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쩌다 난 떠나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됐을까
[프롤로그] 어쩌다 난 떠나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됐을까.
'세계여행, 배낭여행, 워킹홀리데이, 제주살이'
모두 다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갔던 서유럽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나는 '떠남'과 밀접한 사람이 되었다. 그 후 8개월 간의 뉴질랜드살이 (어학연수라 쓰고, 뉴질랜드 살이라고 읽는다.) - 동남아시아 배낭여행 - 8개월 간의 세계 여행 - 1년 동안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내게는 only 워킹데이였지만.) - 1년 5개월 간의 제주살이까지.
이렇듯 20대부터 30대에 들어서까지 나는 떠나기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떠나는 꿈을 꿨고, 떠나기 위해 한국에서 돈을 벌었고, 돈을 번 후에는 훌쩍 떠나버렸다. 떠난 후에는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또 떠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나는 문자 그대로 '떠날 사람'이자 '떠난 사람'이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 지난날의 나를 돌아본다.
'나는 왜 그렇게도 떠나고 싶었던 걸까?'
'멀고 먼 낯선 땅 위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왜 지금도 떠나는 꿈을 남몰래 꾸는 걸까?'
떠나고 싶었던 이유, 떠나야 했던 이유는 많다.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저렇게 자주, 오래 떠날 수는 없다. 우선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를 많이 좋아했다.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설렘, 긴장감과 기대감이 당시 내게는 가장 강력한 즐거움이었다. 또한 여행은 내게 성취감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혼자 길을 찾고, 숙소에 잘 도착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사실 내가 떠난 이유는 따로 있다. 여행 중 느낄 수 있는 감정 같은 것보다 중요한 것. 바로 '정답'이다. 내 삶에 대한, 내 꿈에 대한, 내 사랑에 대한 정답. 이중에 하나라도 찾고 싶었다.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에 중요한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고, 바꾸고 싶었다. 떠나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떠나면 달라질 줄 알았다.
내 삶에 꼭 맞는 꿈, 내 삶에 꼭 맞는 사랑, 아니면 그러한 장소라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가면 무언가, 누군가 있을 줄 알았다. 지금까지 읽은 여행기 속에는 다들 꿈, 일, 사랑 뭐 하나는 찾길래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늘 그래왔다. 글자로 읽던, 어깨너머 들었던 해피엔딩 속 주인공은 내가 아니더라. 길고 긴 방랑 끝에 내게 남은 것은 깃털보다 가벼운 텅장 잔고, 뚝 끊겨버린 경력, 병든 내 몸뚱어리뿐이었다. 다시 돌아온 '이곳'은 그 어떤 '그곳'보다 차가웠고, 딱딱했고, 아주 많이 컴컴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내 방랑은 이제 그곳이 아닌 이곳에서 다시 시작됐다. 정답이란 게 존재하는지 모를 인생의 정답을 찾기 위해 난 또 헤매고 있다. 내 삶, 내 꿈, 내 사랑, 내 사람. 두 발은 이곳에 붙이고 있을지언정 아직도 내 마음은 그 어디에도 온전히 자리잡지 못했다. 여전히 '정착'이라는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 삶에서 방랑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이 책은 '떠나세요. 여행이 정답이에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은 '떠나면 달라질 줄 알았던 한 사람의 방랑 회고록'이다. 지난 자발적 방랑이 가져다준 기쁨과 슬픔, 그 의미, 끝난 후에 허무함까지 작가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자, 이제 우리는 자기 몸보다 큰 배낭을 메고 낯선 땅 위에서 '무엇'을 찾아 헤매는 한 사람의 여정을 함께 할 것이다. 이 여정을 함께 하는 이들 또한 '그 무엇'에 대한 힌트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여행의 출발을 알린다.
※ 본 브런치 북은 매주 '월요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
여러분의 공감과 댓글은 글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