고, 혼자 방콕 여행을 온 것이라고 말했다. 신기했다. 태국에서 태국사람을 만난 게 신기할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갔던 게스트 하우스는 전 세계에서 배낭여행을 하는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외모로 보면 서양 친구들의 비율이 70% 이상인 것 같았다. 국내 여행을 하고 있는 태국 친구를 이곳에서 만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포는 한국 드라마 광팬이었다. 그래서 짧은 단어는 한국어로 할 수 있었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포는 나보다 나이가 꽤 많았는데 실제로 포는 나를 부를 때 "동생~"이라고 불렀고, 나는 "포언니~"라고 불렀다. 포언니는 한국 사람을 처음 본다며 너무 반가워했다.
다음 날 아침, 언니는 짜뚜작 시장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날은 주말이라 방콕에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짜뚜작 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무계획형 인간에게 이러한 제안은 너무도 달콤하다. 고민 없이 바로 너무 좋다고 답하고 우리는 함께 외출을 했다.
시장으로 가기 전,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태국 현지에서 처음 먹어보는 팟타이였다. 언니와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아쉬웠다. 언니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서 짧은 영어와 한국어 단어를 섞어서 말했고, 문장을 말할 때는 번역기 어플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번역 기술이 좋지 못해서 오역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래도 언니는 내내 밝은 미소로 나를 대해줬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들은 단어를 기억해 내서 내게 계속 말했다. "엄마!", "형~", "쏘 주~?" 언니의 정확한 발음은 나를 빵빵 터지게 만들었다. 밥을 다 먹고 계산하려고 할 때 언니는 카운터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는 내가 계산하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카운터 주변을 막았다. 그때는 정말 한국인 언니인 줄 알았다. 내가 계속 괜찮다고 사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언니는 한사코 "You are 동생~"이라고 자신이 사주고 싶다고 했다.
듣던 대로 짜뚜작 시장의 규모는 무척 컸다. 신나게 쇼핑을 하려고 했는데 그날따라 햇볕은 뜨겁다 못해 따가웠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의 인파는 엄청났다. 재빠르게 구경하고 우리는 시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다음에 언니는 룸피니 공원을 간다고 했고, 더위에 지친 나는 일단 숙소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따 숙소에서 보자고 약속하고 지상철 역에서 헤어졌다.
숙소로 가는 길에 당시 유행하던 닥터 피시도 해보고, 시원한 카페에 들렀다가 방에 도착했다. 침대에서 편하게 쉬고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밤 9시. 문제는 아직도 포 언니는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니는 나처럼 외국 사람도 아니고 태국 사람인데.. 별일 없겠지..' 싶다가도 괜스레 언니가 잘 오고 있는 건지 궁금하고 걱정이 됐다. 언니는 스마트 폰이 아니어서 바로바로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언니는 양손에 흰색 봉지를 바리바리 싸들고는 나타났다.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는데 괜한 안도감과 반가움이 물밀듯 밀려와 활짝 웃으며 언니를 불렀다.
"포~! 언니~~"
언니는 "동생~~!"이라고 부르고 손으로 밥을 먹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번역기 위에는 '저녁 못 먹었지?'라는 한 문장이 써 있다. 언니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랑 같이 먹으려고 길거리 음식들을 이것저것 다 포장 왔던 것이다. 아직 뜨끈뜨끈한 봉지를 챙겨서 로비로 나갔다. 처음 보는 스텝은 아주 엄격한 말투로 음식을 여기서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게스트 하우스 옆 작은 공터, 땅바닥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음식을 세팅하고 먹기 시작했다. 엇.. 문제가 생겼다. 모든 음식에 고수가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작게 썰려 있어서 뺄 수도 없었다. 이미 볶음 국수 한 젓가락을 입에 넣은 상황. 입맛에 맞는지 궁금한지 나를 빤히 바라보는 포 언니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하이톤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와~~~ 아로이~~~!!! (태국말로 맛있어!)"
