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보지 않은 타인의 삶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8월 말 즈음, 인스타그램의 한 게시물이 나를 사로잡았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홍보하는 영상이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20대 후반인 계나(고아성)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소개된 짧은 줄거리와 편집된 홍보 영상을 보는데, 나는 순간 '어? 이건 내 얘긴데?' 싶었다.
실제로 나도 20대 후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 후 여행을 하다가 바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570일 넘는 기간 동안 한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자유롭게 여행도 했었고, 돈도 벌어 보며 '생활'을 했던 내가 떠올랐다. 계나가 왜 한국을 떠났는지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으로 떠났다는 것만으로 나는 계나와 내적친밀감이 도톰하게 차올랐다.
영화에 대한 반가움과 흥미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댓글창을 열어봤다. 100개가 넘는 댓글은 대부분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의 배경, 중심소재인 '해외 살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억에 남는 몇 개의 댓글을 옮겨본다.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은 그냥 다 도망가는 거임. 무조건 후회함.'
'저렇게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 치고 한국에서 열심히 살았던 사람 없음. 한국에서 패배자들이 떠나는 거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요. 한국 떠난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등등..
(더 선정적인 표현과 내용이 많았지만 차마 브런치에는 옮길 수 없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가 살아낸 삶, 경험에 대해 비난하는 듯한 하는 내용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씁쓸했다. 그리고 조금 슬펐다. 자신이 살아보지 않는 삶에 대해,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단정 지어 말하는 그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물론 사람은 각자 다 다르고,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다. 그렇기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른 삶에 대해 '다 안다는 듯이'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전에 오랜 여행을 했었고, 워킹홀리데이까지 다녀온 사람으로서 사실 위에 댓글과 비슷한 반응은 익숙하다. 실제로 내 블로그에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비방하는 댓글이 달린 적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오래 떠났다가 다시 한국 돌아오면 너 무조건 후회할 거야!" 식의 협박 아닌 협박도 적지 않게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스럽고, 화가 많이 났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자주 접하면서 내가 알게 된 점이 있다. 나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단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 단 한 번도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응원을 해주거나 진심 어린 걱정을 해줬다.
이렇게 내가 실제로 겪어보고 나서야 나는 거꾸로 한 번 생각해 봤다.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봤을 때, 나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워낙 남에 인생에 깊은 관심은 없는 편이라 질투나 연민을 잘 느끼지는 않지만 분명한 건 나도 모르게 남의 삶을 속으로는 '판단'했었다는 것이다. 속으로 판단하는 게 뭐가 잘못된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결론짓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나만의 기준으로, 내 멋대로 내린 판단들은 벽돌처럼 쌓이고 쌓여 나의 세계관을 좁힌다. 이렇게 좁아진 세계관을 갖게 되면 나와 다른 삶에 대해 '다르다'라고 받아들이기보다 '틀리다'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오로지 나와 비슷한 삶과 그러한 사람들만을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은 좁아진 세계관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면서 나랑 비슷한 삶,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아봐서 다들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 그러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판단을 하고 벽을 세울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내 세계관은 좁아지고, 나와 비슷한 사람은 더 찾기 힘들어진다. 결국에는 나는 '맞고' 너희들은 '틀린' 세상에 살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면 그럴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 빼고는 다 다른 이 세상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해 쉽게 단정 짓기 시작하면 나는 고립된다. 내 땅은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섬이 되어 버린다. 누가 만든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만든 섬 속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것이다. 요즘 느끼는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점점 섬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참 서글프다.
나도 저기 위에 쓴 댓글 내용에 완벽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 여행과 워홀은 도망과 도전 그 어느 사이에 있었고, 돌아와 후회하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열심히 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엘리트나 성공에 가까운 삶은 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나라 저 나라, 이 도시 저 도시 살아보니 정말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더라. 그런데 또 사람 사는 거 다 제각각이기도 하더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얼굴 생김새도, 손가락의 지문도 모두 단 한 명도 겹치지 않게 태어났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모양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다름'이라는 것을 '우리 삶의 시작'이라고, 먼저 받아들이면 어떨까.
나의 삶이든 남의 삶이든 삶에 있어서 O, X를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내 선택이 언제나 그 당시 나의 최선이었듯, 남의 선택 또한 그럴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한 모양으로 굳어버린 고체의 사고가 아니라,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모양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슬라임 같은 사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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