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고, 낳고, 나아가기
불과 얼마 전, 여느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무심코 팔을 들어 겨드랑이를 살펴보던 나는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와 달리 겨드랑이의 림프절 주변이 살짝 부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마, 혹인가?’ 서둘러 병원에 전화를 걸어 외래 진료 예약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서는《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기다렸다는 양 상영을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유방외과 교수님은 겨드랑이를 만져보시더니 특유의 분명하고 시원한 목소리로 딱 한마디를 하셨다.
“본인 살입니다.”
머쓱해진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워하는 표정의 간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소리내어 웃었다. 늘 긴장된 표정으로 의사 선생님의 입만 간절하게 쳐다보곤 하던 진료실에서 그렇게 파안대소한 것은 처음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병원 앞 카페에서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스푼을 푹, 떠서 입안에 넣었다. 평범했던 하루가 다시 한번 경이로운 하루로 탈바꿈했다.
여전히 삶은 이렇게나 위태롭다. 그걸 알고 난 뒤로는 매일 아침, 언제든 간절한 기도를 바칠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서 내려오곤 한다. 그래도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너무 오래 사로잡혀 있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한동안은 어둡고, 침침하고 음습하던 시기에서 벗어나는 것에 힘을 쏟았다. 천성이 옛 사진이나 기억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꼬깃꼬깃 접어 전해 준 자그마한 메모들까지도 모두 그러안고 사는 ‘미련 왕’인 내게는 참으로 새로운 시도였다. 과거에 품었던 감정들을 까마득한 과거로 밀어내고, 다시 밀어내는 시간이 이어졌다. 다시 소환하지 못할 만큼 더 멀리. 기억이 뭉개지고 왜곡되는 것도 괘념치 않았다. 망각하는 것을 괴로워하던 내가 망각이 만들어 낸 여백을 발견하고, 그 여백에 새로운 나를 채워 넣는 재미를 맛보게 된 것은 근래에 내가 한 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다.
이 글들을 모아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몸속에서 항암제가 빠져나가고 난 뒤로도 한참… 방사선에 그을린 자국도 점점 옅어져 더 이상 흔적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쯤? 아니, 그러고도 다시 몇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가장 연약했던 그 시절을 붙잡아 어딘가에 매어 두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새싹이 쑤욱, 하고 올라온 듯한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무수히 많은 투병기에 내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태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 따라다녔다. 내 경험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시간’ 임을 깨달았다. 나는 암 경험을 하던 긴 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책으로 쓰일 만큼 중요했다.
쓰고, 그리는 일은 일상 속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울적한 시기도 다른 어떤 때와 다름없이 고르게 살피고 결국엔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되어 준다. 한참을 달아나다가, 다시 돌아본 내 아픈 시절의 곳곳에 예쁜 꽃과 풀들을 심어 두고 돌아왔다. 그럴 수 있는 힘은 모두 완전히 멈추어 서 있던 시절에 길러진 것이다. 그 시간들이 전해주는 선물들을 매일매일 받아 안으며 어제를 딛고, 오늘을 음미하고, 내일을 기다리며 마음껏 홀가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