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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복 Nov 23. 2024

진상이 진상을 만든다

vs. 호구가 진상을 만든다

환절기라 그런지 눈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는데 (나는 고질적인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있다) 안약이 마침 똑 떨어졌다. 카페에 앉아 있다가 병원을 향해 나선 것이 12시 20분경. 1시부터는 병원 점심시간이라 마음이 급한데 안과에 도착해 보니 접수대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거침없이 성을 내고 있는 사람은 어떤 할머니였고 내가 볼 수 있는 건 할머니의 뒷모습과 응대 중인 간호사의 싸늘한 얼굴. 오고 가는 대화로 짐작해 보면, 할머니는 오늘 진찰을 받았고 수술을 예약한 상태인 것 같다. 간호사가 내미는 처방전을 두고 할머니는 화가 단단히 났다.


“아니, 수술하고 넣을 약을 왜 지금 받으라 그래? 응? 수술하고 나서 받으면 되는 거 아냐?! “


처방전을 받는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의아하지만 어쨌거나 할머니는 자신이 뭔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신 듯 격앙되어 있었고 반말로 내지르는 할머니의 고성에 간호사도 질린 듯 차갑게 대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비용이 더 나오는데 상관없으신 거죠? 알겠어요. 그렇게 하세요. ”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간호사가 꺼낸 비용 이야기에 할머니가 살짝 움찔한 것 같았지만 기세를 회복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수술하고 나서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할 뿐이었다. 소란스러워진 접수대 쪽으로 다른 간호사가 나타났다.


어딘지 지친 표정인 것은 아까 그 간호사와 같으나 경력이 좀 더 있어 보였다. 그녀는 직접 할머니를 응대하기 시작했다. 한껏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뒤에 있던 나조차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수술을 하러 올 때는 따로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데, 그때 처방전을 받으려면 형식적으로라도 진료를 받아야 하니 별도의 진료비가 청구되지 않게끔 지금 약처방전을 발행한다는 이야기였다. 할머니의 톤은 금세 나긋해졌다. 이해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까지는 못 들었다. 첫 번째 간호사가 내 접수를 진행해 주었기 때문에.


접수를 마치고 잠시 대기하는 동안, 내가 목격한 장면을 곱씹어 본다. 저 할머니는 왜 저럴까. 사실 그만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건대 할머니는 아마도 몇 번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홀하거나 부당한 대접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뒤늦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걸 알고 분통이 터졌던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큰 소리를 쳐서 일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을 수도 있다.  


간호사는 또 어떤가. 안과에 오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노인들임을 생각해 볼 때 (오늘도 노년의 환자들이 다수였다) 대뜸 큰소리로 반말부터 내지르거나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아 나중에 딴소리를 하는 노년의 환자들로 인해 몇 번 곤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길게 말해봤자 괜히 더 욕만 먹고 나중에 자식들이 쫓아와서 따지고 드는 모진 일을 당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올봄 같은 병원 접수대에서 그런 광경(모녀가 함께 고래고래)을 목격한 적도 있다.  


결국 둘은 이번 사건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 때문에 더욱더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둘 다 한때 진상에게 시달려 생긴 상처를 계속 쓰다듬으며 아직 선인지 악인지 정체도 잘 모르는 서로를 힘껏 노려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 기관에서, 영업점에서 과하다 싶게 싸늘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 해보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 사람 누구한테 되게 세게 상처받은 적이 있는 걸까.


호구가 진상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만만하게 보이면 오히려 상대가 더 이용해먹으려고 한다는 얘기다. 이 말은 그러니까 매사 너무 지고 들어가지 말아라, 너무 착하게 살지 말아라 같은 메시지도 품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호구가 만드는 진상보다 진상이 만드는 진상이 더 많지 않을까? 고된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가 악덕 시어머니가 되고 호되게 학대를 당한 아이는 커서 학대의 가해자가 되듯이.


낯선 누군가가 내게 진상을 떤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상대는 눈앞의 내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싸우며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쯧쯧 혀를 차든 쌍욕을 하든 속으로만 한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외면이든 빈말이든 신고든 간에)를 취하면 될 것이다. 진상 앞에서 똑같이 칼춤이라도 추면 당장은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고운 성정이 망가져 진상이 진상을 낳는 '진상의 다단계' 행렬에 동참하게 될 소지가 다분해진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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