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대가로 받는 것은 급여인데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였던 것 같다. 손을 들고 열심히 발표를 했던 게. 사춘기가 와서 그랬는지, 튀면 안 된다는 걸 눈치로 터득한 덕분인지 중2 때부터는 나는 더 이상 손을 들어 발표하지 않았다. 행여라도 잘난 척을 한다거나 뽐내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은 피했다.
지금 같으면 이런 태도는 경쟁력 있는 생기부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되었겠지만 나 때만 해도 생기부에서 필요한 건 점수나 등급 같은 '숫자'뿐이었던 데다가 거의 모든 수업이 강의식으로 이루어져서 딱히 대단하게 발표를 할 일도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 가니 그제야 발표 경험이 부족한 게 아쉬워졌다.
한때는 나도 발표깨나 하는 어린이였건마는, 똑같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앉은 강의실에서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거침없이 손을 들어 질문하는 친구들을 '관람'하다 보면 살짝 주눅이 들기도 했다. 특히 지역 명문고나 외고를 졸업한 애들이 서울의 일반고를 졸업한 나와는 다른 교육을 받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더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성 때문인지 하루아침에 발표력을 갖출 수는 없었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은 상상으로만 그칠 뿐이었고, 조별로 한 명이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든 발표자가 되지 않으려고만 했다.
그런 내가 매일 몇 시간씩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신기하다. 수십 명의 아이들 앞에서 텐션을 유지해 가면서 학생들의 관심사나 나의 굴욕적인 경험담, 야유를 야기하는 아재개그 같은 것을 곁들여가면서 45분간 쉼 없이 떠들어댈 때 나는 솔직히 신이 난다.
줄줄이 나열해 놓은 교과서의 내용을, 명료하게 구조화해서 논리적인 허점 없이 매끄럽게 진행시켜 나갈 때 느끼는 희열은 무척 강렬하다. 학생들에게 와닿을만한 적절한 비유나 사례가 효과를 발휘해 딱딱했던 수업 내용이 단숨에 말랑말랑 해지는 순간에는 그런 비유를 생각해 낸 나 자신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매번 즐거운 수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내용에 따라, 학생들의 컨디션에 따라, 또 나의 사정에 따라서 수업의 분위기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런 날도 있지, 어떻게 매일 즐겁냐라고 넘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사실 나는 그게 잘 안 되어서 문제다.
집중하며 눈빛을 반짝이는 학생들을 직면할 때 내 안에서 도파민인지 긍지일지 모를 뭔가가 샘솟는데 나는 아무래도 이 수준의 반응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서 괴로움을 자초하고 있는 것 같다. 내용이 영 가닿지 못하는 듯 멍한 눈빛이나 수업 중 몇 번씩 시계를 보는 따분한 눈빛 앞에서, 나는 도무지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건 내가 무능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데 이십 년 넘게 수업을 해왔고 나름 좋은 평판을 유지해 왔음에도 그렇다. 성실하게 수업을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수업을 진행해 놓고도 타인의 인정이 없다면 나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시기가 찾아오면 학교 생활의 곤란도는 급격히 높아진다.
존재의 증명이라는 혼자만의 싸움을, 학생들의 인정을 척도로 삼아서 하는 꼴이다. 주인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여겨지고 그렇게 에너지가 소진된 나는 즐거운 수업에서 한 발 더 멀어진다. 악순환이다.
일 년을 쉬고 학교로 돌아와서 다시 수업을 하려니 묵은 굴레가 슬슬 나를 옭아매는 기분이 들어 며칠 괴롭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찾아온 깨달음이 있었으니 실은 그게 이 브런치북을 싹 틔운 씨앗이다.
학기 초 아직 학생들과 어색한 공기가 감돌 때, 부담을 안고 수업을 하러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러운 질문 하나가 마음에 스며들었다.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든 하지 않든, 학생들이 내 수업을 재미있어 하든 그렇지 않든, 그게 내가 지금 이 시간 저 반에 가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과 상관이 있나?
수업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내가 선택한 노동의 모양이었다. 기왕 해야 하는 일을 인정까지 받으면서 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수업할 자격을 빼앗기는 것도 아니고, 수업을 안 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스스로를 갉아먹을 이유가 있나?
복도를 걷는 몇 걸음 동안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내 몫의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존재. 달라진 게 있다면 수업이라는 '일'과 '인정' 사이에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벼락같은 깨달음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사실뿐이었지만,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던진 것처럼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고 나서 맞이한 45분이 이전과 같았을 리는 만무하다.
타인의 인정이 돈으로 호환되는 현대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학교는 그렇지 않은 세계다. 그 점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니 안전한 공기에 안도하며, 나 자신을,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으며 얼마나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인지를 인정하는 데에만 몰두할 수 있기를.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