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투고 일지 ep.3 과연 이 출판 미팅은 출판으로 이어질까..?
※'길었던 나의 원고 투고 일지' 브런치 북은 에피소드 내용이 이어지는 시리즈물입니다. 전 에피소드를 읽으시면 더욱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메일의 첫 줄은 '안녕하세요. 이슬기 작가님. 00 출판사 대표 000입니다.'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00 출판사가 어떤 책을 내고 있는지, 신간을 내는 주기는 어떻게 되는지, 베스트셀러로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출판사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다. 정말 거절의 단어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출간을 해보고 싶다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 다른 출판사 답장에서 학습하지 않았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고, 한글도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는 것. 메일의 맨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원고 검토 후 작가님 원고에 관심이 있어 연락드립니다.'
남의 이야기였던 이 답장이, 그렇게도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 답장이 나한테도 드디어 온 것이다. 내가 어떤 단어나 어떤 문장을 놓친 건 아닌지 다시 읽고 또 읽었다. 맞다. 이건 내 원고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바로 답장을 하면 혹여 실수라도 할까 봐 시간을 조금 갖고 출판사 대표님께 답장을 보냈다.
답장에는 우선 긍정적으로 원고를 검토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앞으로 출간하게 되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대면 미팅은 서울에서 가능하다는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연락하는 게 편하시다면 휴대폰으로 연락을 달라고 번호를 남겼다.
답장을 보내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출판사 대표님이셨다. 대표님은 바로 미팅을 하자고 하셨다. 현재 나는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어서 미팅은 서울 강남 쪽에서 가능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대표님은 "작가님이 계시는 곳으로 제가 가야죠!"라고 하셨다. 당장 내일도 오실 수 있다고 하셨다.
갑자기 이렇게 바로 내일 내가 있는 곳으로 오신다는 말씀에 당황스러웠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난 이렇게 빠르게 다가오면 뒤로 살짝 물러나는 스타일이다. 나는 대표님께 서울에 볼 일이 있어서 어차피 가야 하니 3일 뒤에 뵙는 건 어떻냐고 여쭈어봤다. 대표님은 흔쾌히 좋다고 답해주셨다.
대표님께서는 강남 교보문고 앞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인생 첫 출판사와의 출간 미팅인데 강남 교보문고라.. 뭔가 더 의미도 있고, 상징성도 있고.. 왠지 모르게 이 미팅이 잘 될 것만 같았다. 미팅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출판 계약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열심히 찾아봤다.
드디어! 출판사 대표님과 미팅 당일이 되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교보문고에 도착해서 요즘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인지, 에세이 신간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살펴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언젠가 나도 베스트셀러 저 자리에 내 책이 올라갈 수 있을까?, 이제 에세이 신간에 내 책도 놓이겠지?' 하는 상상을 남몰래했다.
20대 초반부터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은 있었다. 그 꿈은 무척 흐릿했다. 그때 나는 본업이 따로 있었고, 블로그만 취미로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글을 업으로 삼고, 3년 넘게 글을 썼고, 글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출판사 대표님과 출간 미팅을 한다.
아직 미팅도 하지 않았고, 출간이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오래된 내 꿈에 가까워진 나를 체감하고 싶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참 많이 왔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 대표님의 문자가 왔다. 교보문고 앞에 거의 다 와간다는 대표님의 메시지였다. 나는 서둘러 서점 밖으로 나갔다. 어렵지 않게 대표님을 알아봤다. 왠지 전화로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려지던 대표님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비슷하시는 분이 건물 앞에 서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점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먼저 대표님께서는 출간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내 원고가 거의 완성되었다면 출판을 언제쯤 하면 좋을 것 같다고 구체적인 출판 예정일까지 말씀하셨다. 대표님은 나만 괜찮다면 바로 계약서를 오늘 작성하려고 서류를 다 챙겨 오신 상황이었다.
난 돌다리도 여러 번 두드리고 건너는 사람인지라 난생처음 하는 출판 계약을 첫 미팅날 할 수는 없었다. 다른 것보다도 출판 계약 기간은 5년 정도 묶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했다. 출판 계약 후기 글을 보다가 몇몇 작가분들이 불리하게 계약을 해서 고생하는 이야기를 봤었다. 그분들께서는 계약서는 꼭 차분히 다 읽어보고, 모르는 부분은 물어보면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도 출판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모두 여쭤보았다. 그리고 대표님께 오늘 바로 계약 하기 어려울 것 같고,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대표님은 생각해 보고 다음 주 즈음 문자를 달라고 하셨다. 괜찮으면 그때 다시 만나서 계약서를 쓰고, 출판을 시작하자고 하셨다.
1시간 정도 대표님과 이야기를 잘 나누고 미팅은 마무리되었다. 실제로 대표님을 만나보니 다른 것보다도 적극적이고 열정 넘치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규모가 엄청 큰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에세이만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출판사였고, 최근 들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도 나오고 있었다.
미팅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마음이 확 놓였다. 원고 투고 해보셨던 분들은 아실 거다. 아니 취직을 위해 회사에 지원해 보셨던 분들도 다 아실 거다. 나를 뽑아 줄지 안 뽑아줄지 모를 불투명한 가능성에 내 모든 에너지와 진심을 쏟아 넣는다는 것이 얼마나 진 빠지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지 틀렸는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출판 기획서와 원고 (입사 지원서, 자소서)를 쓰고 기다리는 일.. 확률적으로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걸 알면서도 막상 거절 멘트가 적힌 메일을 보면 심장이 쓰리다 못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은 이 경험. 이것을 셀 수 없이 반복한다.
출판사 대표님과 미팅을 마치고 가장 좋았던 점은 이거다. 이제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가슴 졸이면서 매 순간 메일함을 새로고침하고, 수신확인을 보면서 '읽었는데 왜 답장을 안 하지?' 하며 출판사의 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대표님이 말씀해 주신 일주일 동안 별 다른 일이 없으면 난 이 출판사와 계약을 하려고 한다. 아주 아주 만약에 그 사이에 다른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온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원고 투고 후기를 보면 거절 답장만 받다가 어느 날 3곳의 출판사한테 출간 제안 답장을 받기도 하던데.
과연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아니면 별 일 없이 이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할까..?
여기서 힌트 하나를 드리자면 별 일이 없다면,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 브런치북 제목인 '길었던 나의 원고 투고 일지'가 아니었겠지...
원고 투고 일지 ep.4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