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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Sep 27. 2024

내가 잊지 못하는 '응원'에 대하여

소리 없는 상실, 허무와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소리 없는 상실과 허무를 알아준다는 것


일상 속에서 가까운 사이든 먼 사이든 대화의 끝에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응원할게!"라는 말.


20대 초중반에는 "응원할게!"라는 말을 이럴 때 썼다. '합격 or 탈락 혹은 성적'과 같이 결과가 나오는 이벤트를 앞둔 누군가에게 이 말을 했다. 물론 이 말을 할 때 진정으로 상대방이 합격하기를, 좋은 성적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제는 어떤 결과가 나오는 이벤트를 앞뒀을 때만 "응원할게!"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평범한 일상을 향해 "응원할게!"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이유는 이제는 이벤트가 없어 보이는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크나큰 이벤트인지를 알아버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특히 내가 '응원'이라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대의 끝, 29살 아홉수 때 갑자기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하고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많이 아팠었다. 병명조차 알 수 없었기에 몸과 마음은 깊게 곪아갔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닌 결과, 다행히도 아팠던 원인을 알아냈다.  건강한 몸 상태로 돌아오는 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신체도 많이 아프고 불편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신이었다. 단지 나는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는데, 하루아침에 손과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아픈 몸 때문에 당시 내가 찾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꿈과 계획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에 중요한 것들을 다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느끼는 것은 상실과 허무뿐이었다. 하루하루 나는 내 삶에 노크 없이 불쑥 찾아온 상실, 허무와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만약 내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더욱 깊은 마음의 병을 앓아야 했을 수도 있다. 그때 내가 받았던 응원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응원이 아니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실과 허무'에 대한 응원이었다. 


어떤 이벤트를 앞두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응원도 무척 감사하고 소중하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리 없이 침묵 속에서 누군가 감내하고 있을 상실과 허무를 알아주는 것만큼 절실한 응원은 없다. 그것만큼 강렬한 힘을 가진 마음은 없다.



아무 말 없이 주황빛으로 세상을 밝혀주는 노을에게도 응원을 받는다. '이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답다고, 살아볼 만한 곳이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우리는 보통 더 나은 삶, 조금 더 플러스 (+) 되는 삶을 바란다. 그렇기에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고 응원할 때도 그들의 삶에 있어 더 플러스되는 삶을 자연스레 응원하게 된다. 동시에 나의 삶과 타인의 삶에서 없어지고 있는, 사라지고 있는 마이너스 (-) 되는 삶의 일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놓쳐버리곤 한다. 


내 인생은 마이너스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느낄 때, 그러한 나의 상실과 허무를 누군가 따뜻한 언어로 알아줬을 때.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실낱같이 남은 나의 희미한 희망과 응원의 말은 맞닿아 '그래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조금 더 버텨보자.'라는 단단한 희망으로 바뀌었다. 정말로 나는 그 희망 덕분에 고비를 버텼고, 견뎌내었다. 


'말의 힘'이라는 것만큼 추상적인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말의 힘'만큼 실질적인 힘을 가진 것 또한 없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응원'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루하루 상실, 허무와 싸우고 있을 누군가. 그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상실과 허무를 내가 조금,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나도 매일 그들과 싸우고 있다고. 

 닮은 마음을 가진 내가 있고, 당신이 있기에 우리는 자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당신을 끝까지 응원한다고.' 







★본 브런치 북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언제나 저의 상실, 허무, 아픔을 함께 느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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