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투고 일지 ep.11 쓰리아웃 직전, 세 번째 원고 투고가 시작되다
<길었던 나의 원고 투고 일지>라는 브런치 북 제목에 걸맞게 내 원고 투고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전에 원고 투고를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겠다. 첫 원고 투고는 2022년, 기획 출판 1건과 반기획 출판 1건을 제안받았다. 결과적으로 기획 출판을 제안 주신 출판사와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결렬됐다.
두 번째 원고 투고는 2023년, 출판 콘셉트를 완전히 바꿔서 투고를 했다. 작가한테 미션을 주고 책을 팔지 못하면 작가가 책을 사야 하는 요상한 계약 조건을 내민 출판사 1곳, 전화하자마자 "작가님 돈 많은가 봐요~"라는 선 넘는 발언을 하며, 작가가 무조건 300부를 사야 한다는 출판사 1곳에서 답장을 받았다. 물론 두 곳 모두 출판 계약을 하지 않았다.
2024년에 세 번째 원고 투고를 하려고 했지만 소중한 기회가 생겼다. 연초에 처음으로 도서관 강연을 제안받았다. 그것도 중앙 도서관에서 하는 규모가 제법 큰 시민 강연이었다. 봄에 시작한 이 도서관 강연을 시작으로 가을에는 시립 청소년 센터에서 에세이 강의 제안을 받았다. 24년은 강연이라는 새로운 커리어로 한 해를 보냈다.
그리하여 세 번째 원고 투고는 2025년에 시작된다. 이제는 정말 물러설 곳이 없었다. 원고 투고를 통해 기획 출판을 한다는 도전 자체에 정해진 횟수 제한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원고 투고에 쏟아부을 심적, 신체적 에너지가 없었다.
세 번째 원고 투고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의 '마지막'이라 함은 이번에 원고 투고를 해보고 안 되면 반기획이든 독립 출판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출판'이라는 미션은 꼭 달성하리라 다짐했다.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책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나도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2025년도에는 연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4~5월 안에 출판 기획서와 샘플 원고 작업을 마무리하리라 다짐했다. 매년 출판을 위해 비장하게 칼을 뽑아 들었지만 이번에는 순두부라도 썰어버리겠다는, 아니 으깨버리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칼을 뺐다.
이번 출판의 콘셉트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나만 가지고 있는 경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로 잡았다. 23년도에 썼던 출판 기획서는 '30대의 사랑 이야기'가 주요 콘셉트였는데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다 시장성을 더 고려한 것이었다.
물론 시장성도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기획 출판이 성사되지 않으면 반기획, 독립 출판으로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이상,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왔던 브런치북이 있다. 바로, 24년도 가을에 브런치북으로 연재했던 <떠나면 달라질까>이다.
22년, 23년에 원고 투고를 할 때 몇몇 출판사에서 공통적으로 내 방랑 이력과 여행 에세이 원고에 대해 언급을 했었다. 특히 한 출판사 대표님은 대놓고 "보내주셨던 원고 중에 여행 이야기가 참 좋아서 연락드립니다."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맞다. 내가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나만 가지고 있는 경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여행, 떠남'이었다. 세계여행만 한 사람, 워킹 홀리데이만 한 사람은 적지 않다. 하지만 배낭여행하고, 세계여행하고, 워홀 다녀오고, 제주살이까지 모두 다 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블로그와 브런치에 남긴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일반적인 여행기 스타일인 '여행지'에 대한 감상보다는 기나긴 '여행, 방랑'을 통해 도대체 나는 무엇을 찾고 싶어 했는지, 무엇이 달라지길 기대했는지 글로 그 여정을 구현해내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브런치북에 연재했던 큰 결의 콘셉트는 가져가되, 책 안에 들어갈 원고는 80% 정도 새로 썼다. 20대 초중반부터 30대까지의 긴 서사를 끌고 가는 이야기인 만큼 목차부터 새롭게 다시 짰다. 10여 년 전에 블로그에 올린 글들부터 싹 다 읽었다.
출판 기획서를 쓰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샘플 원고를 작성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이전 원고 투고 때에 비해 이번에는 샘플 원고 분량을 총 책 한 권 분량의 1/2 정도의 원고를 써서 보내기로 계획했다. (이전에는 한글 파일 기준 15~20페이지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60~70페이지 분량으로)
멀티 플레이가 잘 안 되는 사람인지라 주업인 글쓰기 클래스까지 줄였다. 매월 새롭게 소규모 그룹 클래스를 모집하는데, 3월~4월에는 클래스를 모집하지 않았다. 클래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곧 당장 들어오는 수익이 줄어든다는 뜻. 나는 나름대로 큰 결정을 내리고 원고 작업에 집중했다.
이전 원고투고 때처럼 '이번에는 다를 거야!'의 마음은 크게 없다. 앞선 두 번의 원고 투고는 내게 200번의 거절을 가져다줬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거절의 파도 속에서 나는 또 어떻게 버텨내야 하는 걸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억지로 해피엔딩을 그릴 힘도 희망도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두부라도 으깬다'라는 의지는 있다. 평소에는 이런 끈질긴 의지 같은 건 없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글' 앞에서는 '뭐라도 한다'라는 의지가 끈덕지게 내 가슴속에 붙어있다.
투아웃까지 왔다.
마지막 타석이다.
앞으로 몰아칠 거절의 파도 속에서 이 끈적이는 의지가 글이라는 길 위를 걷고 있는 내 두 발을 끝끝내 잡아주길 바라본다.
희망, 용기보다도 순두부라도 으깬다는 내 질긴 의지를 믿어본다.
드디어 세 번째 원고 투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브런치 북 제목 그대로 '길었던' 저의 원고 투고 일지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 투고를 할 당시에는 모든 걸 다 놓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이렇게 글로 적고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쩌면 저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느 날, 갑자기'는 없는 것 같아요.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함정이 있지만요.
오늘도 조금씩 더 나아진 우리 삶을 응원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와 주시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었던 나의 원고 투고 일지>는 시리즈물입니다
▼ 첫 회부터 보시면 더욱 재미있게, 면밀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 )
https://brunch.co.kr/@sul5380/445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글에 나온 <떠나면 달라질까>로 출간된
제 첫 책으로, 첫 북토크가 열립니다!
▼ 11월 29일 토요일입니다. 부담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놀러 와주세요♥
https://brunch.co.kr/@sul5380/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