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문제인 줄 알았지
나는 놀고 싶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만 싶었다. 일을 안 하는 삶을 상상하면 입 안에 달콤한 맛이 도는 기분이었지만 일을 그만둘 용기가 없으니 그저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돌볼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꿈이 있는 것도,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면서 사십 대에 쉬겠다는 건 심정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제적 자유라도 있다면 또 모를까.
그래서 꾸역꾸역 마지못해 일했다. 울타리 밖을 궁금해하면서도 부지런히 허락된 구역의 풀만 뜯어먹는 순한 양처럼. 그러다가 작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꼬박 일 년을 바라던 대로 놀았다. 자율연수 휴직 제도 덕분이었다. 애초에 뭔가를 해보려는 계획조차도 세우지 않았다. 나의 소원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었고 원대한 계획 따위는 소원에 방해만 될 테니까.
나는 지혜를 찾는 여정이라는 뜬구름 잡는 컨셉으로 일 년을 보냈다. 목적이 없이 그냥 놀았으니 소원을 성취한 셈. 근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놀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일터에서 으레 발생하는 자극이 사라짐으로써 스트레스 요소는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마이너스의 절댓값이 작아졌을 뿐 내가 그리던 수준의 행복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2024년의 휴직을 예정하고 그 쉼을 상상하면서 2023년을 버텼다. 곧 손에 쥘 ‘쉬는 일 년’을 생각하면 뭐라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준 상상은 이런 것이었다. 다들 일하는 평일 오후 한가하게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나, 가볍게 짐을 싸서 훌쩍 어디론가 떠나는 나, 봄날 흐드러지게 핀 교토의 벚꽃 아래를 걷는 나…
그래서, 3월 하순 나는 교토로 떠났다. 순전히 벚꽃 아래 철학의 길을 걷기 위해서였지만, 벚꽃은 개뿔. 흩날리는 진눈깨비 속에서 옷깃을 여며야 했다. 물론 휴직을 하고 그 바쁜 3월에 외국에 와 있다는 사실로 들떠서, 벚나무 가지만 보고도 장차 피어날 벚꽃들을 상상할만한 아량은 지니고 있었지만.
잘 꾸며진 교토의 호텔방에서 나는 잠도 잘 자지 못했다. 꽤 값을 치르고 들어온 숙소는 일본 치고는 아주 널찍했는데 트윈 침대가 놓인 깨끗한 방인데도 혼자 있다는 게 어쩐지 으스스했다. 하필 영화 <파묘>를 본 직후여서일까. 일본 귀신은 원한이 없어도 괴롭힌다는 사실을 <파묘> 덕에 알았다. (그렇다. 나는 원래 귀신을 무서워한다.) 무서워서 불을 끄지 못하니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난처함이 이틀이나 갔다.
혼자 하는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아주 오랜만이기는 했다. 쉬면서 여행 다니는 삶을 향한 막연한 로망을 현실화할 수 있게 되었는데 결과가 고작 이랬다. 실망하지 않은 척 스스로도 속여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낮에는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지만 밤이 오는 게 영 부담스러웠다.
또, 5월에는 혼자 통영으로 떠났다. 고속버스에도 퍼스트 클래스가 있었다. 우등 버스요금에 몇 천 원을 더 내면 커튼이 드리워진 좌석 안에서 두 발을 쭉 뻗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고속터미널까지 가는 길이었다. 출근 시간의 지하철은 내가 잘 모르던 세계였다. 버스 예매를 하면서 그 점을 생각지 못하는 바람에, 가장 붐비는 시간에 딱 맞춰 지하철을 타게 됐다. 아, 회상하고 싶지도 않다. 낯선 타인과의 적정 거리가 보장되지 않을 때의 그 불쾌함이란.
그렇게 떠난 통영 여행도 양상은 비슷했다. 좋은 숙소를 잡아 놓고도 밤이면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특히 바다가 바로 보이는 창가에서 글을 쓸 포부를 품고 떠났지만 몇 줄 끼적였을 뿐이었다. 날씨도 무척 좋았고 남들 일하는 시간에 혼자 유유자적 카페에서 책을 읽었지만 내가 생각한 대단한 기쁨 같은 것과는 빛깔부터가 달랐다. 혼자 노는 건 생각보다 시시했다.
