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출판 계약에 왜 이렇게 조건이 많은 거죠?

원고 투고 일지 ep.8 출판 계약에 '도전 과제'라뇨..?

by 기록하는 슬기


[ep. 8 / 출판 계약에 왜 이렇게 조건이 많은 거죠?]



1년 전에도 똑같았다. 원고 투고를 막 시작하는 시기에는 긍정 에너지가 넘쳐난다. 이번에도 '그래! 이번에는 계약서에 진짜로 도장 꽝꽝 찍는다! 기필코 해낸다!' 마음속으로 씩씩하게 외쳤다. 첫 주에는 하루에 많으면 12개의 출판사, 적으면 5개의 출판사에 이틀 간격으로 투고 메일을 거침없이 보냈다.



원고 투고를 할 때면 눈 뜨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메일함부터 열어보는 일. 투고를 시작하고 딱 일주일이 지난날 아침이었다. 한 출판사로부터 답장이 와있었다. 출판사 이름을 보니 내가 하루 전날 투고 메일을 보냈던 곳이었다. 메일 내용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척 길었다.



원고 투고 기간만 되면 눈치 없이 쿵쾅쿵쾅 뛰어대는 심장은 어김없이 널뛰기 시작했다. 출판사의 투고 거절 메일은 대체적으로 길이가 짧기 때문에 이 답장은 확실히 의례적인 멘트를 쓴 거절 메일은 아니었다. 작년에 기획 출판 제안 메일을 받았을 때도 이 정도로 긴 분량은 아니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일까 기대부터 됐다.



첫 줄부터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먼저 내가 보낸 출판 기획서와 샘플 원고에 대한 피드백을 상세히 해주셨다. 현재 내 글, 나란 사람이 출판 시장에서 어필할 수 있는 장점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다음으로는 내가 보낸 원고 중에 수정하면 좋을 부분에 대해 숫자까지 붙여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획서와 원고인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피드백을 보내주다니. 작년 원고 투고에 이어 이런 출판사는 처음이었다. 내가 보낸 글을 자세히 읽고 피드백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마웠다. 고마움에 가슴 온도가 훈훈하게 올라갈 때쯤, 메일에는 새로운 내용이 나왔다.




투고일지.png 2023년 원고 투고의 흔적들



먼저 출판사에서는 내 원고로 출판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에 제시한 제안은 3가지였다. 이 내용 또한 1안부터 3안까지, 각각 매우 길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라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대략적으로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년에 출판사 90곳 넘게 원고 투고를 했었지만 이런 내용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확실한 건 이 출판사에서 제안한 출판 방식은 '기획 출판'도, '반기획 출판'도 아니었다. 아주 복잡했다. 보내준 제안에 '도전 과제'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한 마디로 작가에게 '도전 과제'를 주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간과 팔아야 하는 부수는 각 제안마다 다르지만, 예약 판매 기간에 맞춰 몇백 부의 책을 팔지 못하면 남은 책은 작가가 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형태의 계약이 있는지 조차 처음 알게 되어서 당황스러웠고, 나중에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세 개의 제안을 여러 번 다시 읽어봤는데, 결국은 신인 작가에게 부담을 지게 하는 계약 조건이었다. 사람마다 이 계약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차라리 명확하게 '반자비 출판으로 계약을 제안합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작가들 또한 출판 시장의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책을 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하지만 이렇게 작가에게 '도전 과제'를 주고 일정 기간에 책을 다 팔지 못하면 그 책을 다 사야 한다니.. 그게 계약 조건이라니.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계약 조건이기 때문에 생소했고, 의심이 생겼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가 '요즘에는 이렇게 계약하는 게 일반적인가?' 싶어서 출판업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다들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처음 들어보는 계약인데..?!" 그리고는 덧붙여 말해줬다. 아마 출판사 시장이 힘들다 보니 여러 옵션을 걸어서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려는 계약인 것 같다고.



실제로 금전적 여유가 있거나 출판이 급한 상황인 사람들, 혹은 출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계약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이 계약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고, 계약을 할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일단 나도 이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들과 출판사의 홍보 방법들을 찾아봤다.



아무리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이 출판사에서 출판을 해서 얻을 수 있는 큰 베네핏이 있으면 미팅을 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딱히 이 출판사와 계약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복잡하고, 처음 들어보는 계약을 할 거라면 작년에 기획 출판 제안을 한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말았지 싶었다.


(*각자의 출판 목적과 상황은 다르기에, 본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출판 계약에 대한 항목들은 본인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지 않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하시길 바랍니다.)




P20230506_134829489_53621C9D-3898-4C0C-B2B9-0DBC82E128D2.JPG 출판..까지 가는 과정이 이렇게도 어려울 줄 몰랐다.



내 생각이 정리되고 나서 출판사에게 답장을 보냈다. 꼼꼼하게 피드백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더불어 출판은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출판사에서는 바로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도전 과제'라는 단어가 들어갔던, 처음 들어보는 출판 제안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두 번째 원고 투고를 시작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받은 낯선 출판 제안 덕분에 정신이 없었다. 이리저리 알아보고, 물어볼 수 있는 분들께 조언을 구했다.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출판 업계는 더욱 힘들고, 그렇기에 신인 작가가 책을 낸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는 것을.



'어쩌면 이번 원고 투고에서는 내가 많은 부분을 내려놓아야 출판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내 글을 기획 출판으로 진행해보고 싶다는 출판사가 나올 수도 있지만 크게 기대되지는 않았다. 쉽지 않은 현실에 씁쓸해지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내가 준비한 출판 기획서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는 일.

작디작은 희망을 겨우 붙잡고는 다시 또 나는 문을 두드린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길었던 원고 투고 일지>는 시리즈물입니다.

첫 화부터 보시면 더욱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원고 투고를 준비하시거나, 하고 계신 분들에게 필요한 꿀팁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



▼ 원고 투고 일지 1화부터 정주행하기!

https://brunch.co.kr/@sul5380/44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