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훈자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뭘까요?

여행자가 여행자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상하고 따뜻한 곳에서의 하루

by 기록하는 슬기


훈자에서 맞는 열 번째 아침이다. 이제는 차갑다 못해 시린 코를 부여잡고 눈을 뜨는 아침도,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뿌옇고 차가운 훈자 워터도, 눈 뜨자마자 어두컴컴한 방안의 정전도 익숙해졌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정신을 차려본다. 오늘은 H언니와 나름의 계획을 세운 날이기 때문이다. 그전날 히데코 아줌마와 마사 아저씨와 함께 호퍼 빙하 투어를 다녀와서 오늘은 휴식을 취할 겸 온전히 둘이서만 훈자를 즐겨보기로 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이제 우리가 훈자를 떠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내가 먼저 눈을 떴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차가운 물에 머리를 감으려고 하는데 미지근한 물이 내 손 끝을 스쳐 흘러간다. 뭔가 특별한 행운을 만난 것처럼 미지근한 물에도 기분 좋게 시작되는 훈자의 아침이다.


오늘의 아침 겸 점심은 H언니가 여행 오기 전 한국에서 챙겨 온 한식 제품 중 사리곰탕을 데워 먹기로 했다. 숙소 주방에서 간단한 요리는 해도 된다기에 사리곰탕을 들고 들뜬 마음으로 숙소 리셉션과 바로 붙어있는 주방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 숙소의 대장 할아버지(이 숙소는 가족이 운영하는 숙소로, 할아버지가 가장 파워가 센 실질적 사장님이다.)를 우연히 계단에서 마주쳤다. 늘 그렇듯 우리는 할아버지와 웃으며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아침 식사를 했냐'라고 물어보셨다. 아직 안 했다고 대답하자마자 곧바로 할아버지께서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같이 하자고 하셨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사리곰탕을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할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차를 내어주신다는 제안에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2층이었던 우리 방에서 내려다보면 늘 보이던 1층의 아기자기한 정원.



할아버지를 따라간 곳은 우리가 지내는 건물의 1층, 바로 실제로 이 숙소를 운영하는 가족들이 생활하는 가정집이었다. 할아버지, H언니, 나 이렇게 우리 셋이 집으로 들어가자 매일 눈인사를 하던 며느리분께서(이름을 몰라 며느리라는 호칭을 쓴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할아버지께서는 며느리분께 어떤 말씀을 하시고는 우리에게 대뜸 이렇게 물어보셨다.

"너희 오믈렛으로 먹을래? 아니면 달걀 프라이로 먹을래?"

간단히 차 한 잔 하러 온 우리로서 저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난 뭔가에 홀린 듯, "저는 오믈렛이요.."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H언니의 대답은 "저도요.."


그렇게 대답을 하고 곧바로 언니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시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저희는 간단히 차 한 잔 하는 줄 알고 왔어요~ 일부러 저희 때문에 식사 준비 안 하셔도 돼요...!!! 저희 오늘 먹을 것도 다 챙겼어요!"라고 하며 가방에서 노란색 팩에 들은 오뚜기 사리곰탕을 꺼내어 보여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그건 내일 먹어도 되는 것 아니냐면서 오늘은 아침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사실 아침 한 끼쯤 함께 먹을 수 있지만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이 가족분들의 아침식사는 모두 끝났는데 우리 때문에 며느리분께서 다시 요리를 하는 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한사코 괜찮다고 하는 우리에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희는 내 호텔의 손님이 아니라, 우리 집의 손님이야."

아마도 훈자에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을 꼽으라면 이 말일 것이다. "너희는 관광객이 아니라, 우리의 손님이야."라는 따뜻한 명대사. 이 말은 미지근한 심장을 가진 나라는 여행자가 들을 때마다 완전한 이해는 잘 안 가지만 그들의 진심이 느껴져 그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숙소 할아버지표 명대사를 듣고는 곧바로 사리곰탕을 다시 가방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오믈렛과 빵이 나올 줄 알았던 아침상에는 훈자 브레드, 오믈렛, 짜파티, 청포도, 사과, 짜이가 올라왔다. 생각지도 못한 풍성한 한 상이 었다. 음식을 만들어주신 며느리 분과 대장 할머니께 우리 또한 풍성한 리액션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대장 할아버지는 높은 연세임에도 불구하시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셨다. 덕분에 몰랐던 할아버지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궁금해하셨던 우리들의 여행 이야기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모두 다 손수 만들어주신 음식들. 그리고 과일도 모두 직접 훈자에서 기르셨다고 했다. 잊을 수 없는 한 끼.



