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고, 낳고, 나아가기
몸이 늙고 지쳐 눈도 뜨지 못하는 노인들이 침상 위에 누워 이동하고, 지방에서 캐리어를 끌고 달려온 노부부가 높은 음성의 간호사들과 씨름하는 곳. 놀란 가슴들이 수시로 오고 가는 로비 한 켠에 앉아 입원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수술이 이틀 후로 다가온 것이다.
미리 입원해 수술 전에 필요한 검진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거의 대부분 암이 발견된 가슴을 전부 절제하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일부는 신체의 다른 살점을 떼어 내 유방을 원래의 모양과 가깝게 복원하는 선택을 하고, 나머지는 절제한 상태로 생활하기를 선택한다. 전절제는 무엇보다 재발의 위험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부분절제를 선택했다. 외과 선생님도 아무런 말씀 없이 알겠다고만 하셨다.
수술 당일, 얇은 환자복 한 장만 걸치고 휠체어에 앉아 운송요원분의 도움으로 복잡한 병원 내부 복도를 빠르게 이동했다. 엄마는 나란히 걸어오다 수술방이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자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엄마의 발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멀리서 “우리 딸, 잘하고 와”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자동문이 열리고 마주한 공간은 수술실 입구였다. 줄줄이 늘어선 침상 위에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누워있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그 사이를 다니며 신상을 확인하는 질문을 했다. 61년생, 53년생… 그중 내가 가장 나이가 적었다. 수술실은 일반 사람들은 들어가 보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이다. 미로처럼 이어진 복도를 따라 한참 이동한 뒤에 들어선 수술방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병실에다 안경을 벗어두고 왔어야 했기에 시력이 심하게 좋지 않은 나로서는 그 공간이 공상과학영화 속 세트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뜻밖에도 레지던트쯤으로 보이는 선생님 한분이 구석에 쓰러져 잠든 듯 보였다. 눈이 흐릿한 상태에서도 그 모습이 측은했다. 아주 잠시지만 처음 들어가 본 대학병원의 수술실은 쏟아지는 중환자들 속에서 의료노동자들이 전쟁통처럼 일을 하는 치열한 노동현장이었다. 수술과 수술 사이. 그분이 얼마나 많은 수술을 거쳤으면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닿았다.
생의 맨 끝 자락을 익숙한 나의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마 우리들 중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의료 노동자들의 손길 속에 마지막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병원에서의 장기 치료가 필요한 암이나 심장질환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요 사망 원인이라 하니 말이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던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그려본다. 과연 어떨까? 나를 잘 아는 친구나 가족들의 조용한 속삭임이 들릴까? 아니면 의료 기기에서 나오는 기계음이 울릴까? 낯선 의료진과 함께일까? 나는 어떤 표정일까? …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꼬르륵…’ 롤러코스터 타듯 삽시간에 무의식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