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고, 낳고, 나아가기
하얗고 쾌적한 병실에서 회복을 하고 있다.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느꼈던 날카로운 통증을 떠올리면 여전히 정신이 아찔하지만 노련한 간호사 선생님들의 돌봄으로 마음이 편안하다. 6인실 병동에는 입, 퇴원하는 환자와 보호자로 듬성듬성 자리가 찼다가 다시 비워졌다 했다. 깨끗한 침대 시트에, 새하얀 커튼을 촤르륵 치면 꽤나 아늑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균형 잡힌 식단의 매 끼니가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받을 때처럼 직접 무릎 위로 전달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른 것이 아니라, 수술실에서 왔다는 것. 어쩌면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시간과 공간이 아직 미지의 상태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지난 몇 개월간 온전히 나 스스로 내려야 했던 선택들 때문에 온통 곤두서 있던 터라 입원을 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사전 교육을 받고, 수술 전 검사를 치르고, 수술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전자 동의서에 손가락으로 싸인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는 이 상황을 은근히 누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 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 것일까?
오후에는 절친한 친구 둘이 찾아왔다. 대학시절부터 붙어 다니던, 나를 잘 아는 친구 둘이 병문안을 오면서 사 온 것은 만화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만화책도 안 읽는 인간으로 30년을 넘게 살아왔다. 서둘러 퇴근을 하고 면회시간에 맞추어 찾아온 친구들에게 내가 집에서 챙겨 온 티백차를 우려 대접했다.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내가 아끼는 도자기 잔까지 집에서부터 챙겨갔다) 병실에서 열린 아늑한 찻집이라며 한껏 호들갑을 떨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이 면회시간이 다 되어 병실을 나서던 찰나,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나의 상황을 나 만큼이나 안타까이 여겨준 친구의 고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떨구지 않을 만큼 괜찮았다. 이 병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앞으로 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잘 모르지만, 병이 강제로 건 브레이크에 급정거 한 지금이 아주 나쁘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친구들이 가고 난 뒤에 집에서 가져온 현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미니 가습기를 켰다. 심호흡을 하고 만화책을 펼쳤다. 손 끝에 침을 발라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나만의 짧은 휴가를 즐겼다. 혈압을 재기 위해 커튼을 젖힌 내 나이 또래의 간호 선생님이 말없이 싱긋하고 웃었다. 내 인생 첫 입원이면서 처음으로 만화책을 소장하게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