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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27. 2024

숨과 노래

낫고, 낳고, 나아가기

'완(전) 충(만)!' - 2024년 10월 정기싱얼롱 참가자

참가자가 적어두고 간 메모를 보니 나도 풀 충전이 되는 기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낯에서 뽀얗게 윤이 났다. 오늘은 열세 번째 정기싱얼롱이 있었던 날. 갓 돌이 지난 아이부터, 휠체어를 타고 강원도에서부터 찾아오신 구순이 넘은 할머니까지 약 4세대가 함께 노래하는 시간은 서른 명 정도 되는 참가자들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한다는 것이 이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있을지, 2년을 꽉 채워 모임을 열고 있는 나이지만, 여전히 가슴이 뛰고 호기심이 인다.


암 경험 이후의 내 삶은 'Live'다. 꼭 방송국에서 녹화 중, 생방송 중에 켜두곤 하는 'On Air Light'에 불이 켜진 것 같달까. 매 순간이 실전이라는 생각이 삶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되도록 오래 미루지 않고 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피워보리라, 오랫동안 품고 지내던 작은 불씨들을 꺼내 보고 싶어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한나, 독립출판물, 2022는 아껴두기만 했던 여러 개의 불씨 중 하나다. 책을 통해 '함께 노래하는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 정기싱얼롱을 열어 그 기쁨을 일상 속에서 향유하는 것. 마음을 말하게 하는 일. 그걸 하고 싶었다. 독립출판으로 첫 책을 세상에 꺼낸 뒤로 현재까지 서른 번이 넘는 크고 작은 북토크와 싱얼롱(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열었다.


'히브리 말로 숨(Breath)과 영혼(Soul)은 같은 어원에서 왔다고 했다. 노래는 호흡으로 빚어지는 것이니, 노래를 부르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고, 그것은 영혼과도 연결이 되는 셈이다.' 

-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중

나는 몸과 정신, 마음을 연결하는 행위로 노래만 한 활동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노래를 하는 동안 우리 몸은 유일무이 한 악기가 된다. 우리의 숨으로 빚어진 것이 바로 노래다. 마치, 각기 다른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감정을 더욱 폭넓게 표현하는 것처럼 혼자 노래할 때보다, 함께 노래할 때 그 감동의 진폭이 커진다. 낯선 사람들이 한 멜로디에 올라 타 감응하고 아름다운 모양으로 잘 벼려진 가사를 각자의 숨과 함께 뱉어내는 시간. 이 짧은 시간 동안 생겨나는 평화로운 기운을 나는 사랑한다.


'평화와 함께 집에 돌아가요.' - 2023년 11월 정기싱얼롱 참가자 

함께 노래하는 정기싱얼롱은 바삐 흘러가는 일상 속에 잠시 멈추어 현재를 오롯이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러 번 모임을 진행해 왔지만 첫 음을 내보낼 때 감도는 어색함은 여전하다. 노래방이 아닌 곳에서 노래하는 것이 어색하다며 입만 벙긋벙긋하는 아저씨도 계시고, 갑자기 눈물이 올라와 목이 메인 듯 눈이 빨개진 채 악보만 바라보는 삼십 대 청년도 있다. 하지만 모임의 후반으로 갈수록 어김없이 목소리가 모이고 집중하는 힘이 커진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서로가 ‘만난다’.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그 순간을 함께 노래하는 모두가 알아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세계보건기구가 1986년 캐나다 오타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열어온 세계건강증진대회는 지속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건강의 정의를 발표하고 전략과 틀을 제공해 왔는데, 정신적(Mental), 영적 차원(Spiritual)을 포함하여 건강의 모든 영역의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다. 신체적인 건강만을 지킨다고 해서 건강한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보건기구(WHO)가 공표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왔다.


'노래하며 꽃 피우는 우리 존재함을 축하해요.'- 2024년 2월 정기싱얼롱 참가자

목소리는 그 자체로 존재를 표상한다. 힘을 빼고 노래할 때, 그 목소리는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꾸며낸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게 한다. 모임을 준비하며 신중하게 선곡한 네 곡을 찬찬히 부르는 동안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소득은 얼마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계획인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것은 서로의 존재, 순수한 마음이다. 나와 다른 세대와의 만남이 귀해진 시대, 반목과 혐오, 편견이 생기기 이전의 자리. 그 자리는 문화와 예술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행복 그 자체!' - 2024년 6월 정기싱얼롱 참가자

암 산정 특례기간인 5년이 모두 지났다. 마지막 진료일에 만난 간호사 선생님은 다음 진료일을 적어주곤 하던 안내문에다 매직펜으로 굵직하게 ‘졸업’이라는 두 글자를 적어 주셨다. 무덤덤하게 ‘졸업장’을 받아 들고 병원 정문을 나서는데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대학 졸업식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나에 대한 대견함과 자부심이었다. 졸업 이후의 삶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 자신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된다. 삶으로 저절로 두둥실 떠오를 수 있도록 열심히 숨을 불어넣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된 지금이 참 좋다. 신체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 마음, 영혼을 아우르는 건강을 돌보며 삶 속으로 나아가고 싶다. 오늘 정기싱얼롱이 끝나고 사람들의 행복하게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참가자 중 누군가 남긴 노트처럼 '행복 그 자체'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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