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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25. 2024

더 많이 존재하기

낫고, 낳고, 나아가기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여의도에 새로 생긴 H 백화점에 갔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1층 입구부터 진열된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명품 신발과 가방들이 앞다투어 나의 신경을 끌어당긴다. 두렵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물건들을 욕망하게 될 내가. 예쁘고 잘 만들어진 것들에 매혹되곤 하는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백화점은 신나면서도 불편한 곳이다. ‘역시 돈은 많이 벌고 봐야 해’, ‘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어’라고 중얼거리며 백화점을 나서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백화점은 기본적으로 물건이 돋보이도록 디자인된 공간이다. 물건이 사람이라면, 가장 살(to live) 만한 곳이 백화점이지 않을까? 인권과 같이 물질권이 있다면, 이들이 가장 존중을 많이 받는 곳이 백화점일 것이다. 물건을 고르는 것에 지나치게 열중하다 보면 내 존재는 일순간 사라지고 이 물건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만 현재를 채우게 된다. 그러는 사이 존재는 점점 허기가 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백화점에 다녀오면 얼마간 얼이 빠지는 것 같다.


백화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로 지하철을 타는 대신 조금 걸어보기로 한다. 빨간 등이 녹색 등으로 바뀌고, 대로 위로 뻗어진 횡단보도 위를 

.

정지선 뒤로 멈춰 선 자동차들이 금방이라도 출발할 듯 부릉거린다. 늘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자마자 허겁지겁 길을 건너곤 했다면, 보행자에게 허락된 녹색 신호가 동이 날 때까지 최대한 느리고 우아하게, 기린처럼 등을 곧게 펴고 한걸음 한걸음에 정성을 기울이며 차근히 걸어 본다. 


걷기를 좋아해서 걷기에 관한 책들을 수집하곤 하는 내가 근래에 재발견한 것은 '느리게 걷기'의 맛이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걷던 산책로도 아주 느리게 걸어보면 그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느리게 걸으며 느끼는 햇살은 그 질감마저 다르게 느껴질 정도다. 늘 무엇에 쫓기듯 바삐 건너곤 하던 횡단보도 위를 천천히 걷는 것은 특히나 주변의 바삐 흘러가는 도로 위 풍경과의 대비가 상당한지라, 어딘가 짜릿한 기분까지 든다.


느림의 매력은 걸을 때뿐 아니라 먹을 때, 읽을 때, 수영을 할 때, 말을 할 때 그리고 숨을 쉴 때 적용해 보아도 여전히 좋았다. 마치 동영상 재생 속도를 0.7로 설정한 것처럼 템포를 늦추어 움직이다 보면 시간과 공간뿐 아니라 내 앞의 사람을 대할 때도 평소보다 여유롭고 한결 편안해졌다. 서두를 때는 몰랐던, 오직 느린 시간 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장면이 있었다. 작은 친절과 배려, 그사이에 피어나던 가녀린 꽃과 같은 미소들이 그렇다. 다른 사람을 살필 수 있는 느긋한 마음이 걸어갈 수 있는 이 정도 속도가 딱 좋다. 


느림은 음미할 수 있게 해 준다. 아는 것에서 음미하는 것으로, 머리에서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려면 우선 속도를 늦춰야 한다. 느리게 걷고, 먹고, 대화하며 내 존재에 집중하는 일의 충만함을 알고 난 뒤로는 다시 또 그 순간을 맛보고 싶어서 눈을 감고, 고요한 시간을 즐기는 일이 잦아졌다. 내 존재를 느끼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 몸을 이용해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냄새를 맡고, 그 기운을 음미하는 것. 그 순간들을 촘촘하게 누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고즈넉하게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오늘날 우리는 물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산다. 인류 역사상 지구에 물건들이 이렇게 넘쳐나던 시절은 없었을 것이다. 물건들을 고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고, 리뷰를 올리고, 리뷰를 읽는다. 물건을 사기(to buy) 위해 사는(to live) 지경에 이른 사람들을 본다. 더 좋은 물건들을 더 많이 사기 위해서, 누구보다 더 빨리 갖기 위해서 몇 시간이고 줄을 서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내 존재를 감각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어떤 것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더 많이 구입하기 위해 더 많이 벌기보다 더 많이 존재하고 싶다. 예쁜 물건들은 세상에 넘쳐나지만, 물건은 그저 물건이다. 500년이 넘은 백자도 결국엔 물건일 뿐, 세상의 어떤 예술 작품도 지금 살아 있는 현존재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나도 요즘 사람이다. 나는 예쁜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예쁜 물건보다는 나 자신의 현존함을 누리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백화점엔 이제 자주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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