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투고 일지 ep.2 차가운 거절과 따뜻한 거절, 그 사이.
원고 투고는 크게 두 번으로 나누었다. 1차 투고는 '대형 출판사+내가 좋아하는 책을 출간한 에세이 출판사'위주로 보내고, 2차 투고는 '에세이 출판사+신생 출판사 위주로' 보내기로 계획했다.
첫 번째 투고는 6월 중순부터 시작한 6월 말 까지 했다. 약 45군데의 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했다. 이 45개의 출판사에는 내가 쓰는 글의 결과 다른 출판사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전에 봤던 투고 꿀팁 글에는 자신이 쓰는 글과 결이 비슷한 출판사를 골라서 투고를 하라고 했지만, 그때 나는 '혹~시 내 원고를 뽑아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원고 투고를 했다.
맨 처음 10개 정도 출판사에 투고를 할 때까지 내 마음에는 설렘과 걱정이 섞인 긴장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렘은 금세 증발해 버리고 걱정만이 가득한 긴장감만이 남았다. 이유는 바로 답장이 오지 않는 무언의 거절, 서서히 쌓이는 거절의 답변 메일 때문이었다.
여러 원고 투고 후기를 읽으며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답변이 오지 않을 것이고, 답변이 온다 해도 상투적인 문구로 거절을 해올 것이라는 사실을. 원고 투고 선배님들이 캡처해서 올려주신 거절 메일도 많이 봤다.
그런데 참. 인생이 그렇다. 세상에 당연한 이치도, 진리도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머리로 아는 건 어쩌면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수신 확인을 해보면 분명 내 메일을 봤는데, 1주, 2주가 지나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또 가끔 오는 답장에는 '저희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아~'로 시작하는 메일이 다였다.
간절한 만큼 그 좌절감도 크게 다가왔다. 1차 투고에서 바로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거절만 쌓여가니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겉에서 보면 남들은 책을 쉽게 잘만 내는 것 같은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왜 내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걸까. 기운이 빠져갔다.
여느 날과 똑같이 수시로 메일함을 들락날락 거리며 새로운 답장이 왔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메일함에 '새로운 메일 1'이라는 진한 글씨가 보였다. '또 거절 메일이겠지..?' 하는 마음과 '혹시..? 혹시...????' 하는 마음이 쿵쾅쿵쾅 부딪히며 심장을 빨리 뛰게 했다.
메일을 보낸 곳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큰 출판사였다. 심장 소리는 더욱 커졌다. 재빨리 메일을 클릭했다. 그 메일은 뭔가 달랐다. 거절 메일이라면 메일의 첫째, 둘째 줄에 바로 '저희 출판사와는 방향이 맞지 않아~'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 메일은 '나'에게 보내는 답장이었다.
내가 기획한 책의 중심 콘셉트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안아주는 에세이'였다. 책 제목에도 '마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었다. 원고투고를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다음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작가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시네요.
대단하세요. 부러워요.'
숱하게 읽었던 원고 투고 후기 중에서 "출판사한테 답장이 왔어요!"의 주인공이 내가 되는 줄 알았다. 생각보다 빨리 그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한글도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그다음 문장은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 출간하는 출판사 방향이랑 맞지 않아~"로 시작됐다. 그렇다. 결국은 거절이었다. 역시 인생에 '혹~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의 희망은 애초에 갖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그래도 이 메일은 다른 거절 메일과는 끝까지 다르긴 했다.
정중히 거절의 내용을 담은 다음 편집장님께서는 이렇게 글을 써주셨다.
'함께 출간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답 메일을 보냅니다.
진심으로 서점에서 작가님의 책을 만나뵙길 바랍니다.
언젠가 작업하기도 기대하고요.'
복사 붙여넣기한 듯한 딱딱하고 차가운 거절 메일만 받다가 나만을 위한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거절 메일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메일이 길지는 않았지만 편집장님의 아쉬움이 진정으로 느껴졌다.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분은 내 글을 알아봐 준 것 같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가슴 아프도록.
그런데 결론은 거절이니 마냥 고마울 수는 없었다. 아쉬웠고, 안타까웠고, 슬펐다. 내 원고의 가능성을 본 것 같으면서도 앞으로의 여정이 쉽지 않을 거라고 느껴졌다. 이 메일은 내게 짧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그렇지만 난 이렇게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렸다. 계획대로 2차 투고를 시작하기로 했다.
준비해 놓은 출판사 리스트를 띄워놓고 차근차근 메일을 다시 보냈다. 2차 투고를 하고 며칠 지났을까. 그때부터 1차 투고했던 출판사들로부터 연속적으로 메일을 받았다. 물론 다 거절 메일이었다. 출판사마다 검토기간은 다 다르지만 빠르면 일주일 안에 바로 답장이 오기도 했고, 늦으면 한 달이 지나 답장이 오기도 했다.
그때였다. 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00 출판사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당연히 거절 메일 일거라고 생각하고 열었다. 엇? 그런데, 이 메일.. 심상치 않다. 여러 종류의 거절 메일을 많이 받아서 거절하는 단어는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하는데 거절의 단어는 없다.
좌절의 기억을 금세 잊은 심장은 다시 설레발을 치며 쾅쾅쾅 뛰기 시작했다.
이 메일.. 나랑 책을 내고 싶다는 메일일까..?
투고 일지 ep.3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