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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Sep 09. 2024

혼자 하는 여행에 푹 빠진 진짜 이유

[방랑의 시작_여행] 혼자 떠난 동남아 배낭여행이 내게 준 선물

[방랑의 시작_여행]

처음으로 '혼자' 떠난 동남아 배낭여행이 내게 준 선물



"혼자 해야 여행이지!
친구, 연인이랑 같이 하는 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지!"


꼰대스러운 저 발언은 바로 10년 전 내가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다.

저렇게 한 문장만 쓰고 나니 여행꼰대 같기는 하지만 이 말을 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동행이 있는 여행과 혼자 가는 여행의 차이는 크다. 한 번도 가지 않은 낯선 곳에서 느끼는 낯섦, 두려움, 새로움, 설렘 등 감정의 '결'과 '깊이'가 다르다. 친구나 연인, 가족과 같이 여행을 가면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어 낯설고, 두려운 감정은 반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비교적 덜 긴장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20대 중반의 나에게는 이러한 점이 매력적이지 않았다. 글로 보이는 내 이미지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겁쟁이 그 자체이다. 365일 내내 '안전과 건강이 최고야!'라고 말씀하시는 딸바보 아빠에게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살아왔다. 그래서였을까. 20대에 들어서자,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반대방향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때 나는 일탈과 도전을 갈망했다.



태국으로 출발하던 날. 2014년 11월 13일, 역시나 추운 수능 날이었다. 위에는 패딩, 신발은 쪼리를 신은 오묘한 패션.



2014년 겨울, 배낭 하나를 메고 '혼자' 동남아 여행을 훌쩍 떠나버렸다. 그전에도 해외 경험은 있었지만 이렇게 한 달이라는 기간을 혼자 여행해 본 적은 없었다. 태생이 겁쟁이인 내가 혼자 동남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혼자 게스트 하우스까지 잘 갈 수 있을까?, 밤에 길거리에서 무서운 사람들을 만나면 어떡하지?, 한 달 동안 혼자서만 다니게 될까?' 등의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6시간 후, 밤늦은 시간에 도착한 태국 수완나폼 공항. 겁쟁이의 경계태세는 최고 단계로 설정됐다. 두 눈에 힘을 뽝! 주고, 미간에 살짝 인상을 쓴 채 일부러 더 씩씩한 척 걸었다. 먼저 인터넷에서 본 대로 교통카드부터 샀다. 그다음 BTS (태국 지상철)을 타고, 숙소 가까운 역에 내렸다. 혹시 휴대폰을 뺏기지는 않을까 괜한 걱정에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숙소로 향했다. (아무도 나랑 부딪히지 않았는데도 중간중간 여권과 지갑이 잘 있나 수시로 체크한 건 안 비밀이다..)


지도를 따라 밤거리를 걷자 사진으로만 보던 게스트 하우스 건물이 보였다. 문을 열자마자 친절한 스텝분은 반갑게 인사를 했고, 빠르게 체크인을 도와줬다. 집 떠난 지 10시간이 지난 후에야 드디어 도미토리 방 안, 내 침대에 도착했다. 10kg이 넘는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확 풀렸다. 그런데 동시에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어? 조금 전만 해도 분명 숙소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해서 배가 살살 아파왔었는데.. 나 지금 태국 방콕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네..?! 나 잘 찾아왔네..!'싶었다.

어젯밤 같은 시간에 나는 방에서 배낭에 짐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외국인 친구들과 한 방에 있다. 너무 신기했다. 이게 뭐라고, 나 자신이 뿌듯했다.  



공항에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 중. 교통카드 하나 사는 일이 하나의 퀘스트를 깨는 듯 다 재미있고 뿌듯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럽디 게스트 하우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여행의 첫 목적지. '도미토리 방 안 내 침대'



처음 오는 나라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가는 일.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상당히 별거였고, 별일이었다. 20대 중반, 그 당시 나는 '성취'를 맛본 지 오래됐었다. 대학교 졸업 후, 진로라는 답이 없는 선택지 앞에서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임시방편으로 돈을 벌자란 생각으로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다녔었다. 그 일상은 성취보다는 상처가 더욱 잦았다.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무시하는 진상손님들, 말을 함부로 하는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 사이에서 나는 지칠 때로 지쳐있었다.


무기력했던 내게 혼자 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자주 '하면 되네..!'라는 네 글자를 선물해 줬다. 그리고 이 선물이 쌓이고 쌓일수록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낯선 길 위에 혼자 있을 때면 '겁', '걱정'에게 짓눌리지 않았다. '무섭긴 해도.. 그래도 한번 해볼까? 막상 하면 별거 아닐 것 같아.'라고 내 생각의 흐름은 바뀌고 있었다


모든 것은 양날의 검이다. 혼자이기에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 있듯, 반대로 혼자이기에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낯섦, 두려움'을 감당하고 나니, '성취감, 용기'와 같은 감정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몸에 흡수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간다고 느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무대를 드디어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여행'이었다.






처음 나에게 '여행'은 정말 '여행'이었다.

나는 여행 앞에서 두려웠고, 궁금했고, 떨렸다.

그게 다였다.


그리곤 낯선 길 위에서 느꼈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 속에 나를.


주인공은 나였고, 무대는 여행이었다.


가끔 나는 그때의 여행이 그립다.

온전히 여행만을 위해 떠난 여행.

여행에 거창한 목적, 이유 따위가 덕지덕지 붙지 않던 때.

방랑이라는 단어를 감히 떠올릴 수 조차 없던 시절.


그래서 그때 유독 이런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싶다."

일상에 돌아가서도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

주인공이 ‘나’이고, 무대는 그저 무대뿐인 삶.


10여 년 전 숙소만 잘 찾아가도 뿌듯해하던,

마음에 드는 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무대가 여행이라 여기던 나를 떠올려본다.


지금 나에게 여행은 무엇일까?

지금 나에게 방랑이란 무엇일까?




떠나는 공항, 도착한 공항은 아쉽지만 설레인다. 그것만으로 가슴이 꽉 차올라 주체가 안됐다.



방콕 도착하고 다음 날. 거울만 보이면 카메라를 들어 올려 나를 기록하기 바빴다. 그만큼 많은 순간들이 내겐 다 자극이었다. 본능적으로 그 순간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본 브런치 북은 매주 '월요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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