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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30. 2022

학교는 수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2015년 1월, 겨울의 한가운데 덴마크에 도착했던 나는 태양이라곤 잔뜩 흐린 하늘에 가려진 어슴푸레한 빛의 형체가 전부이고, 그마저도 오후 세시쯤 서서히 사라지는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것인지 의문이 일었다. 당시 나는 덴마크에 오려고 그동안 조금씩 모아 온 저금을 탈탈 털었기에, 내심 기회비용을 따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그랬을까? 처음엔 그곳에서의 생활과 수업이 영 맹숭맹숭하고, 성에 차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넘치도록 주어지는 자유시간이 불만이었다. 숙제도, 시험도 없는 기숙형 학교인 '폴케호이스쿨(Folkehøjskole)'인 IPC에서는 정해진 시 수의 수업에만 출석하고 나면 그 외에는 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다. 풀벌레 소리와 넓은 잔디, 아름다운 연못을 끼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캠퍼스에서의 자유시간이라니, 너무 좋을 거 같은데? 라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나는 그곳에서 자유시간을 가장 자유롭지 않게 보내는 사람이었다. 넘치도록 주어진 자유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랐기 때 문이다. 처음엔 이곳에 ‘유학’까지 왔으니 뭔가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비좁고 어둑한 지하의 도서관을 울적한 표정으로 드나들었다. 그곳에선 노트북을 켜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한국인들과 영단어 공부에 열중하는 일본인 무리가 눈에 띄었다. 또 한 부 류가 더 있긴 했는데, 화창한 날씨에 이들이 컴컴한 지하 도서관에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문을 빼꼼히 열던 여타 다른 문화권의 학생들이었다. 


호이스콜레의 진가는 개설된 수업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수업은 단지 학교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다. 호이스콜레에 머무르는 동안은 교사를 비롯한 학교의 다양한 스태프진들(주방, 행정, 건물관리 등등)을 포함해 100여 명의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이들과 제2의 가족과 같은 안전한 공 동체를 이루어 적게는 3개월, 많게는 6개월간 생활하는 동안 이루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게 된다. 교실 안에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는 시간들이 절대적으로 많은 기존의 학교와는 달리 친구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시간이 풍성하다 보니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평생을 기쁜 일과 어려운 일을 나누는 친구로서 삶 속에 깊이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평생 친구'를 넘어 '평생의 반려자'가 되는 경우도 잦을 만큼 관계가 밀도 있게 형성된다. 옛날엔 폴케호이스콜레의 댄스파티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학교의 이곳저곳을 돌보느라 늘 바쁜 모습이던 오베(Ove) 아저씨도 반려자를 소싯적 포크 하이스쿨 다닐 때 만나셨다 한다. 이쯤 되니 단순히 배움을 소비하려고 했던 내 지저분한 양심이 조금씩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양한 빛깔로 채워 나갈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편안히 먹고, 자고, 일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학교 뒤뜰의 나무에 서 포도와 사과를 따고, 케이크를 구우며. 맥주를 마시고 캠프파이어를 한 다. 교실에 모여 토론하고, 선생님과 농담을 나누고, 숲에서 거닌다.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벽난로와 사랑에 빠지기도, 아주 뜨거운 연애에 빠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덴마크 호이스콜레를 정의해 보자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의 현재를 누릴 수 있는 시 공간' 그 자체다. 


이는 내 상상력 안에 자리한 학교와 매우 다른 모양이었다. 넘치게 주어지던 자유시간을 '허송세월', '잉여로움'으로 바라보았던 나로서는 이렇게 넉넉 한 시간을 즐길만한 상상력도, 여유도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수업에서만 의미 있는 배움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휴식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일의 하수인' 정도의 지위로 여겼던 내가 진정한 쉼이 무엇인지, 전환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언젠가 치러야 했던 관문이었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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