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투고 일지 ep.10 벌써 투아웃. 다음 기회가 있을까?
다짜고짜 '돈' 이야기를 하던 출판사 대표와의 전화 이후 난 더 힘이 빠져버렸다. 안 그래도 에세이 출판사에는 거의 다 원고 투고를 해놓은 상황이라 출판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에세이 출판사 리스트를 싹싹 긁어모았다. 8월 마지막 주, 이번 투고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으로 투고를 마쳤다.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총 117개의 에세이 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했다. 막바지에 보낸 출판사에서는 짧은 거절 답장조차 받지 못했다. 무언의 거절과 간간이 받는 의례적인 멘트가 적힌 거절 메일만 쌓여갔다. 그러던 중 단 2곳의 출판사에서 친절하고 따뜻한 거절을 받았다.
먼저 친절한 출판사 대표님의 거절 덕분에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됐다. 8월이 지나고 9월이 되면 출판사들은 기획 출판 계획을 마친다는 것이다. 연초에 한 해 예산을 가지고 계획하기 때문에 내년 초에 다시 원고 투고를 해달라며 출판사 사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또 다른 출판사 대표님은 이런 답변을 보내와주셨다.
'슬기 작가님의 출판 기획서와 원고를 읽어보니 구성도 좋고 글이 너무 매력적이라 답장을 보냅니다.
현재 저는 1인으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고, 최근 들어 자기 계발서와 실용서 위주로 출판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슬기 작가님의 원고를 책으로 제작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분명 젊은 출판사에서 보면 원고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매력 있고 좋은 원고입니다.
지금 당장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지치고 속상하시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계속 투고하다 보면 슬기 작가님의 글을 알아주는 곳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매력적인 글이라 이렇게라도 응원드리고 싶은 마음에 메일을 씁니다.
포기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100번이 넘는 차가운 거절만이 이어지던 때, 그때 받은 이 따뜻한 거절은 나를 울렸다. 거절이 가슴 아프기 때문이 아니다. 결론은 똑같을지라도 이 메일에는 나의 글을 읽어주고, 알아주는,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문장들이 담겨있었다. 이 문장들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글을 쓰는 업에 있어 가장 중대한 일은 '출판'이 아니다. '계속 글을 쓰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출판이라는 것도 앞으로 글을 쓰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계속 글을 써 나가려면 시련이 찾아와도 작가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달래 가며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나와 나의 글을 알아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난 그거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나를 믿는 마음과 나의 글을 알아주고 응원해 주는 타인의 마음만으로 글을 써왔다. 난 그 마음이 있다면 출판 1년, 2년 더 늦어도 된다. 다만 '내 글이 정말 보잘것없구나..', '내 글이 정말 매력 없구나..' 이 마음이 찾아온다면 나는 계속해서 써 내려갈 수 없다.
100번이 넘는 거절 속에서 온전히 나와 내 글을 믿기란 쉽지 않았다. 숱하게 쌓인 거절은 나와 내 글, 내 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꼭 내 길이 아닌데 내가 우기고 우겨서 억지로 내 꿈을 끌고 온 진흙길 같았다. 다시 뒤돌아 걸어가기에도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 길의 끝까지 걸어 나갈 자신도 없었다.
1인 출판사 대표님이 보낸 메일에 적힌 문장들, 그중에서도 '포기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한 문장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내 마음을 정해줬다. 두 번째 원고 투고는 여기서 마무리해도 되겠다 싶었다. 출판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건 가슴 아프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사랑 에세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난 더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글은 분명 매력이 있지 않나. 이전에 많은 독자분들께서도 내 글의 장점, 내 글이 좋은 이유를 정성 가득히 댓글로 남겨주셨었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100번 넘는 거절과 독자분들의 마음은 별개였다. 나의 글을 좋아해 주시고 나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2년 첫 원고 투고에 이어 도전했던 2023년 두 번째 원고 투고에 마침표를 찍는다.
두 번째 원고 투고를 하면서 요상한 계약 조건을 보낸 출판사와 전화하자마자 '돈'을 외치던 돈무새 출판사까지, 색다르고 특이한 경험도 처음 해봤다.
결과적으로 이번 투고를 통해 기쁜 날보다 아픈 날이 훨씬 더 많았고, 자신감도 뚝 떨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에서 끈질기게도 그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야구에서도 세 번의 기회는 주지 않나.
이제 투 아웃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이왕 이렇게 기획 출판으로 원고 투고 시작한 거, 끝을 볼거야.
여기서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글이라는 같은 꿈을 꾸고, 쓰고 있는 분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길었던 나의 원고 투고 일지>는 시리즈 물입니다.
첫 화부터 읽으시면 원고 투고 과정을 더욱 면밀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 )
▼1회부터 정주행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