할아버지와의 식사 자리가 끝나갈 무렵, 오늘은 할아버지의 첫째 아들 사다 (Sada)가 다른 동네 팀과 크리켓 경기를 하는 날인데 구경하고 싶으면 자신의 아들들에게 미리 말하라고 말씀해주셨다. 크리켓은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오늘 하는 그 경기가 이 동네에서는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하셨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우리를 보시더니 할아버지는 잠시 집에 들른 셋째 아들에게 크리켓 경기를 할 때 우리를 데려가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우리가 고민했던 이유는 한 번쯤 크리켓 경기를 구경하러 가고 싶기도 했지만 첫째 아들인 사다랑 친하지 않았고, 크리켓이라는 스포츠를 아예 몰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늘도 온전히 H언니와 둘이서만 훈자를 만끽하자는 계획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무산되었고 나와 동갑내기였던 한국인 여행자인 Y까지 불러서 사다의 삼촌분의 차를 타고 옆 동네인 알티트로 향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크리켓의 룰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그저 "사다! 사다! 사다!"라고 큰 소리로 응원을 했다. 우리가 응원을 할 때마다 아니, 하기 전부터 이미 그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었다. 그 경기장에서 유일한 여자들이자, 외국인이었기에 우리가 크리켓 경기를 신기하게 보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경기의 룰은 잘 모르지만 점점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우리는 눈치를 보며 끝까지 사다를 응원했다. 긴 시간이 지나 경기가 끝났고 우리는 사다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사다! 잘했어! 너 정말 잘하더라!"가 아닌,

"사다! 너네 팀이 이긴 거야? 누가 이긴 거야?"라고.

그때까지 누가 이기는지도 모르고 있던 우리 셋이었다. 사다는 자신이 속한 팀이 이겼다며 우리에게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했다. 숙소에서 지내며 사다를 하루에도 몇 번을 마주쳤는데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다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우리를 소개하며 은근히 자랑을 했다. (훈자에서는 외국인 친구가 있는 것은 상당히 신기하고 또 부러운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다를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알티트(Altit) 마을.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가 우리를 마을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멋진 풍경을 보여줬다.



열심히 크리켓 경기 중인 선수들. 멀리서도 난 사다를 찾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H언니와 내가 유일하게 훈자에서 그리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이 그 숙소의 대장 할아버지를 포함한 숙소의 운영진(아들들)이었다. 할아버지와 그 아들들과 긴 시간을 대화해본 적도 없었고, 또 긴 시간을 겪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이 숙소에 방을 구하며 처음 나누었던 대화와 그리고 일주일 넘게 이 숙소에서 지내며 나누었던 대화 속에서 늘 그들은 우리에게 뭔가를 더 팔려고 했다. 예를 들면 버스 티켓이라던가 가까운 관광지로 가는 투어라던가 대화의 주제와 내용은 상업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할아버지나 아들들을 마주치면 일부러 길게 대화하기보다는 짧게 웃으며 인사만 하고 지나갔었다.


그런데 오늘 할아버지와의 식사 시간을 통해, 그리고 사다의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은 그들이 우리에게 상업적인 질문만 했던 이유가 혹시 정말 할 대화가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우리도 누군가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공통된 주제도 없고,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공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상대방이 필요할 것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먼저 쉽게 건넬만한 질문의 주제가 버스 티켓이라던가 훈자 주변의 투어 코스라고 생각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그들을 '그런 마음' 가지고 바라보고 계속 피해왔기 때문에 내게 그들은 '그런 사람'일뿐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 속 한 장면이 여행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으로 완성되곤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스쳐 지나갔던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서로 살아가고 있다. '만약 내가 오늘 할아버지의 차 한 잔 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면? 그리고 사다의 크리켓 경기를 보러 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훈자 여행 중에도,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들을 단지 숙소를 운영하는 상업적인 가족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기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할아버지가 함께 아침 식사할 때 내내 짓던 그 미소, 그리고 크리켓 경기가 끝난 후 사다가 우리를 보고 활짝 웃던 그 표정이다.


누군가를 잘 모르면서 가볍게 판단하고 그러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대한다면 결국은 나는 세상과 사람을 그렇게 밖에 보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 그런 기억들'만을 안고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나와 다른 마음을 갖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던 훈자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하나같이 말해주고 있던 것은 결국 이것이었다.


"너의 생각보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다고. 그리고 늘 너의 주변에는 따뜻한 사람들과 그 마음이 있었다고. 단지 네가 그것들을 의심하고 외면해왔을 뿐이라고."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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