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본질이 되어버린 삶, 세상
몇 년 전에 방영했던 '어쩌다 어른'이라는 tvn 강연 프로그램을 즐겨봤었다. 그중에서도 허태균 심리학 교수님 편은 아직도 가끔 유튜브 영상으로 찾아볼 정도로 인상 깊게 봤다. 그 강연은 '한국인의 심리학 특집'으로 다뤄졌다.
강연 내용 중 잊히지 않는 대목이 있다. '한국인은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원인을 심리학적으로 풀어서 설명해 주시길,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의 기준을 지나치게 경제적 가치에 둔다고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숫자'로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둔다고 했다. 이렇기 때문에 '상하 등급, 실패, 불합격' 같은 상대적 박탈감 또한 더욱 확실하게, 강렬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예를 들면 수능 점수로 나뉘는 대학교 서열, 연봉으로 나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인식, 땅값으로 나뉘는 지역 서열화 등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불확실한 것을 회피하는 성향이 짙다고 한다. 점수 혹은 합격 / 불합격으로 확실한 결괏값이 나오지 않는 일을 극히 두려워하고, 이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 회피'가 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30대인 지금까지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숱하게 들었던 말들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그거 돈도 안되는데 뭐 하러 해?"
"s네 사는 아파트가 xx 억이래~“
"그 사람은 일 년에 얼마 버는데?"
이 중에서 내가 실제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첫 번째 대사이다.
"그거 돈도 안되는데 뭐 하러 해?"
이 말은 대부분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들었었는데,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커다란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았다.
'왜? 돈이 안되면 하면 안 되는 건가? 나는 순수하게 그냥 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슬프지만 우리 사회는 "안 돼"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돈이 안되면', '학교 성적에 도움이 안 되면', '취업에 도움이 안 되면' 그러면, 그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몰아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수, 사회가 만들어가는 '보편적 분위기', '보편적 정서'를 쉽게 무시할 수 없다.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사회가 만들어놓은 '보편적인 것'은 곧 '나의 것'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강력한 보편적인 힘을 물리치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필요 이상의 용기와 이유를 찾아야 한다. 만약 정말 큰 용기를 내서 실행했다 해도 다수는 불확실한 나의 선택을 응원해주기는 커녕 너무도 쉽게 비난한다. 아니면 다들 점쟁이가 되어 '넌 곧 불행하게 될 거라고' 내 미래를 점쳐준다. 순수하게 내가 정말 원하는 나의 진심, 그 마음은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 더 슬픈 것은 그 마음은 나 자신에게도 결국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말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없이 어떻게 살 것이냐고.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균형'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 모두 다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경제적 가치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도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실현 가능성은 낮을지라도 한 사람에게는 소중한 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대감, 안정감, 따뜻함,
삶을 살며 느끼는 불안감, 슬픔, 좌절감, 외로움..
위에 쓴 것들은 모두 다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숫자로 계산할 수 없다. 애초에 이것들의 본질은 '느끼는 것'이지 숫자로 나타내어 평가하고 평가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원초적으로 생각해 보면 '삶'의 본질이야말로 '느끼는 것' 아닐까. 태어났을 때도, 죽을 때도 우리는 가지고 온 것도 없고 가지고 가는 것도 없다. 그저 '느끼다가만' 간다. 그 어떤 삶도 '숫자'가 본질인 삶은 없다. 숫자는 삶의 본질이 아닌 도구이니까.
물론 현실적으로 자본주의라는 시대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며 개인이 이 거대한 세계를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진 사람, 사회는 무척 위험하다.
돈도 열심히 벌고 공부도 열심히 하되, 그것이 전부인 삶, 그러한 세상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와 개인의 진심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꼭 행복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모두가 너무 불행한 삶은 아니기를,
모두가 실패한 세상은 아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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