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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30. 2022

시험과 경쟁이 없는 수업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수업이 맹숭맹숭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넘치게 주어지던 자유시간 때문만 은 아니었다. 그 못지않은 큰 요인이 바로 '수업'이었다. 내가 들었던 수업에서는 선생님의 강의보다 학생들이 대화를 풀어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주어진 과제에는 늘 정해진 답이 없었다. 주어진 문제를 풀고 나면 더 어렵고 복잡한 테스트와 과제가 계속해서 제공될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누구나 다 수업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과제만이 주어졌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어깨에 힘이 조금씩 빠지면서 깨닫게 되는 지점들이 생겼다. 나 자신이 시험을 통한 점수와 등급으로 평가받는 것 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 식 교육'이 너 무나 깊숙이 내면화되어 경쟁이라곤 전혀 없는 폴케호이스콜레에서의 생 활이 마치 ‘양념이 되지 않은 심심한 음식’처럼 밋밋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학기 초 시간표를 구성하기 위해 고민하던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지나치게 수업을 빼곡히 배치하지 말라'라고 조언하곤 했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 수 업을 받고도 책가방 두둑이 과제물을 어깨에 지고 귀가하며 느끼던 묵직한 마음을 떠올리면 IPC에서의 수업방식이 너무 담백하고 가벼운 듯했다. 입 시를 위해 이 학교에 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내 마음은 자꾸만 홀로 앞을 향해 달려가고만 싶어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을 들인 나의 첫 직장은 IMF가 터진 직후였던 1999 년부터 지금껏 대안교육을 비롯한 대안문화(alternative culture)를 만들어 온 역사를 가진 청소년기관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주류의 문화에 익숙했던 나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호기심을 갖고 알아가고 싶었던 사회의 모습은 그것이 아니었기에 택했던 길이었다. 경쟁과 배제의 원리에 기초한 기존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교육의 미래를 그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해온 나로서는 나 자신이 폴케호이스콜레의 이러한 수업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 교육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은 수직 서열화된 학교체계와 이 서열화된 학교의 상위에 들어가기 위한 학생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경쟁의 결과에 따른 차등적 보상이라는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잘 적응하는 편이었던 나는 공교육과 사교육을 적절히 배합해 학업성취도 측면에서 상위에 드는 소위 ‘엘리트 교육’의 수혜자였다. 다시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자 ‘정답'을 맞추어 나의 남다름을 드러내고 선생님께 칭찬받기를 기대하던 교복 입은 어린 시 절의 내 모습이 나도 모르던 사이 부활했다. 그 모습을 십 년이 가까운 시간을 지나 고스란히 다시 마주해야 했기에 이곳에서의 첫 학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IPC에서의 모든 수업은 특출 난 상위 몇 퍼센트를 우선으로 키워내는데 주력하고 보다는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빠짐없이 제 역할과 자리를 찾아 자기 몫을 할 수 있도록 잘 배분하고 그것을 돕는 데에 큰 방향이 잡혀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특별히 칭찬을 받을 이유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나야 할 필요도 없었다. 우습게도 나는 그 지점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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