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아 더 월드, 유 아 낫 얼론
이승철 콘서트에 다녀왔다. 이승철의 팬이 아니라 전국투어 콘서트를 하는 줄도 몰랐는데 남편이 우연히 광고를 보고 제안한 결과였다. 당시 나는 갑상선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다소 꿀꿀한 상태였고, 평소 음악도 잘 안 듣는 남편이 일부러 마음을 써준 것을 알기에 고마웠다. 공연을 고작 며칠 앞둔 때라 좌석은 이미 거의 매진이어서 2층 구석 자리를 겨우 예매할 수 있었다.
공연 당일 아침, 후원사에서 응원봉을 나누어준다는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보기만 했지 직접 쥐어본 적 없는 응원봉을 들고 공연을 즐길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들떴다.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시각인 4시보다 한 시간 이르게 도착해서 티켓을 찾고 응원봉을 받아 근처 카페로 향했다. 주말이라 카페마다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몇 군데를 들락거려야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처음이었다. 염려했던 것과 달리 2층 구석 자리지만 무대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3천 석이 넘는 좌석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들의 손에도 초록색 응원봉이 들려 있었다. 자리에 앉아 응원봉을 켜보았다. 점멸의 주기에 따라 3가지 버전으로 발광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눈에 자극이 되는가 싶었는데 금세 익숙해졌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초록색은 사람을 홀리는 구석이 있었다.
무대가 시작되고 노래는 이어졌다. 이승철의 노래 실력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는 지치지 않고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놀라운 것은 섬세한 감정을 포착한 기교 섞인 노래들을 힘들이지 않고 아주 편하게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 그래서 듣는 나도 편하게 곡에 녹아들 수 있었다. 관객들을 붕 띄웠다가 착 가라앉혔다가 리듬 있게 변주되는 공연 속에서 중간중간 이어지는 그의 멘트도 베테랑 가수의 짬바를 그대로 드러냈다.
초반에 그가 자신한 것처럼 음향 시설이 훌륭한 탓이었는지, 부담 갖지 말고 이승철이랑 같이 노래방 왔다고 생각하라는 그의 너스레가 통했는지 절로 흥이 나서 내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유명한 노래가 워낙 많았고, 처음에는 모르는 곡인가 싶다가도 하이라이트에 이르면 아 이 노래! 하며 따라 부를 수 있어서 지루할 틈 없이 공연을 즐겼다. 초록색 응원봉을 열심히 휘두르면서 말이다.
공짜로 준다기에 기분 좋게 받은 응원봉은 알고 보니 굉장한 요물이었다. 박자에 맞추어 흔드는 응원봉은 어두운 공연장에서 식별되지 않을 관객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호응과 만족감을 나타내는 신호등 같은 것이랄까. 무대 위의 가수는 그 열광하는 초록 물결에 더 흥을 낼 것이 당연한데 그 물결에 덩달아 도파민이 터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오로지 저 한 사람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동일한 목적으로 모인 이 집단은, 같은 시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비슷한 감정(초록 신호등이 알려주는)마저 공유하고 있었다. 환호하며 응원봉을 흔들고 간단한 안무를 일제히 따라 하고 종종 떼창을 하는 수많은 이웃들의 모습에, 나는 매료되었다. 일체감이랄까 연결감이랄까. 내가 질병 탓에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기라도 한 것 같은 외로움을 맛보았던 뒤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노래는 점점 흐르고 도파민 덕분인지 나는 점점 더 신이 났다. 39년간 가수로 활동했다는 그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내 인생 BGM이 될만한 노래들이 이어지는 사이 노래도 흐르고 추억도 흘렀다. 음악은 대단한 힘이 있어서 단숨에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 주었으니 종횡무진 시간 여행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노래와 추억과 도파민, 도파민, 도파민. 그 속에서 걱정도 흘러 사라졌다.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괜찮다. 여기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품고 있을 속사정처럼 내게도 사정이 있을 뿐.
<회복탄력성(김주환, 위즈덤하우스)>에 따르면,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나쁜 일을 만났을 때 그 일을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영속적이며 보편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자기에게만 생긴 이 나쁜 일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며 나쁜 일 자체를 인생 전반으로 확대 해석한다는 것이다(반대로 좋은 일이 생기면 남들에게도 다 있는 좋은 일이 잠깐 부분적으로 찾아왔을 뿐이라 여긴단다).
내가 건강 이상의 위협 속에서 외로움을 느꼈다면 얼마간은 회복탄력성의 부족 탓일 거다. 불행 앞에서 나는 자주 잊는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뭔가를 짊어지고 어려운 속사정을 감당하며 산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 모두는 고통에 소속된 존재일 텐데. <회복탄력성>의 저자 김주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가 알지 못하는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입니다.”(‘연민’ 관련 유튜브 강의 중에서)
가수 이승철이 지나온 길에도 만만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가 자신과 전쟁을 치르며 꾸준히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해준 덕분에 그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저 무대에서 저렇게 근사하게 노래를 할 수 있고 나는 이렇게 추억 여행을 하며 고운 노래를 듣는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공연 말미에는 39년을 버티고 활동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실패했을 때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회복탄력성'은 영단어 Resilience의 번역어다.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회복탄력성의 아이콘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터,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서 피리를 부는 개구리 왕눈이다. 필리리 개굴개굴 필리리.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개구리 왕눈이의 미래가 여덟 번째 넘어지는 일이라 해도 왕눈이는 무지개 연못의 주인공!
저마다 치르는 전쟁이 삶의 숙명이라면, 넘어졌다 일어나 까진 무릎을 하고서라도 불어댈 각자의 피리 하나쯤 준비해 두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뭐라도 쓰려다가 이 글을 썼다. 내 피리는 글쓰기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도 크고 작은 전쟁에서 건승하시기를 빌며, 이번 공연을 통해 알게 된 이승철의 옛 노래 한 곡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살며 살아가는 행복
눈을 뜨는 것도 숨이 벅찬 것도
고된 하루가 있다는 행복을
나는 왜 몰랐을까
아직 모르는 게 많아
내세울 것 없는 실수투성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그냥 즐기는 거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야
(이하 생략)
제목은 아마추어. 2012년 곡.
(202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