아무리 좋은 곳에 있어도 마음이 위축되니 전혀 자유를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햇빛을 받으며 부지런히 걸어서 구립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전통시장을 통과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나, 밀도가 무척 낮은 열람실에 앉아 흥미로운 책을 몰입하며 읽었던 일이 더 반짝거리는 기쁨이었다. 동네에서 누리는 일상일 뿐인데도… 알고 보니 내 행복은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었다. 항공권이나 호텔이 없어도 괜찮았다. 나라는 인간이 퍽 가성비가 좋다.
일을 안 하면 마냥 행복할 거라는 건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다. 가끔 그리웠다. 칠판 앞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는 나를 향하던 반짝이는 눈빛들이, 아주 가끔이지만 내가 꽤나 중요하고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우쭐하던 기분이, 귀하게 얻은 주말 이틀을 알차게 놀아제꼈을 때의 기쁨이. 무엇보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던 급여가.
아닌 척했지만 어딘지 공허했다. 내가 그리 도망치고 싶었던 일이 일정 부분 나의 ‘자아실현’을 돕고 있었던 걸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뗄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느슨한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는 나에게만 중력이 약하게 작용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게 붕 뜬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단하게 두 발 딛고 서 있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소리다. ‘자립’이라는 가치를 지켜내는 데는 비용이 든다는 사실이, 내가 그간 부지런히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는 자각이 어렴풋하게 일기 시작했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행복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어떤 사람은 백 가지를 갖고도 불행하고, 또 어떤 사람은 겨우 한 가지에도 행복을 만끽할 수 있으니 행복을 ‘합리적’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결국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말하자면 행복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각자가 삶에 대해 갖는 태도에 좌우된다는 소리.
일하지 않는 삶은 내가 찾던 파랑새가 아니었다. 심지어 나에게 일은 꼭 필요하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내 두 발로 이 세계 위를 딛고 서도록 지탱해 준 게 바로 ‘일’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바로 시작한 교직이었다. 공기처럼 익숙해서 몰랐을 뿐이었다. 못 견디게 싫기만 했다면 어떻게 이십 년 넘게 해올 수 있었을까. 이 일에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분명히 있었구나 하는 것을 일을 멈추고서야 알았다.
산다는 건 참 자질구레한 일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예찬하는 책의 표지에서 볼 수 있는 텅 빈 방처럼 그렇게 마냥 산뜻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모르긴 몰라도 사진에 찍힌 그 반대편에는 수납공간이 있을 것이다. 크지는 않더라도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들(가령 손톱깎이라든가 면봉, 이쑤시개 같은)이 담긴 바구니 하나가. 그 깔끔한 방도 장마철 습도 관리를 잘못하면 곰팡이가 필 것이다. 방 주인은 자주 무릎을 꿇고 앉아 부지런히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걸레질을 할 것이며 매달 월세는 나갈 것이다.
삶이란 이렇게 자질구레하고 또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다단한데. 그러므로 고작 조건 하나가 바뀐다고 완전히 다른 신세계가 펼쳐질 리가 없다. 괴로움 속을 헤매던 사람이 직장 하나를 그만둔다고 해서 완전히 산뜻한 삶을 살아낼 수는 없을 거라는 말이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자본주의의 질서 속에서 일하지 않고도 마냥 행복감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고, 존재의 증명을 (남들은 접어두고서라도 일단 스스로에게라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인간이라는 종이 무위의 삶을 살아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런 생각은 복직 후 일을 해나가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 한 번 한 잔소리를 두 번하고 세 번 하게 되더라도 지겨워하지 말자고, 보람이나 의미 같은 거창한 것이 주어지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자고 나를 다독인다. 대답 잘하고 돌아서서 같은 잘못을 하는 아이를 불러 앉혀 감정을 숨기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나를 돌아보는 글’ 용지를 내밀 때, 삶이란 원래 자질구레한 것이니까 라는 생각을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민원을 접했을 때, 업무 때문에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교무실에 혼자 있을 때나, 주말에도 교과서를 펴고 수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에도 이 자질구레함을 접착제 삼아 내가 발바닥을 세상에 ‘착’ 붙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꺼이 버틸만하다.
매일 반복되는 귀찮고 자질구레한 일들, 하고 또 해도 티 나지 않아서 언제 끝나나 징글징글한 그 일들 속에 정작 삶이 있었다. 막상 하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나고 누수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배운 일 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일하지 않는 삶을 염원하지 않는다. 일하면서 따박따박 급여를 받고 그 급여로 자질구레한 일상들을 알록달록 채워가며 즐겁게 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혜를 찾는 여정’이라는 컨셉이 영 허황된 것은 아니었을지도. (20250511)