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고, 낳고, 나아가기
일주일에 한 번, 총 12주에 걸쳐 항암제를 투약하는 일정은 12개의 험한 고개를 넘는 긴 마라톤이었다. 주사제를 맞고 나면 몸이 서서히 무거워져서 이후 3-4일 정도는 두통, 뼈 시림, 메스꺼움, 미열, 등과 같은 다양한 현상을 나름의 방법을 써 가며 달래는데 오롯이 집중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남은 이틀 정도는 신기하게도 다음 항암제를 감당할 만큼 컨디션이 호전되어 조금 살 만 해졌다.
항암제를 투약하는 요일을 중심으로 나름의 리듬감을 찾아가던 어느 날, 집으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지난 몇 주간 머릿속에 내내 남아 있던 스카프가 들어 있었다. 손으로 쓰인 작은 엽서에는 ’언젠가 너에게 꼭 좋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는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몇 주 전, 친구와 북촌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기다란 스카프가 눈에 들어왔다. 모자만 쓰기보다는 아프리카의 여인들처럼 화려한 문양의 천으로 머리를 둘둘 감아올리는 헤드 랩(Head Wrap) 스타일도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그 스카프가 제격으로 보였다. 스카프에는 네온색이 섞인 녹색으로 열대 나뭇잎이 연상되는 드로잉이 시원스레 그려져 있었고 그 뒤로 내가 좋아하는 코발트블루가 칠해져 있었다. 크기도 꽤 큼지막해서 머리 전체를 안정적으로 감싸고도 한참이 남을 것 같았다. 그 아래로 맑은 민트색을 띤 스페인산 원석이 달린 귀걸이를 걸어주면 아주 딱일 것 같았다. 머리에 한번 둘러보고도 싶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을 보고 조용히 내려놓고 말았던 것을 친구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날로 나는 외출할 때면 늘 친구가 선물해 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다녔다. 봄에 시작된 항암주사 일정은 어느덧 무더운 여름으로 이어졌고 스카프는 뜨거운 햇빛을 가릴 때에도 아주 유용했다. 보드라운 실크가 머리에 부드럽게 감길 때엔 내 마음도 포근하게 감싸지는 듯했다.
찌는 듯한 여름이 지나가고 약간의 소강상태를 이루던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피검사를 위해서 멍 투성이의 팔을 내 밀고 주사 바늘을 기다리고 있는데 베테랑인 나이 지긋한 간호사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이런 멋진 스카프는 처음이에요. 보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지네요!”라고 하셨다. 이름과 대기번호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말도 나누어 본 적 없던 주사실에서 처음으로 의료진과 주고받은 짧은 ‘대화’였다. 새하얗기만 하던 병동이 순간적으로 내 스카프와 닮은 상큼한 초록으로 물들었다.
아픈 사람들에게서 가장 빨리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색(Color)’인지 모른다. 환갑이 넘은 우리 고모는 인생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세상이 온통 회색으로 보였다는 말을 종종 하신다.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에는 마치 그런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듯 벽마다 걸린 총 천연색의 그림들이 색을 보충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 안에는 색이 없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백색 사이로 회색의 기분과 표정이 오고 간다. 이 장소를 오고 싶어서 찾은 사람들이 아니어서일까? 길고 긴 대기 시간을 버티는 사이 색이 빠지고, 진이 빠진다.
예전 어느 강연에서 만난 한 여성 페미니즘 신학자*는 ‘옷 보시’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학자로서나 생활인으로서나 모노톤의 절제된 색채의 물결 속에서 한 송이 빨간 꽃이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녀는 어떤 옷을 입을지 선택하는 일은 상대와 사회에 대한 배려이면서, 때로는 치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가 '옷 보시'에 대한 개념을 책에서 언급한 것을 기억한다.
미로같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고 기다란 암병원의 복도를 걷는 동안 내 머리 위 아름다운 스카프에 가 닿던 미소들이 나를 기쁘게 해 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어렵고 불투명한 시기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을 가까이한다면 입안에 침이 고이듯 다시 생의 의지가 올라올지도 모른다. 마주 보고 걸어오는 이들의 기운이 나에게 와닿는 것은 덤이다.
*현경, 김수진,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서울, 샨티, 2017, p.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