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가 아닌 친구로서 지키고 싶은 약속

훈자 마을 사모사 할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약속.

by 기록하는 슬기


훈자에 온 지 어느덧 8일 차가 되었다. 하루하루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 훈자에서의 일상이지만 오늘은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누군가와 한 약속을 꼭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국인 여행자분들을 통해 알게 된 사모사(기름에 튀긴 만두와 비슷한 음식,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주로 먹는다.) 가게가 하나 있다. 그 가게는 할아버지 한 분께서 직접 요리도 다 하시고, 운영까지 하고 계셨다. H언니와 나는 저녁 식사 대용으로 간단히 사모사를 먹으러 그 가게에 자주 가게 되었고, 사장님 할아버지와 자연스레 친해졌다.


사실 그 사모사 가게는 훈자 도착한 첫날 수제비를 먹으러 가는 길에 본 기억이 있다. 아주 작은 가게라서 손으로 직접 쓴 도화지 간판만이 문에 붙여져 있었고, 그 종이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Sunmi Korien vegetable"

그때 H언니와 나는 "저기 보이는 'Korein'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코리안일까?, Sunmi는 한국인 이름 그 선미 일까?"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며칠 전 어김없이 사모사를 먹으러 가게에 갔었고, 우리는 할아버지께 종이 간판에 쓰여있는 'Korien'의 의미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할아버지께서는 한국 사람을 의미하는 그 'Korean'을 쓴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앞에 'Sunmi'는 예전에 훈자 여행을 했던 한국인 여행자인데,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며 잊지 않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앞에 넣었다고 하셨다.


우리는 'Korien'의 철자가 잘 못 됐다고 알려드렸고 할아버지는 그러면 다음날 종이를 준비해둘 테니 고쳐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당연히 해드린다며 다음날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그 약속 당일, 나의 고질병인 급성 위염이 심하게 도지는 바람에 방에서 하루 종일 명치를 부여잡고 뒹구느라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으니 연락도 드릴 수 없었고 몸이 회복된 오늘이 되어서야 우리는 뒤늦게라도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러 온 것이다.



훈자 첫날부터 우리 인상에 깊이 남았던 사모사 할아버지네 종이 간판



지금까지 인도, 파키스탄 여행하며 먹었던 사모사 중에 단연코 훈자 할아버지 사모사가 가장 맛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혹시라도 우리가 안 오는 줄 알고 다른 분들한테 먼저 부탁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그날 우리를 계속 기다렸을 할아버지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우리는 할아버지의 가게에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자마자 여느 때와 같이 활짝 웃으시고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서랍에서 하늘색 큰 도화지와 매직을 꺼내셨다. H언니는 손글씨에 자신이 없다며 나보고 쓰라고 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내 오른손에는 매직이 쥐어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선미라는 이름 뒤에 '내 이름'과 'H언니 이름'을 꼭 넣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불러주시는 대로 긴장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한 획, 한 획을 그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할아버지네 종이 간판 문구는

'선미, 슬기, 지현 Korean Vegetable Sunmi Samosa'가 되었다.



(좌)간판 제작 중인 나와 할아버지. (우)완성된 할아버지네 종이 간판!



할아버지는 그날 완성된 종이 간판을 새롭게 붙이시고는 한참 동안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런 할아버지께 우리는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우리가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이렇게 둘이 같이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 이 간판 붙이고 계셔야 해요! 저희가 확인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래, 꼭 그 약속 지켜야 해! 이번에 너희가 약속을 지킨 것처럼.."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 고맙다며 할아버지표 감자튀김과 짜이를 서비스로 주셨다. 곧이어 할아버지는 또 다른 서랍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어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 상자 안에는 지금까지 이 가게를 다녀간 많은 여행자들이 할아버지께 드리고 간 편지와 엽서, 사진으로 가득했다. 상자의 80% 이상은 한국인 여행자들의 흔적이었다. 왜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종이 간판에 'Korean'이라는 말을 빼놓지 말고 쓰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에게 한참 동안 편지와 엽서를 보여주시며 자랑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애틋함, 그리고 그리움이 가득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분명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보여주셨지만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정을 주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고, 또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들의 흔적을 이리도 아끼며 지켜오셨는지, 그 마음을 지난 세월에 노랗게 바래진 편지지와 엽서의 색깔이 말해주고 있었다.



예쁘지 않은 글씨로 완성된 이 종이 간판을 휴대폰 카메라에 여러 장 담으셨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셔서 대화를 할 때마다 크고, 짧게 말씀드려야 해서 길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늘 마음이 편안했고 따뜻했다. 할아버지가 나와 H언니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손녀딸을 보는 듯한 다정함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런 눈빛을 느낄 때면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또 아빠가 나를 쳐다볼 때 그 순간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그 애틋함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 벌써부터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그날이 걱정되었다.


나와 언니가 떠나가고 언젠가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에게 할아버지는 그리움이 잔뜩 묻은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우리 사진, 우리가 만든 간판을 보여주시며 이야기하시겠지. 할아버지의 보물 상자를 구경하며 할아버지의 한국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어두워진 훈자 거리로 다시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한데 먹먹했다. 정말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아니, 지키자고 우리 둘은 다시 약속했다. 나와 언니가 훈자에 몇 년 뒤 다시 왔을 때 이 동네가 다 변한다 해도 꼭 할아버지만큼은 건강하게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본다. 이렇게 훈자에서의 하루가 지나간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