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 혁신 도전기
시장에 가서 파 한 단, 깐 마늘, 양배추 한 통과 브로콜리 한 개를 샀다. 그로부터 3일 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깐 마늘과 아삭이 고추, 쌈 채소를 샀었다. 채소를 좀처럼 사지 않다가 최근에는 자주 채소를 산다. 친구에게 소개받은 곳에서 싱싱한 쌈채소를 배송받아먹기도 한다.
파는 몇 개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지퍼백에 넣어 냉장보관하고 나머지는 어슷썰기, 다지기의 두 버전으로 잘라 냉동실에 소분해 넣어둔다. 브로콜리는 먹기 좋게 잘라서 식초물에 담갔다가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양배추도 한 번에 먹을 만큼 소분하고 키친 타올로 감싸서 위생팩에 넣어둔다.
냉장고 한쪽에 넣어둔 채소 전용 바구니를 꺼내 새로 산 마늘을 넣는다. 바구니 안에는 아삭이 고추와 양파, 방울토마토, 그리고 몇 알 남지 않은 깐 마늘이 들어있다. 식재료를 다듬느라 잔뜩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봉지에 담아서 산책 가는 길에 내다 버린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일 테지만 나에게는 없었던 일이다. 이렇게 꾸준히 채소를 사들이는 삶이 기특하고 반갑다. 갑상선암 진단의 영향이지만 그 어렵던 식생활 바꾸기를 마침내 실천하고 있으니 전화위복인 셈. 더 건강한 삶을 위해 따끔하게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조금은 나으니까.
내가 그간 채소를 좀처럼 구입하지 않았던 이유는, 양심의 가책을 피하고자 함이었다. 맘먹고 한 끼 해 먹으려고 필요한 채소들을 사고 나면 그 후로는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아 외식을 일삼다가 싱싱하던 채소들이 짓물러 가는 꼴을 보곤 했던 것이다.
마땅히 진작 뱃속에 넣었어야 할 그것들을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을 때 얼마나 죄책감이 들던지.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무거운 마음을 피할 길이 없어서 결국 채소를 아예 사지 않아 왔던 것이고 2인 가구는 차라리 사 먹는 게 이득이지라고 항변하며 더더욱 외식에 박차를 가하여 왔던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해결하는 기분으로 마음을 결연히 하고 본격 채소 친화적 식생활을 해보니, 매끼 채소를 먹어대다 보면 채소가 채 짓무를 새도 없이 사라지는 일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해법은 선택과 집중을 함으로써 가능했다. 말하자면 채소 몇 가지로 돌려 막는, 아니 돌려먹는 식단이랄까.
요즘엔 동네 전통 시장을 자주 이용하고 있는데 넓은 공간에 쫙 깔린 채소들을 보면 채소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놀라울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눈길을 주는 채소는 딱 몇 가지. 나머지에 관심을 가지면 또 짓물러 나가는 꼴을 봐야 하니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다.
지난 몇 주간 약속이 있는 경우를 빼고는 아래 네 가지 정도의 선택지에서 골라 식사를 해결했다. 핵심은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느냐인데 더 핵심은 맛있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가이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습관이란 '뜨거운 아이스크림'처럼 어불성설일 테니까.
나는 건강을 위해서 억지로 먹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맛있어서 먹는다. 배고픔에 허기지거나 금단 증상을 느끼지도 않는다. 체중은 재지 않고 있지만, 기존에 입었던 옷들이 더 헐렁해졌으니 분명 체중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체중을 재지 않는 이유는 과거 글 참고)
채소를 많이 먹어야겠구나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샐러드였다. 샐러드 레시피는 워낙 다양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채소를 다 사느니 사 먹는 게 낫겠다 싶어서 몇 번은 샐러드를 파는 음식점에서 포장을 해다가 먹었다. 근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가격도 부담스럽거니와 대량 유통되는 이런 샐러드가 정말 건강한 음식인 것이 맞나 의구심도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몇 번은 먹을만했지만 반복되니까 맛이 없었다. 업체에서 만들어 나온 샐러드만큼 재료가 다채롭지 못한 탓인지 각 채소가 주는 고유의 식감과 향이 있더라도 거의 소스 하나에 겨우 의지해 먹고 있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샐러드는 충분히 잘 먹었다는 느낌을 절대 주지 못했다.
