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고, 낳고, 나아가기
가장 힘든 것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한동안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냈다. 이제 한 달간 매일 병원에 가야 하는 방사선 치료 일정을 앞두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수술과 항암을 거쳤음에도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암세포를 없애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번주는 병원에 ‘그림을 받으러’ 다녔다. 아래, 위 수평으로 움직이는 기계 위에 누워 있으면 선생님들이 다가와서 신중하고 민첩한 동작으로 파란색 특수 잉크로 내 상체에 가로, 세로줄을 그었다. 정밀하게 계산된 방사선 양을 정확히 조사해야 하기에 이 설계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거울에 비친 그림을 찬찬히 감상한다. 이제 보니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도 적혀 있다. 지워지면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 몇 주간은 샤워도 제대로 못한다. 그나마 날이 점점 시원해져 다행이다. 파란 선이 지워질 새라 조심스럽게 몸을 닦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너는 그동안 도대체 뭘 하며 지낸 거야? 한심하기는!'
익숙한 목소리다. 그동안 치료에 집중하느라 잠잠했을 뿐, 빈정대는 투는 여전하다. ‘그럴 줄 알았어’, '네가 하는 것이 다 그렇지, 이게 너의 한계야.' 목소리는 쉬지 않고 나를 바짝 따라다니며 뒤통수를 쥐어박았다. 나를 몰아세우며 매섭게 비판하는 아주 오래된 목소리... 함부로 비교당하고, 학대당하는 나를 본다. 안타깝게도 그 목소리를 피해 숨을 곳은 없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막 돌아와 한숨을 돌리던 차에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친구가 결혼을 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더랬다. 올해는 유난히 주변의 또래 친구들이 청첩장을 보내오는 일이 잦다. 얼마 전에는 절친한 친구가 결혼식에 증인이 되어 주기를 부탁해오기도 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목소리가 반가운 한편,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적 성취를 진정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나지 않는 내 상태가 싫고 속상했다. 한동안 꾹 눌러두었던 감정이었다. 함께 20대를 열정적으로 보냈던 주위의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매일을 느릿느릿 보내는 현재의 내 모습을, 직장생활을 하며 ‘활력 넘치고’ ‘생산성 있게’ 생활하던 과거의 나와 비교했다. 나는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고, 마땅히 해야 할 내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별 것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에너지가 쉽게 고갈되곤 하던 것이.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저 차갑고 냉혈한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느라 지쳐버리곤 했던 것이다. 나는 늘 같은 패턴을 돌며 낙하하는 감정을 겪었다. 어쩌면, 평화가 찾아오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거울을 본다. 오직 얼굴에 얹은 안경만이 과거와 나를 연결해 주는 것 같다. 오늘따라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크진 않지만 짙고 분명한 흉터가 자리를 잡은 가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처음으로 그 목소리에 힘주어 반박하는 '진짜 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동안 힘든 치료를 받았어.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샤워기의 물소리와 함께 흘려보내며 결심했다. 오늘부터 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꺼버리기로. 앞으로는 슬프고, 아프고, 힘든 시간을 건너가는 나 자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밝고 깨끗한 미소를 매일매일 선물할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맘구석 1열’에 앉아 나를 힘껏 응원하는 나의 '가장 강력한 편’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