고수 맛이 하나도 안 느껴졌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언니가 사 온 정성 때문인지 (고수 향을 참고) 국수 1인분을 싹싹 비웠다. 우리가 밥을 먹는 내내 길거리 고양이들이 음식 냄새를 맡고 가까이 왔었는데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내 모습을 보며 언니는 고등학생 소녀처럼 깔깔깔 웃어댔다.
숙소로 들어가 언니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더니 대뜸 "동생! 선물!"이라며 종이로 싸인 작은 물건은 건넸다. 종이를 벗겨내자 안에는 수코타이(태국의 도시)에서 만든 도자기가 있었다. 이 언니.. 참 사람 계속 감동시킨다.. 난 준비한 게 없는데 언니한테 미안하고 고맙기만 했다.
언니와 시간을 더 보내면 좋았겠지만 언니는 다음 날 방콕에서 밤 기차를 타고 다시 언니가 사는 곳으로 떠나야 했다. 그날 밤 나는 내일 헤어지기 전에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국어로 짧은 편지를 썼다. 그리고 아끼고 아끼던 (?) 한국에서 챙겨 온 소주를 선물하기로 했다.
포 언니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외국인 친구 중에서는 의사소통이 가장 어려웠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포언니는 내 가슴속에 따뜻함과 아련함을 느끼게 한 유일한 사람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는 상투적인 말을 내가 쓰게 될 줄 몰랐다. 이 경험을 한 건 포 언니가 처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나와 함께 있을 때 짓는 표정, 손짓, 몸짓, 눈빛으로 그 마음과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 포 언니가 그랬다. 정말 순수했고, 따뜻했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표현을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온기와 감성은 말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방이 느끼는 것이다.
언니와 헤어진 날 밤, 그날 일기장에 나는 이렇게 썼다.
'참 신기하다.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이렇게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단지 몇 마디의 한국어와 영어 단어. 그리고 스마트폰 번역기.
언니가 '저녁 못 먹었지?'라며 사다 준 국수..
싫어하는 고수가 들어가 있는데도 마구마구 먹었다.
언니의 마음이 전해져 맛있게 느껴졌나 보다.
언제나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
왜 이렇게 서로를 못 믿게, 못 믿어야 하게끔 세상이 변한 걸까.
도대체 왜 우리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맑고 순수한, 밤거리 길바닥에서 국수를 먹는 것만으로도 깔깔거리며 웃던 포 언니의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가치로 두어야 할지를.'
포 언니를 만나고 나서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워낙 겁도 많고,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사람이라 경계를 많이 한다. 그리고 몇 번 학습한 상처는 더 두꺼운 갑옷을 입게 만들었다. 가볍게 친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내가 내 마음을 진심으로 열고, 누군가에게 내 진심을 나누는 것은 늘 어려웠다. 그래서 한때는 '혼자가 최고야.', '인생 어차피 혼자 사는 거야'를 외치며 자발적 고독을 질겅질겅 씹기도 했었다.
이런 내게 포 언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언니에게 나는 짧은 방콕 여행 중 만난 한국인 친구, 같은 방을 썼던 친구에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달랐다. '어차피 못 볼 친구인데..', '여기서 헤어지면 그만이지.'와 같은 생각 따위는 없는 사람. 언니는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다. 원래 마음이 맑은 사람, 따뜻한 사람이 가장 강한 법이다. 그래서일까. 포 언니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내 가슴속에 정말 오랜 시간 살아있다.
끝이 정해져 있는 여행자의 시간 앞에서도 자신의 진심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참 좋았다.
그리고 멋졌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한국에서 억지로 냉동실에 얼려야 했던 내 마음이 여행 중에는 자연스레 녹기 시작했다.
나도 따뜻하고 싶었다.
그게 더 편안했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보다 그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나의 정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게 나에게 맞는 옷이었다.
여러 번의 여행, 긴 여행, 이방인 생활을 하며 알게 됐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멋진 풍경, 온화한 날씨, 맛있는 음식이 있더라도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그 순간을 더욱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 '여행의 8할은 사람이야'라는 말에 나의 목소리를 입혀본다.
덧붙여 삶이라는 여행에 8할, 그 이상은 사람이라고 말해본다.
★본 브런치 북은 매주 월요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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