그때 대안으로 생각해 낸 음식이 감바스 알 아히요. 채소를 잔뜩 넣었고 새우는 서너 마리만 넣는다. 질 좋은 올리브유에 마늘을 잔뜩 넣어서 익히다가 온갖 채소를 때려 넣으면 되는 간단한 요리이자, 맛있게 채소를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물론 곁들임 빵은 생략이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채소를 많이 먹으면 된다. 식물성 지방은 허용하되 탄수화물만은 참자.
마침 흑백요리사의 여파로 감바스를 하고 있으면 뭔가 요리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어서도 좋았다. 에드워드 리 셰프처럼 나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방울토마토, 양파, 브로콜리를 메인으로 해서 양송이나 파프리카는 있으면 넣고 없으면 말았다. 방울토마토와 브로콜리가 빚어내는 보색 대비 속에 통통하게 윤기 나는 새우는 보기만 해도 만족감을 주었다.
하지만, 기름을 들이부어 만드는 감바스를 자주 해 먹을 수는 없었다. 횟수 제한 없이 자주 먹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리지 않은 메뉴를 찾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쌈밥이었다. 채소를 샐러드로 먹기는 힘들어도 쌈으로 먹으니까 잘 먹게 된다는 친구의 팁에 반찬가게에 가서 우렁 강된장을 사다가 쌈을 싸서 먹기 시작했다.
쓴 맛이 나지 않고 부드러운 쌈채소를 두 장 포갠 뒤에 밥과 강된장, 그리고 반으로 얇게 썬 마늘을 넣는다. 생마늘이 주는 알싸함에 강된장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맛이 채소 특유의 싱싱한 향과 어우러져 조화로웠다. 이것은 대대로 이어져온 그 맛. 한국의 맛이었다.
몇 번은 강된장 위주로 싸 먹다가 가끔은 고기를 함께 먹어도 되지 않나 싶어서 네이버에 검색을 했다. ‘돼지고기 지방 적은 부위’를 검색했는데 항정살이 눈에 들어왔다. 애정하던 항정살을 당장 주문해서 구워 쌈을 싸 먹으니 이런 식단이라면 매일 먹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게 무슨 건강한 식생활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디테일. 나는 항정살을 딱 3점만 구웠다. 그걸 굽는 중간에 가위로 잘라 6점으로 만든 뒤에 쌈채소 두장을 겹치고 고기 한 점, 강된장, 마늘, 아삭이 고추, 밥 조금을 넣어 앙 입에 넣었다.
고기 3점으로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 하지만 항정살은 주인공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채소 친화적 식생활을 위한 조연일 뿐이니까 기꺼이 참았다. 손가락 한마디 밖에 안 되는 고기 한 점이 추가됨으로써 나의 쌈밥 정식은 완성되었고 요즘 나의 주식단이 되었다.
샐러드, 감바스, 쌈밥을 돌려먹다가 최근에는 양배추 전도 즐기게 되었는데 백종원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본 것이 계기였다. 양배추를 채 썰어서 부침가루 약간과 계란을 넣어 비빈 후에 프라이팬에 두껍게 부쳐 먹는 것인데 약불에서 양면을 각 10분 정도 천천히 익히는 것이 포인트였다.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데다 양배추 1/8통을 뚝딱 소진시킨다는 점에서 심리적으로도 충만하다.
좋은 것에 좋은 것을 더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나를 잘 돌보기 위해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들이붓는 일 말고.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돌부리만 노려보고 서있을 수도, 계속 넘어져 있을 수도 없는데.
세침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듣기까지의 일주일이 가장 괴로웠는데 그때 내가 잃을까 봐 벌벌 떨었던 것은 '나'였다. 대단한 나, 잘난 나, 지금보다 나은 성취를 이루는 내가 아니라 지지고 볶는 나, 때때로 기쁘고 때로는 슬픈 나, 가끔은 멍청하고 한심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일상의 나' 말이다.
헤어졌던 연인에게 극적인 사랑 고백을 하는 통속적인 드라마 엔딩씬의 주인공처럼 지금 내가 그렇다. 귀하디 귀한 나, 찌질하고 못났다 해도 잃고 싶지 않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나는 나에게 좋은 것만 해주기로 했다.(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