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시작_여행] 방랑 인생에 있어 '처음'을 되돌아보다.
[방랑의 시작_여행]
방랑 인생에 있어 '처음'을 되돌아보다.
인생에서 '처음'이 주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나의 방랑 인생에 있어 어떤 '처음'들이 있고, 그중 어떤 처음이 내게 가장 강력했을까.
-처음으로 외국을 나간 경험 : 대학교 1학년 때 학과 답사로 갔던 일본.
-처음으로 간 배낭여행 :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방학에 떠난 서유럽.
-처음으로 외국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해본 경험 : 대학교 2학년을 휴학하고 살아 본 뉴질랜드.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 :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장기 연애를 끝내고 떠난 제주도.
-처음으로 혼자 간 배낭여행 :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꿈과 현실 속에서 방황하다가 떠난 동남아시아.
(....)
이렇게 '처음'을 적어보니 모두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래도 이중에 내가 '여행'이라는 행위에 처음으로 진정한 고생과 재미를 느낀 건 서유럽 배낭여행 때이다.
첫 배낭여행이 '유럽'이라고 말하면 "와.. 좋았겠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유럽은 겨울에 가지 마세요!"라고 하는 줄 단번에 알았다. 그렇게 긴 기간 동안 해를 못 본건 처음이었다. 31일을 여행했는데 해가 뜨고 맑은 날은 정말 손에 꼽았다. 얇은 빗방울과 함께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은 한 달 가까이 내 뺨을 때렸다.
이것 말고도 여행은 아주 피곤한 일이었다. 4명, 6명, 8명과 같이 도미토리 룸에서 자는 일은 나 같은 예민한 사람에게 고역이었다. 삐걱이는 이층 침대의 2층을 배정받은 날은 잠을 다 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물가는 왜 이렇게 높은 건지. 머릿속으로 환율을 계산하고 나면 지갑을 꺼낼 수 없었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찾은 곳은 동네의 작은 카페, 혹은 슈퍼마켓이었다. 대부분의 끼니는 저렴한 빵쪼가리로 때우기 일쑤였다.
또 내가 가장 지겨워하던 것이 있다. 바로 짐 싸는 일. 살면서 이렇게 매일 큰 짐을 풀고 쌀 일이 없었기에 내겐 너무 귀찮고 힘든 일이었다. 정말이지 짐만 싸다가 끝나는 이런 여행을 누가 낭만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그때 누군가 내게 "여행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1초의 고민 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짐이요."
그렇다고 첫 배낭여행에서 고생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모든 불편함과 피로함을 모두 잊을 정도로 여행에 홀리게 된 계기가 있다. 영국 여행을 하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을 때였다. 그때 조식으로 한식이 기가 막히게 나온다는 한 한인 민박을 예약하고 찾아갔다. 체크인을 하려고 사장님께 이름을 말씀드리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요 며칠 갑자기 예약이 꽉 차는 바람에 큰 방으로 도미토리 룸을 옮긴 후, 침대 개수를 늘렸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예약한 4인 여성 도미토리 이용은 어렵고, 남녀 혼성으로 8명과 한 방에서 숙박을 해야 했다.
당시 나는 도미토리 룸이라는 것 자체가 불편했는데.. 남녀혼성, 한 방에 8명, 하나의 화장실을 쓰라니.. 분명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바로 다른 숙소로 찾아서 예약을 할 수도 없었다. 표정관리는 잘 되지 않았지만 알겠다고 하고 짐을 풀고 파리 구경을 하러 나갔다.
저녁 시간 즈음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즈음 같은 방을 쓰는 분들도 삼삼오오 들어오셨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각자 침대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분께서 적막을 깼다. 자기는 몇 살이고, 직업은 뭐고, 여행은 어느 정도 했는지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MC가 되셔서 방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내 차례가 왔다. 당시 21살이던 나는 대부분 막내였는데 여기서는 정말 확실한 막내였다. 방에 있던 언니, 오빠들은 어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유럽 여행을 올 생각을 했냐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소개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보통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소규모로 나누어지거나, 몇몇은 대화에 참여를 안 하기 마련인데 그날은 신기하게도 8명 모두가 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도중 한 언니는 "아.. 원래 오늘 와인바에 가고 싶었는데 혼자 들어가기 민망해서 못 들어갔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거기가 어디예요?", "지금 같이 가요!"라고 입을 모았다.
뭔가에 홀린 듯 나도 이미 외투를 입고 있었고, 정신 차려보니 우리는 다 같이 와인바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었다. 와인맛도, 치즈맛도 하나도 모를 스물한 살의 나는 그저 그 순간이 좋았다. (30대 중반인 지금도 모른다.. 쏘맥 맛은 잘 안다..)
처음 간 곳, 처음 본 사람들, 처음 나누는 대화. 그 모든 '처음'들이 어우러진 그 '순간'은 나를 매료시켰다. 우리는 불과 어제만 해도 이 세상에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서로의 눈동자 속에 비추고 귓가에 들린다. '처음' 덩어리인 그 순간의 분위기는 서서히 무르익어갔다. 조금은 설 익은듯한 '처음'은 모두를 무장해제 시켰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너무도 자연스레 '나'를 이야기했다. 이것이 내겐 여행의 시작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도 긴 긴 밤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때 만난 사람들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와인바 이름은 물론이고 그때 무슨 치즈를 먹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바로 그때 내 감정. 나는 진심으로 즐거웠다. '처음'과 '낯섦'이 켜켜이 쌓은 불편함과 피로감을 한 번에 녹여버릴 정도로 즐거웠다.
그렇다. 내게 '처음' 방랑은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 안에는 '사람'과 '대화'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오랜 시간 동안 떠나는 꿈을 꿨고, 떠났고, 다시 떠나려고 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낯선 길 위에서 당신을 만나 대화하기 위해서.
고생이라는 둔탁하고 끈질긴 단어를 잠시나마 잊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즐거움의 순간을 찾기 위해 그렇게도 떠나려고 했던 것 같다.
지난 나의 방랑이 도전이었는지 회피였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의 즐거움을 위한 도전이었고, 나의 즐거움을 위한 회피였다.
(아쉽게도 파리 한인 민박집 사진은 한장도 남아있지 않다... 디카를 꺼내서 찍어야만 했던 때라 다양한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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