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자와의 이별은 따뜻했던 만큼 아프다

하루 앞 당겨진 훈자 떠나는 날, 그리고 이별 전야제

by 기록하는 슬기

훈자에 온 뒤로 하루하루 점점 아침저녁의 기온은 떨어져 갔고, 그와 동시에 내 마음은 훈자에 점점 푹 빠져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파키스탄 훈자 마을만 계획하고 나온 여행이 아니었기에 다음 여정을 위해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H언니와 나는 훈자로 들어오기 전 둘이 이런 계획을 세웠었다. 만약 훈자가 좋다면 최대 15~16일 정도 머무르고, 마음에 들지 않다면 일주일 이내로 나오자는 것이었다. 훈자에 도착한 첫날 훈자의 매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훈자를 언제 떠날지'를 논하던 우리 둘은 현재 '훈자를 어떻게 떠나지..'라며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다.


오늘은 훈자에 들어온 지 2주가 되었다. 우리는 내키지는 않지만 이제는 정말 훈자를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훈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세계 여행자 부부인 J언니 L오빠도 우리와 함께 훈자에서 국경을 넘어 인도 암리차르까지 가기로 했다. 안 그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훈자로 들어오는 기나긴 이동 중 외국인 여자 둘 뿐이라 무서웠는데 덕분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언니들과 오빠와 다 함께 만나 일단은 바로 버스 티켓을 예약하러 파라다이스 여행사로 갔다. 날짜별로 버스 시간을 여쭈어보니 바로 다음날 떠나는 티켓이 인도로 넘어가기에 이동 시간과 출발 시간이 적당했다. 원래는 이틀 정도 뒤에 가는 버스를 예약하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가 훈자를 떠나는 날은 바로 다음날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떠나려고 했던 날짜에 비해 기껏해야 하루 차이뿐이 나지 않았지만 당장 내일 아침이면 이곳을 떠난다니 금세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라는 사람은 늘 늦어서 정말 떠나고 나서야, 눈에 보이지 않아야 그곳과 그 사람들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깨닫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예고처럼 자꾸만 미리 그 감정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다.


DSC05388.JPG 호퍼 빙하 투어를 통해 알게 된 훈자 파라다이스 여행사. 2017.09



버스 티켓 예약을 마치니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일단 훈자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 가는 버스에 외국인은 미리 내야 하는 여권 사본 10장과 파키스탄 비자 사본 10장을 준비해야 했고, 체크아웃 전에 미리 숙소비를 내야 해서 ATM에서 현찰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그동안 우리에게 이해하지 못할 따뜻함을 선물해준 훈자 친구들을 만나 작별의 인사를 해야 했다.


훈자에서 복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딱 두 곳인데, 한 곳은 가게 문을 열지 않은지 며칠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복사기가 유일하게 있다는 한 문구점에 부지런히 갔는데 오늘도 정전이라서 복사기가 작동이 안 된다는 비보를 접했다. 나는 꼭 필요한 거라고 언제쯤 복사가 가능하냐고 여쭈어봤다. 사장님은 가게 밖에 자리하고 있는 발전기를 한번 쓱 쳐다보더니 일단 오후 5시에 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왠지 5시에 오면 이 가게가 닫혀 있을 것 같아 나는 불안한 마음에 문구점 사장님께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말씀드렸다.



P20170920_193325724_A197772F-746C-4B0A-AB2C-AF272E113261.JPG 당시 훈자 마을에서 유일하게 복사가 되었던 문구점. 2017.09



기다린 지 30분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나를 보시더니 특유의 시크한 말투와 표정으로 문구점 사장님은 여권을 달라고 하셨다. H언니의 여권과 내 여권을 드리니 아저씨는 30분 전 흘깃 쳐다보았던 그 발전기의 전원을 켜서 복사를 해주셨다. 무사히 복사를 마치고 우리가 서둘러 간 곳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사모사를 만드는 우리의 친구, '사모사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할아버지 가게로 걸어가는 길 내내 H언니와 나는 걱정했다.

"우리 왠지 할아버지 보면 울 것 같아.."



가게에 들어서니 우리와 함께 떠나기로 한 부부 언니 오빠가 미리 도착해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하루 이르게 떠나게 되면서 편지 한 장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데 이 커플 언니 오빠는 할아버지께 정말 멋진 선물을 해드렸다. 알고 보니 L오빠의 그림 실력은 대단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펜 하나로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려서 선물해 드린 것이다. 그걸 받으신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감동받은 표정을 지으시고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휴대폰 카메라로 그 그림을 찍으셨다. 나와 언니도 급하게나마 할아버지께 우리의 기억을 남겨드리기 위해 가게에 앉아 편지를 써 내려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지런히 움직여서 미리 할아버지께 드릴 선물이라도 사는 건데.. 너무 후회스러웠다.


DSC05546.JPG 마지막 날도 보통 어느 날과 똑같이 할아버지께서 끓여주신 짜이.





DSC05548.JPG L오빠의 그림 선물을 받고 정말 기뻐하시던 할아버지.




DSC05550.JPG 우리가 만들어드린 간판. 나중에 다시 갈 때까지 꼭 그대로 붙이고 게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이 둘러앉아 할아버지가 타 주신 짜이를 마시며 마지막이 아닌 듯 평범한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당장 내일 아침에 떠나야 하는 우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아버지와 보내지 못했다. 이제 정말 작별의 인사를 드려야 했다. 다 같이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고, 정말 마지막으로 한 명, 한 명 포옹을 나눴다. 할아버지 눈을 보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 와중에 H언니를 보니 언니는 나보다 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H언니는 최선을 다해 눈물을 참고 있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똑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 순간까지 우리는 할아버지께 당부 아닌 부탁의 말씀을 드렸다.

"할아버지 꼭! 건강히 지내고 계세요! 우리가 오래 걸리지 않아 다시 돌아올게요..!!
정말 보고 싶을 거예요.. 꼭 꼭 건강히 지내세요!!"



우리 넷은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들어가셨겠지 싶었을 때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여전히 할아버지는 가게 밖에서 멀어져 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계셨다. 그리고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눈에 눈물이 가득 차있다는 것을. 그제야 나는 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서서 몇 번의 작별 인사를 하셨어야 했을까.
그리고 몇 번이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눈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셔야 했을까.


이별의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먼저 '떠나는 사람'이 덜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긴 연애의 끝에서도, 길 위에서 만난 짧은 만남의 끝에서도 '남겨진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왔던 나였다. 그래서 늘 나는 떠나는 사람의 마음만을 걱정하고 또 그 상처만 바라보았다. 한 번도 멀어지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남겨진 그 누군가의 두 눈과 그 눈물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점점 작아지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 남아 눈물 흘리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이제야 알았다.

남겨질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이 겪어내야 할 아픔과 상처를,
그리고 결론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눠 줄 수밖에 없던 그의 진심과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P20170920_204111782_65788327-C712-407E-A4AC-6104B9AFC707.JPG 뒤돌아보니 한참 동안 그 자리 그대로 서서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던 할아버지. 내가 본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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